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폐암 방사선 수술 후 생긴 섬유조직… “재발암 아닌 흉터”

민태원 2024. 4. 30.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가 폐암 환자의 방사선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90%는 방사선 치료 후 조직 변화
CT 찍을 때마다 흉터 커져 오인
섣부른 재발암 판단 오히려 위험
조직 검사 등 추가 확인 필요

왼쪽에 폐암 1기 진단을 받은 A씨(85). 고령인 데다 고혈압 등 기저 질환도 있어서 외과 수술은 위험하겠다는 의사 판단에 따라 ‘정위적 방사선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을 약 20~30번 반복해서 쪼여 암을 제거하는 일반 방사선 치료와 달리, 굉장히 강한 방사선을 단 한 번 정밀하게 조사해서 암을 근치하는 방식이다. 칼로 암을 절제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방사선 수술’로 불린다. 최근 1기 폐암에서도 방사선 수술이 외과 절제술과 비슷한 수준의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입증돼 시행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폐암 1·2기는 수술, 3기는 방사선 치료, 4기는 항암 치료가 시행된다.

A씨는 2개월 후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종양 크기 감소가 관찰됐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에서 종양 완전 제거가 확인됐다. 6개월 뒤 A씨는 다른 질환으로 다른 병원에서 흉부 X선과 CT를 찍게 됐다. 그런데 “폐암이 재발한 것 같다”는 영상 판독 소견을 듣고 깜짝 놀랐다. A씨는 걱정과 불안을 안고 방사선 수술을 받은 대학병원을 급히 찾았다.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X선과 CT 영상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재발암이 아닌 방사선 수술 후 생긴 ‘흉터(섬유) 조직’으로 확인됐다. 교수는 불안해하는 환자를 위해 PET-CT와 조직 검사까지 진행해 살아 있는 암세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방사선 수술 후 생기는 흉터 조직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영상검사 시행 전에 ‘방사선 수술(치료)’ 이력을 알리지 않았고 해당 병원 의료진은 폐암 병력만 듣고 재발암이라고 섣불리 판단한 것이다. 방사선 치료 후에는 손상에 대한 신체 반응으로 섬유 조직 변성, 일종의 흉터가 생긴다. 손가락을 칼에 베었을 때 상처가 아물면서 흉터가 남는 것과 같다. 흉터 조직은 흉부 X선이나 CT를 찍을 때마다 보인다. 문제는 흉터 조직의 양상이 재발암과 비슷해 의사들도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공문규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29일 “실제로 1·2차 병원에서 영상 검사 후 의사한테서 ‘암이 재발했다’ ‘암이 하나도 제거되지 않았다’ ‘암이 오히려 커졌다’ 등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찾아오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이런 해프닝이 안 생기려면 진료하는 의사에게 폐암 방사선 치료 경험이 있음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방사선 치료 후 폐 조직의 변화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들은 환자가 방사선 치료력을 얘기해도 제대로 판단을 못 하기도 한다”면서 “이럴 경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직접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국내외적으로 초기 폐암 환자의 방사선 수술 비율을 보고한 통계는 없다. 병원, 의사마다 편차가 커서 아예 시행하지 않는 곳도 있고 굉장히 많이 하는 곳도 있다. 방사선 수술을 시행할 줄 아는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의욕적으로 시행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초기 폐암 환자의 약 30~40%는 폐 기능이 안 좋거나 기저 질환이 있어서 외과 수술을 받지 못하는 거로 보고 된다. 이들이 방사선 수술 대상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암이 폐 바깥쪽에 위치하거나 심장·대동맥에 근접해 있는 경우엔 방사선 수술이, 암이 폐 가운데 있거나 식도와 근접해 있는 경우 외과 수술이 유리하다. 폐암 국제표준치료지침에 따르면 초기 폐암 환자 중 외과 수술 시 합병증이 심하게 발생할 거로 예상되거나 외과 절제술보다 방사선 수술을 원하는 환자인 경우 방사선 수술을 권고하고 있다.

2015년 국제 학술지(Lancet Oncology)에 방사선 수술과 외과 절제술의 성적을 비교한 최초의 3상 무작위 대조군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에 따르면 방사선 수술군(31명)이 외과 수술군(27명)보다 생존율이 높고 부작용 발생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초기 폐암에서 우선 고려할 1차 표준치료를 방사선 수술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학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연구 대상이 너무 적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 2개의 대규모 추가 비교 연구가 진행 중이다. 폐암의 방사선 수술은 림프절 전이가 없어야 하고 암 크기가 5㎝ 이하인 경우(1기~2A기) 주로 시행된다.

흉터 조직과 재발암 감별해야

폐암에서 방사선 수술이 증가하는 만큼, 치료 후 발생하는 흉터 조직과 재발암을 구별하는 데 의료진과 환자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냥 둬도 되는 흉터 조직을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재발암으로 오인해 확인 없이 치료에 들어갈 경우 환자에게 큰 부작용과 후유증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방사선 수술 후 90% 이상에서 섬유 조직 변성이 발생한다. 개인에 따라 굉장히 빨리, 혹은 3~4년에 걸쳐 서서히 생기기도 한다. 천천히 진행하는 환자는 CT를 찍을 때마다 흉터 조직이 조금씩 커지기 때문에 재발암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폐암은 전체 재발의 80%가 치료 후 3개월~2년 사이에 발생한다. 폐암 재발 여부는 주로 CT로 판단하는데, CT 소견이 흉터 조직과 매우 유사하다.

공 교수는 “흉터 조직과 재발암은 엄연히 다른 별개의 것인데, 두 가지를 혼동하는 의사들이 많다. 재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관찰하되, 방사선 치료 후 발생한 흉터를 섣불리 재발암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흉터 조직 내에 암세포가 죽지 않고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 많은 방사선종양학과 의사가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애매할 경우 조직 검사나 PET-CT를 찍어 확인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의사들은 방사선 수술이나 치료 후 폐암과 주변 조직 일부가 섬유화하면서 흉터 조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선 담당 의사에게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꼭 알려야 한다. 의사가 CT만 찍어보고 재발한 것 같으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좀 더 확실한 감별을 위해 추가 검사를 받고 싶다고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