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尹대통령에 "국정 방향타 돌릴 마지막 기회"…130분간 회담(종합2보)
이 대표, 채상병특검·이태원특별법 요구
"민생 회복 지원금 꼭 수용" 요청
"의료개혁, 민주당 적극 협력할 것"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회담에서 이 대표는 "2년 만에 처음 성사된 오늘 회담은 국민 뜻을 받드는 소중한 자리"라며 "국정의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채상병 특검)'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수용하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한편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께 용산 대통령실 2층 집무실에서 가진 윤 대통령과 첫 양자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은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이제 국정 동력을 민생위기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20분 걸리는데 실제 오는 데 700일"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 앞서 "저희가 오다 보니까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 데 한 700일이 걸렸다"며 "약간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또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이런 얘기도 있어서 오늘 이 만남이 우리 국민들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드리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운을 뗐다. 실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양자 회담은 2022년 5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720일 만이다.
우선 이 대표는 "민간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며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 회복 지원금은 꼭 수용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대표는 "R&D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가능하면 민생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세사기특별법이라든지 다른 화급한 민생 입법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서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이 대표는 당부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고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사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그런 평가가 많다"고 진단한 뒤 "어렵게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서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 또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이런 조치들은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삼권분립·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수용 요청…"가족 등 의혹 정리해야"
채상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 수용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을 수용해 달라는 요청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의료 개혁과 관련해선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민주당이 제안했던 국회 공론화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가 연금 개혁"이라며 "최근에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 50%, 보험료 13%로 하는 개혁안이 마련됐다. 대통령님께서 정부, 여당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개혁안 처리에 나서도록 독려해 주시기를 바라고,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이해서 재생에너지 정책의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재생에너지 부족 때문에 수출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산업 경쟁력 추락이 매우 걱정된다"면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만 구매하겠다는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춰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불황기인 지금이 바로 에너지 고속도로와 같은 재생에너지 산업 기반 확충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적기"라고 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또한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표는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만으로는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가 없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전환을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독도, 과거사, 핵 오염수 같은 이런 대(對)일관계 문제에서 국민의 자긍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존중하신다면 대통령님과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저희가 돕겠다"며 "정치라고 하는 것이 추한 정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 양자 회담, 130분간 이어져 4시14분 종료
이에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고, 또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자세한 말씀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저희끼리 얘기를 진행하도록 하시죠"라며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오후 2시께 시작된 회담은 130분간 이어져 오후 4시14분 종료됐다. 이번 회담에는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과 천준호 대표비서실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배석했다.
尹-李 "의대 증원 불가피"…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양자 회담 종료 후 회담에 배석한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회담에서 진행된 논의에 관해 설명했다. 양측은 이날 회담과 관련한 공동 합의문을 따로 내지는 않았다. 이 수석은 "차담회에서는 민생경제와 의료개혁을 중심으로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다"면서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고,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하는 것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료 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 대표는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이며,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수석은 "두 분이 만날 수 있고, 여당의 지도 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든 계속해나가기로 했다"며 "민생이 가장 중요한 정치·정책적 현안이라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생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당, 야당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하고 이견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이 수석은 부연했다.
민생지원금 지급 요청에 尹 "어려운 분 효과적 지원이 바람직"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이 대표의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관련해서 윤 대통령은 우회적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이 수석은 "대통령은 물가·금리·재정 상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 관련해서는 "이 대표가 국회 공론화위원회에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방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윤 대통령은 정부가 국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만큼 충분하고 많은 데이터를 이미 제출했다"고 답했다. 연금 개혁은 중요한 문제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측 간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이태원특별법에 대해서도 양측은 이견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사건 조사와 재발 방지·유족 지원에는 공감을 표했지만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어 이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논의한다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는 뜻을 시사했다.
尹·李 독대는 없어…"소통·협치 계속되길"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단독으로 만나는 시간은 없었는지, 향후 영수 회담을 정례화할 것인지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따로 만나는 시간은 없었다"면서 "정례적으로 날짜를 정해서 만나는 식으로까지는 없었고, 필요할 때 또 합의를 통해서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 대표의 모두발언에서 언급된 채상병 특검법 요구와 윤 대통령 가족 의혹 정리 요청에 대한 논의가 있었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둘 다 모두발언에서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국무총리 인선에 대한 협조 요청도 없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이 밖에 총선 참패 후 대통령실이 민의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는 반성 차원에서 법률수석 신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책 수행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이 대표가 거론했고, 이에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 언급이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다 보니 민심 정보, 정책이 현장에서 이뤄질 때 어떤 문제점과 개선점이 있을지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서도 민정수석을 없앴다 2년 후 다시 만들었는데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 대해 "대통령실은 갈등이 첨예한 정국을 정상화해서 정치를 복원하고 여아 간 협치를 위해 선의와 협의를 갖고 회동에 임했다"면서 "대통령 측에서는 야당과의 소통·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세웠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정치적 상황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소통과 협치가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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