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JP모건은 스타트업 지배자가 될 수 있을까

2024. 4. 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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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두 번째 규모였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된 후 지난 1년여간 금융기관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기술기업 금융 분야에서 SVB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JP모건체이스, HSBC홀딩스 등 대형 은행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대형 은행이 직면한 경쟁자는 파산 후 퍼스트시티즌스에 인수된 SVB 그 자체다.

SVB의 목표는 다시 한번 스타트업을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벤처캐피털(VC) 및 기업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업계에 정통한 실리콘밸리 현지 은행가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위에 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부실 은행 및 인력 일부를 인수한 JP모건, HSBC의 경우 고객들에게 확실한 안전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이 수백명의 창업자, VC 후원자들에게 SVB와 같은 현장 전문성, 세심한 배려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장기적으로 이 업무를 지속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SVB 출신으로 현재 퍼스트시티즌스에서 일하고 있는 32년 경력의 베테랑 은행가 마크 카디예는 조만간 SVB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적인 부분은 우리가 하는 일을 따라 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이 시장에 진입하는 대형 은행들은 비즈니스를 구축해야 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SVB는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통해 퍼스트시티즌스에 매각된 이후 많은 사업 부문을 잃었지만 현재 파산 이전 직원의 80%, 비슷한 규모의 고객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말 SVB의 대출과 예금 규모는 각각 740억달러, 1740억달러다. (파산 이후인) 2023년 말에는 대출 550억달러, 예금 385억달러에 그쳤다.

SVB의 예금 규모가 쪼그라든 것은 놀랍지 않다. 교훈을 얻은 고객들이 여러 은행에 자금을 분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SVB가 이 분야에서 그전과 같은 지배력을 다시 회복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부문에서도 경쟁 구도가 바뀌고 있다. JP모건, HSBC 외에도 지역 및 투자 은행들이 고객 유치에 나섰고 핀테크(금융+기술) 기업들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뜨거운 경쟁은 이례적이다. 스타트업과의 거래는 장기전이다. 모든 고객으로부터 매일 이익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이들 기업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자금을 필요로 할 때 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은 상장되거나 큰돈에 매각된다. 이때 이들과 장기적으로 협력해온 은행은 자문 수수료를 챙기거나 새로운 자산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은행은 대출 조건으로 스타트업의 보증서를 받기도 한다. 이는 차후 가치 있는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의 정의다.

반면 JP모건을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주요 은행들은 스타트업 대출 여부와 관계없이 VC 업계로부터 많은 투자은행 수수료를 받는다. 이에 따라 JP모건의 서부지역 공략은 이미 큰돈을 가진 부유한 사업가들의 자산관리 사업, 투자은행을 위한 VC 펀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JP모건은 지난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인수하면서 자사에 부족한 실리콘밸리 인맥과 노하우를 갖춘 은행가들을 확보했다.

HSBC는 홈그라운드에서 SVB와 맞붙고 싶어한다. SVB를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는 앞서 HSBC가 수십명의 SVB 직원을 고용한 것에 10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해 SVB 출신이자 HSBC 혁신은행 부문 미국 책임자인 데이비드 사보우는 "스타트업에 더욱 깊게 접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투자은행 및 자산 부문에서의 비즈니스 유입 외에도 기존 다국적 기술·의료 고객들을 위한 정보를 확보하고 잠재적으로 거래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잠재 고객 확보에 있어 중요한 점은 일이 잘못됐을 때 HSBC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잘못된 시작, 예상치 못한 도전, 자금 부족 등은 스타트 업계의 고질적 문제다.

실리콘 베이 지역 금융의 특이한 점은 은행과 VC펀드 간 관계가 스타트업과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은행은 신용을 확인할 때 후원가들(backers)의 사업투자 의지를 고려한다. 사보우는 자금뿐 아니라 회사의 후원자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벤처 투자자들 역시 "실증조사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처음에 일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키를 가져가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답은 "아니요"다. 스타트업은 은행에 팔 수 있는 유형자산이 없는 경우가 많다. 모기지 불이행 시 집을 압류하는 것과는 다르다.

SVB의 또 다른 강점은 여기에 있다. 카디예는 자사 은행가들이 회사가 재무 및 사업 목표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많은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회사가 다음 주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한 시점을 파악하고, 이를 위해 은행과 후원가들이 개입해야 할 시기를 알고 있다.

만약 회사가 다음 이정표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은행의 역할은 회사가 최소한 무엇이라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된다. 이는 종종 기술 분야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잃은 회사 핵심 인력들이 다시 관심을 유지하도록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지적 재산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없으면 가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창업가와 후원가들에게 약간의 재정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카디예는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다시 도전하려면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스타트업들뿐 아니라 지난해 파산 사태를 겪은 SVB에도 적합한 격언이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승자가 되고자 하는 HSBC와 다른 은행들도 지속적인 프랜차이즈 구축을 위해서 이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폴 J. 다비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Jamie Dimon Has a Rival in Tech: Silicon Valley Bank’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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