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 낸다’는 금투세, 개미는 왜 반대할까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하며 내년 1월 1일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자 개미 투자자가 들고 일어섰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요청에 관한 청원’은 동의를 받기 시작한 지 9일 만에 청원인 5만명을 넘겨 기획재정위원회로 회부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라며 강행할 의지를 굽히지 않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개미에게 더 불리한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야당은 극소수 ‘큰손’을 향한 과세라는데, 왜 소액 투자를 하는 개미들이 반대할까.
“추정치 잘못…연 1조3천 개인 부담”
금투세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얻게 되는 소득에 과세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대주주에 한해 세금을 부과했다. ▲개별 주식 종목 지분율이 유가증권 시장은 1%, 코스닥 시장은 2% 이상인 경우 ▲개별 종목당 주식을 시가총액 기준 50억원 이상 가진 경우 대주주로 분류됐다. 대주주 요건에 따라 세금 부담이 있는 투자자는 많지 않았으나 이제는 일반 투자자도 금투세를 내야 한다.
민주당은 금투세가 부자 과세라고 주장한다. 국내 상장 주식과 관련 펀드 등의 양도차익에 따른 금융소득이 5000만원을 넘길 경우에 한해 과세하기 때문이다. 투자 수익이 5000만원을 초과하면 20%, 3억원을 초과할 경우 25%의 세금을 낸다. 2020년 금투세 도입 논의 당시인 문재인정부 추정에 따르면, 과세 대상자는 1만5000명에서 15만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정부는 1440만명에 달하는 국내 주식 투자자 가운데 약 1%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은 문재인정부가 코스피지수 2000선 안팎에서만 움직이는 박스피 기간을 분석 구간으로 잡았기 때문에 과세 대상자가 축소됐다고 주장한다. 2020년 이후처럼 국내 증시가 급등한 시기를 포함하면 과세 대상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투세 시행 후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약 4조328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연평균 1조3443억원이 개미 투자자 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이다.
외국인은 한국서 세금 안 내는데…
“기관보다 개인 세율 높아” 주장
청원인들은 금투세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이라는 점에서 외국인·기관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물론 외국인과 기관은 금투세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세금은 낸다. 그러나 외국인은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라 자국 조세 제도 기준에 따라 한국이 아닌 자국 정부에 세금을 낸다. 미국의 경우 보유 기간 1년 이상 장기 투자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기관은 영업이익과 금융투자소득 등을 합산해 법인세가 부과된다. 청원인들은 “법인이나 기관은 소득 구간에 따라 10%라는 현저하게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며 “반면 개인 투자자는 딱히 공제되는 항목도 없이 20~25%의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위헌적 과세”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금투세는 반기마다 원천징수하는 방식으로 부과되는데 세금을 미리 받아간 후 직접 투자자가 세무서에 확정신고를 해 더 낸 세금을 환급받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게 되는 셈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개인 투자자에게만 금투세가 적용되니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오히려 증권거래세 인하로 반사 수혜를 본다”며 “금투세가 외국인 투자자 세금을 깎아주는 부자 감세인 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원천징수를 하면 복리 효과가 사라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동시에 증시도 하락할 위험이 높다”고 덧붙였다.
금투세 도입에 따른 가장 큰 걱정거리는 증시 충격이다. 기존에 없던 세금을 부과하는 만큼 개인 투자자 조세 저항은 불가피하고 특히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큰손 투자자들이 금투세를 회피하기 위해 매물을 쏟아내며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투자 규모가 수백억원 단위인 소위 ‘슈퍼개미’들은 억 단위 세금을 내게 될 수 있다. 내년 금투세가 시행되기 전에 세금 회피를 위한 개인의 매도 압박이 커지는 이유다.
국내 투자금이 해외로 이탈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주식에 대해서는 매매차익에 250만원을 공제한 뒤 20% 세율로 과세한다.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의 세금이 같아진다. 이 경우 수익률이 더 높은 해외 주식으로 개인 투자금이 몰려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30대 젊은 투자자는 “성장성과 매력이 떨어져도 국장(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절세였다”며 “금투세를 부과한다면 굳이 국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개인 투자자가 걱정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금투세 도입 유예를 결정한 이유도 당시 주요국 통화 긴축, 경기 침체 우려,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의 불확실성 증가 여파가 컸다. 주가 하락, 거래대금 감소 등 주식 시장이 위축되고 개미 투자자 반발이 이어지자 금투세 도입을 2년간 유예했다.
금투세 폐지 가능성 여전히 남았나?
여론 따라 무리하게 강행 안 할 수도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4월 25일 “예정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가 차질 없이 시행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 정책위의장은 “유예든 폐지든 금투세 시행을 미뤄 부자들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라는 총선 민의를 왜곡하고 부자들의 곳간만 지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 속에 금투세 강행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폐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제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이번 청원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넘지 못하고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다시 청원을 해야 한다.
업계에선 동학개미운동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지배적인 반대 여론을 형성하면 야당이 무작정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20대 이상 국내 유권자 중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말 14%에서 2023년 말 30%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비과세 혜택 강화, 일반주주 보호 강화 등 소액주주 권리 향상 정책과 같은 사안은 야당도 찬성하는데, 이는 개인 투자자 유권자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 움직임에 정책이 바뀐 사례도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금투세의 국내 주식 기본공제액은 당초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됐다. 손실이월공제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 개인 투자자가 거세게 반발하자 문 대통령이 “개인 투자자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언급했고, 이에 금융 세제 개편안이 대폭 수정됐다.
국외에서도 양도소득세를 도입하려다 중단한 사례가 있다. 1989년 대만이 양도소득세 도입을 발표하자, 이후 한 달간 대만 TWSE지수가 8789에서 5615로 36% 급락했다. 일일 거래대금도 17억5000달러에서 3억7000달러로 5분의 1토막 나며 결국 부과를 철회했다. 2013년에도 다시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를 추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개인 투자자 반발이 이어지며 2016년 철회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7호 (2024.05.01~2024.05.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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