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미국인들이 술 취한 선원처럼 돈을 써댄다

강남규 2024. 4. 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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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요즘 미국인의 씀씀이가 심상찮다. 올해 1분기(1~3월) 소비가 직전 분기와 견줘 2.5% 늘었다. 지난해 4분기(3.3%)보다는 못하지만, 올해 1분기의 월별 흐름을 보면 마지막 달인 3월에 가까울수록 미국인의 씀씀이가 더욱 커졌다.

그 바람에 예상치(2.5%)보다 낮은 1분기 미 경제 성장률 1.6%(연율 기준)을 경기둔화 또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침체)의 신호로 보는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거의 없다. 사실 미 상무부가 내놓은 1분기 GDP 통계를 보면, 성장률이 낮아진 요인이 심각하지는 않다. 무역수지가 나빠지고, 연방정부의 지출과 기업의 재고 쌓기가 준 탓이다. 기업의 재고 증가는 GDP 통계에선 투자 증가로 잡힌다.

「 무사귀환한 선원이 기분 내듯
통화 긴축에도 왕성한 씀씀이
Fed 기준금리 첫 인하 미뤄져
달러 가치 5% 더 오를 가능성

오랜 항해 끝에 항구에 돌아와 술에 취해 한껏 기분을 내는 선원들. 19세기 영국 화가 존 로커 작품. [사진 영국 그리니치왕립박물관]

미 경제분석회사인 디시전이코노믹스의 앨런 사이나이 대표는 “무역 적자 확대나 정부의 지출 감소, 기업의 재고 감소는 일회성 사건”이라며 “미 성장의 메인 엔진은 힘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이나이가 말한 메인 엔진은 소비다. 미국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를 차지한다.

“2분기 다시 고성장 회복할 듯”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CE)의 폴 애시워스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최신 보고서에서 “3월 이후 소비 흐름을 보면, 올해 2분기(4~6월)에 성장률이 3% 선으로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인의 왕성한 씀씀이는 제롬 파월 등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담당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실직자 증가→소비 등 총수요 감소→물가 하락을 기대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 마디로 1980년대 이후 한 세대(약 30년) 정도 유지된 통화정책이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신재민 기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월가 사람들은 놀라운 수사학적 재능을 발휘한다”고 미 금융역사가 존 스틸 고든이 몇해 전 기자와 통화에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월가 사람들은 돈을 마구 쓰다시피 하는 미국인을 ‘술 취한 선원들(Drunken Sailors)’이라고 한다. 18~19세기 영국 런던 템즈강 선착장 주변의 선술집에서는 긴 항해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뱃사람들이 처음 본 사람에게도 공짜 술을 대접했다. 이런 술취한 뱃사람 모습이 통화 긴축에도 지갑을 활짝 여는 미국인 때문에 21세기에 소환된 셈이다.

근대 초기 영국 선원들은 인도나 중국 등으로의 원격지 무역을 통해 목돈을 쥐었다. 그렇다면 요즘 미국인들은 무슨 돈으로 왕성하게 소비하고 있을까.

사이나이 대표는 “팬데믹 이후 일자리 창출이 아주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1~3월 사이 평균 27만 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호황의 기준인 월 21만 개를 여전히 웃돈다. 팬데믹 시기 노동자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떠나는 바람에 임금도 많이 올랐다. 요즘 새로운 이민자들이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바람에 일자리 제공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팬데믹 시절 임금 상승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의 임금·투자 소득 증가

신재민 기자

두 번째 요인은 투자소득의 증가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상당수가 팬데믹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빅테크와 가상자산(코인) 열풍 덕분에 상당한 투자 이익을 거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으로 금리가 올라 주가가 조정받았지만, 미 국채 등을 주로 편입하는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투자해 연 5% 이상의 수익을 누렸다.

세 번째는 쏠쏠한 주택 임대수입이다. 사이나이 대표는 “임대회사뿐만 아니라 50~60대 집주인 1100만 명 이상이 임대수입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과 투자 소득 덕분에 요즘 미국인들이 술 취한 선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인이 술 취한 선원이 되는 바람에 Fed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애초 6월에 첫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지만, 1분기 미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 9월 이후에나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보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그럴지는 내일(5월 1일) 종료되는 Fed의 정례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의 성명서 등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고금리 2026년까지 이어질 수도

신재민 기자

Fed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이 언제이든 고금리 시대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서 고금리는 미국의 중립금리(R*, R스타)로 추정되는 2~2.5%보다 기준금리가 높은 것을 말한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고 소비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가상금리다.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으면 경기는 억제된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6년 1분기에도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높은 3% 선을 맴돌 전망이다.

반면에, 영국과 유럽 등의 금리 인하는 6월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유럽 사이 금리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들어 달러 가치는 금리차 때문에 평균적으로 5% 정도 상승했다. Fed가 기준금리 인하를 늦추면, 캐피털이코노믹스 등 영미권 경제분석회사들은 달러 가치가 올해 안에 추가로 5% 정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강달러 파고가 다가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29일 한때 엔화는 달러당 160엔선까지 밀렸다. 원화는 달러당 1380원 선에서 오르내렸다. 엔화 가치가 160엔 선까지 밀리는 일은 영미 분석가들이 올해 하반기에나 일어날 사건이라고 봤는데, 외환시장이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원화 가치도 예측보다 빠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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