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공유할 ‘별의 순간’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sungirl@mk.co.kr) 2024. 4. 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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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질문은 성가시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무례할 정도로 성가시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의제가 잘 조율된 성공적인 회담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는 한미 현안은 젖혀두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르윈스키와의 불륜 스캔들을 질문했다. 두 번째 미국 기자도 스캔들을 따져 물었다. 김 대통령은 황망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김 대통령만 겪은 일은 아니다. 지난 2013년 백악관서 열린 박근혜정부 출범 첫 한미 정상회담. 미국 기자는 느닷없이 ‘군대 성폭력 대책’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당시 미국에선 성폭력 담당 장교가 연루된 성추행 사건이 이슈였다. 박 대통령을 옆에 두고 미국 대통령과 기자가 열띤 질의응답을 했다.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서 자국 성폭력 이슈를 주고받은 것이다.

무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기자들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정상회담은 생방송으로 대통령 육성을 듣는 중요한 기회다. 국민의 관심사 말고 다른 질문을 한다면 그 기자는 직무 유기다. 그런 일을 도맡기로 사회적으로 합의한 직업이다.

존 F.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총 10명의 대통령에게 백악관 기자석 앞줄에서 날 선 질문을 했던 헬렌 토머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인기를 얻기 위해 언론인이 된 게 아니다. 진실을 추구하고 권력자(leader)들을 끊임없이 압박해 답을 얻어내는 것이 우리 임무다. 사랑받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해라.”

기자들은 이러니 미움도 많이 받는다. 후진국에선 테러와 협박에 시달리고, 선진국서도 언론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에 따르면 2023년에 전 세계에서 94명의 언론인이 피살됐다. 가자지구에서 피해가 컸다.

전쟁이 아니라도 극단적인 사람들로부터 댓글 세례나 욕을 먹는 건 흔한 일이 됐다. 특히 한국에선 포털이 검증 안 된 매체와 익명의 댓글을 방치하면서, 유튜버들은 언론의 취재 내용을 무한 복제하면서, 제도권 기자들은 흔들리고 있다. 물론 언론 스스로 반성할 측면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권력자들에게 날 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훈련받은 기자들이 사라진다면?

유튜버들이 이를 대신할 수 있을까. 훌륭한 유튜버도 꽤 있다. 그러나 극우나 극좌만 살아남는 생태계 특성상 균형 있는 언론 기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근 도덕적, 법적으로 용납이 힘든 정치인들이 활개 치며 선거까지 당선되는 모습을 본다. 언론의 공신력이 흔들리고 극단 유튜버가 설치는 세태와 관련 깊다. 진실은 물타기되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게 된다.

대통령실은 국내 언론 자유의 지표가 되는 곳이다. 언론의 자유를 수호할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마저 생략해 실망을 줬다. 51분간 혼자 말하거나 편집된 대담을 내보낸 것도 좋지 않은 이미지다.

이제 기자들 앞에 나서 질의응답도 시작했다고 한다. 굿 뉴스다.

정상화의 시작은 기자회견이 돼야 한다.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국민들을 대신해 어려운 질문을 해달라. 날 선 질문도 절대 피하지 않겠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뿐 아니다. 대통령의 진심을 원한다.

리더가 용기를 내서 진심을 말할 때가 진짜 ‘별의 순간’이다.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진심을 공유할 때 국민들은 지지한다.

김선걸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7호 (2024.05.01~2024.05.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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