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큰 두뇌와 허약한 심장… LLM, 10년 후에도 존재할까

2024. 4. 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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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변·문서요약·번역 이어
수익 결산 요약 등 많은 장점에도
감정이 배제된 수직적 사고 일관
LLM, 인간 창의성 실종 부를 수도

‘지와 사랑’은 헤르만 헤세의 영원한 고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한국어판 책 제목이다. 이 책은 주인공 두 소년을 통해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고뇌와 갈등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대조 화법으로 잘 그려냈다. 이성과 지성을 상징하는 나르치스는 성직자의 길을 간다. 반면 예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년 골드문트는 방랑가의 천성으로 감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낭만에 잠기고 밀회를 즐기는 삶에 빠져들어 수도원을 떠나게 된다. 흑사병이 널리 퍼지고, 거리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뒤 결국 도시로 돌아와 마침내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에게 구원을 청한다.

데카르트 방식으로 말하면 나르치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유형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골드문트 역시 ‘스피노자의 뇌’를 가진 보통 사람일 뿐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8세기 최고의 사상가 반열에 올랐던 데이비드 흄은 이성의 우위를 반박하면서 욕망과 열정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나서 그 결론의 증거를 찾기 위해 이성을 하인으로 부려먹는다고 일갈했다. 현존하는 세계 50대 사상가로 꼽히는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NYU) 교수 역시 인간은 직관적·감정적 판단을 미리 내린 뒤에 사후적으로 이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욕망의 강아지와 이성의 꼬리’에 비유했다.

오늘날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대표주자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트랜스포머 덕분에 데이터 세트로부터 언어 해석뿐만 아니라 맥락과 상관관계를 찾는 데 유용한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질문에 답변, 문서 요약, 번역 등에 이어 재무분석가에게 수익 결산을 빠르게 요약해주고, 신용카드사에 이상 징후를 감지해 사기의 가능성을 점검해준다.

수직적 모델 LLM의 한계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대표주자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이성적이고 수직적인 연산만 추구하는 한계가 있다. 뇌와 심장(감정)이 조화를 이루는 인간처럼 LLM도 감정적이고 수평적인 사고가 곁들여지는 모델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MS Bing

이렇게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LLM은 인간의 감성이 배제된 연산 모델이고 통제된 이성을 우상화하는 ‘나르치스’의 모습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LLM은 단어와 텍스트에서 감정을 표시하는 데이터들을 모으고 클러스터링 기법도 사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주어진 정보와 규칙에 따라 순차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수직적 방법론이다. 한마디로 연산하는 두뇌는 크고 심장이 허약한 데카르트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가 LLM을 접했다면 이 역시 ‘데카르트의 오류’라고 불렀을 것이고, 데이비드 흄은 ‘통제된 꼬리’로 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은 해변을 가리키지만 LLM은 주말에 해변에 갈 것인가, 농구장에 갈 것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없다. 이미 잘 세팅된 장소에서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작동할 뿐이다. 주어진 환경과 정보 속에서 연산을 수행하고 패턴을 찾아낸다.

LLM은 항상 데이터에 굶주린 짐승과 같다. LLM은 거대한 언어의 배설 쓰레기통과 같아서 데이터에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 불확실한 정보, 콘텐츠 등도 마구 삼키고(input) 배설한다(output). 진위를 효과적으로 필터링할 방법이 불완전하지만 그대로 직진한다.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는 과정의 투명성이 부족하지만 추적이 어려우므로 책임 추궁도 어렵다. 거대한 신경망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막대한 연산 자원과 에너지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LLM으로 작동되는 세상에는 발산적 사고가 설 땅이 없다. 현재는 종종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창의의 시대라고 한다. LLM은 주어진 데이터 뭉치 속에 갇혀서 주어진 길을 가야 하는 ‘통제된 이성’의 시스템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AI 시대 모든 것이 자동화된다고 해서 주어진 틀에 갇혀 빠른 속도로 창의성을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 센서에 과도하게 의존해서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는 길과 지도 공부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딥러닝 분야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LLM은 세상이 통용되는 방식과 달라 일반적인 지능(AGI)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LLM이 패턴 인식과 학습 데이터 반복을 통해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지만, 인간 세상의 진정한 개념이나 의미 파악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를 표시한다. 마치 50년 전에 앨런 튜링이 튤링 테스트를 통해 질의응답에서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튜링 테스트에 통과한 것이며, 최소한의 지능을 가진 것이 된다는 가정에 맞닿아 있다.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처럼 ‘바보처럼 하니까 바보(stupid is as stupid does)’이고, 천재 흉내를 잘 내면 천재가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프로그래밍된 시스템에서 나오는 훈련된 동작일 뿐이지 ‘진짜 인간에게 작동하는 방식의 지능일까’라는 의문을 자아내곤 한다.

언어+감성 모델로 진화해야

오늘날 경제 현상이 이성의 틀 속에 갇혀 있지 않듯 인간은 직감과 감성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지배할 때 이성의 스위치는 꺼지고 무기력해지곤 한다. 이제 노벨상 수상자조차 감성과 직관 뒤에서 무기력해진 이성에서 답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배후에 있는 진짜 주인, 바로 욕망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마당이다.

LLM은 변연계와 연결되지 않은 전두엽 모델에 가깝다. 반쪽 인간의 모습을 잘 흉내 내고 있다. 딥러닝이 만들어가는 알고리즘은 속을 알지 못하는 블랙박스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과연 10년 후에도 LLM이 존재할까. 요즘 한국에서 모두 LLM에만 올인하는 분위기다. LLM은 기본적으로 수직적인 사고에 갇혀 있다. 인간의 추론보다 AI의 추론을 신뢰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면 인간은 창의성을 길러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수직적 사고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문제 해결에 적합하지만 수평적 사고는 주어진 제약조건을 뛰어넘는 역발상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하다. 이제 인공지능 싱킹(AI Thinking)은 AI 시스템 속에서 수직적, 수평적 사고법을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면서 통합된 모델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는 ‘지와 사랑’이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듯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극단적으로 완벽히 분리된 인간 유형은 이 땅에 존재하기 어렵다. 나르치스를 닮은 LLM은 반쪽이다. LEM(언어+감성 모델)로 진화해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LEM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대한민국에서 먼저 시도될 수 있을까?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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