[천하람이 소리내다] 누적적자 얘기 쏙 빼고…'답정너' 연금 개악

천하람 2024. 5.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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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다수안 적자 크게 늘려
젊은층, 월급 35% 보험료 낼 판
미래세대에 짐 떠넘겨선 안 돼
4월 22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가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을 다수 안으로 발표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조금 더 내고 훨씬 더 받는 국민연금’이라니 터무니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울어가고 있는 국가의 모든 무게를 미래세대에게 통째로 떠넘기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미래세대는 기성세대를 부양할 능력이 없다. 부양할 수 있는 인구 자체가 없다.

1970년의 출생아는 100만 명인데, 필자가 태어난 1986년의 출생아는 63만 명이다. 2022년 출생아는 24만 명이고, 2023년 출생아는 약 23만 명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출생아 감소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합계출산율이 0.7명보다 더 떨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지난달 22일 492명의 시민대표단 설문조사에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올리는 ‘더 내고 더 받는’ 1안이 다수(56%)로 선택됐다고 밝혔다. 2안은 ‘더 내고 똑같이 받는 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이다. 1안이 현실화하면 2015년생은 중년에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현 기성세대는 13% 정도다.

필자의 아들이 2016년생이다. 2016년생은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10% 이상을 건강보험료로 내야 할 것이다. 각종 복지지출을 감안하면 소득세도 오를 것이다. 월급의 60~70%를 세금과 보험료 등으로 내야 할 판이다. 자산을 형성하고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소멸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아들 세대가 아빠 세대 부양 못 해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크게 ▶이민 ▶포기 ▶저항이다. 소득이 높아 연금·세금 등 부담이 큰 최상류층은 이민을 시도할 것이다. 일부는 보험료, 세금 내면 남는 것도 없는 데 차라리 적극적 소득 활동을 포기하고 부모 혹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 편하게 살자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2016년생은 저항할 것이다.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는 것은 과도하고, 세대 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문제의식은 아주 쉽게 공유될 것이다. 필자도 정치인이지만,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말고 저항하자는 선동은 가장 무능한 정치인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동일 것이다. 2015년생 이하의 미래세대는 결집할 것이고 저항할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하고, 폭탄은 터질 것이다.

지금의 10·20·30대 모두 안전하지 않다. 63만 명에 이르는 1986년생을 24만 명밖에 되지 않는 2022년생이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미래세대의 저항이 본격화되고, 재정도 취약한 초고령 대한민국에서 국민연금이 별 탈 없이 존속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책임한 희망 회로 돌리기다. 공론화위원회는 자료집에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빚의 규모를 명시하지 않았다. 자료집의 기금 고갈 시점은 1안은 2061년, 2안은 2062년으로 1년 차이가 난다. 받는 돈을 확 늘리는데 고갈 시점에 별 차이가 없어 1안 선호가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안(더 내고 똑같이 받는 안)은 향후 70년간 누적적자를 1970조원 줄이지만 1안(더 내고 더 받는 안)은 오히려 702조원 늘린다. 누적적자 증감액은 2700조원가량 차이가 난다. 그런데 시민대표단 자료집에는 누적적자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1안에 불리한 결정적인 지표가 누락된 것이다.

시민대표단 구성도 문제다. 492명 중 40대 이상이 69%에 달한다. 18~29세는 79명(16%), 30~39세는 74명(15%)이고 18세 미만은 참여하지 않았다. 낼 사람은 젊은층과 미래세대지만 개혁의 결정권은 중장년층이 쥔 구조다. 시민대표단을 추린 방식도 공정하지 않았다. 대표단은 일반 국민 1만 명에게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 폭 선호도를 물어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 응답 비율에 따라 구성했다. 소득 보장을 선호한 이들이 1.4배 더 많았다.

한 마디로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 공론화였다. 이번 시민대표단 조사 결과는 폐기해야 한다. 애초에 1안, 2안만으로 조사한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2안이 1안보다는 낫지만, 2안에 따르더라도 기금이 소진되면 미래세대는 월급의 31.2%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역시 납부가 불가능한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랫세대가 윗세대를 부양하는 제도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연금 제도 설계 근본적으로 바꿔야


마침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미래세대에게 과중한 짐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쌓인 보험료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고, 개혁 시점부터 신연금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 수익률을 더해 연금을 받는 ‘완전 적립식’으로 운영하는 투트랙 방식이다. KDI 방식을 적용하면 미래세대는 15.5%의 보험료를 부담하면 국민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신·구연금 분리 방안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연금개혁’이다. 미래세대의 등골을 부러뜨리는 ‘연금 개악’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게 세대 간 형평성을 지키는 진정한 연금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세대에 꿈과 희망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빚과 절망만 물려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만든 초저출산, 초고령화 대한민국에서 미래세대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것이다. 미래세대는 기성세대를 부양할 수 없다. 폭탄을 떠넘기면 반드시 터진다. 앞세대에서 최소한의 폭탄 해체 작업이라도 해놓아야 뒷세대가 앞세대와 함께 폭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천하람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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