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송법 제정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2024. 4. 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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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마리나리조트에 대한 인천광역시 지원금 환수를 위한 주민소송에 관한 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두67251 판결 및 대법원 2024. 3. 28. 선고 2021두62720 판결에 관한 소고

"정부나 지자체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제기된다. 의회는 예산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을 매년 받고 있다. 2024년도 국가 예산은 656.9조로 그 중 1%만 낭비된다고 하더라도 6.5조, 10%일 경우 65조다.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집행은 법적 절차를 반드시 따라야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고, 공무원은 주권자를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는 자이다.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징수한 세금을 적법하게 사용해야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세금을 위법, 부당하게 사용했을 경우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만 한다.

지방자치법 제16조 및 제17조에서는 지자체와 그 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의 처리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면 감사를 청구할 수 있고(감사청구전치주의), '감사결과'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의 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주권자인 주민들이 지자체 장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는 주민소송 제도이다.

인천광역시는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왕산마리나요트경기장 조성사업을 위해 대한한공 자회사인 주식회사 왕산레저개발에 156억 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는 국제대회지원법상 민간투자로 유치되는 시설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사업비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이에 인천시민 396명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인천광역시의 지원행위가 국제대회지원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감사청구가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조사·판단을 하지 않은 채 감사청구를 각하했다.

이에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소속 회원들이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주민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감사기관이 주민감사청구를 수리해 실제 감사가 진행된 경우에 한해서만 지방자치법상 주민소송 사유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2심 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각하결정에 터 잡아 1, 2심 법원 모두 인천광역시의 지원행위가 위법한지 여부에 대하여 심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2020. 6. 25. 선고 2018두67251 판결)은 1, 2심 법원의 판결은 위법하다며 파기환송 판결했다. "해당 사무의 처리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는지 여부는 감사기관이 본안 전 단계에서 검토·판단해야할 주민감사청구의 적법요건이 아니라 주민감사청구 사항의 실체에 관해 본안에서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감사기관이 잘못된 판단을 하여 주민소송이 제기된 경우 감사기관이 조사를 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법원은 구체적인 심리를 하여 해당행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1, 2심 법원 모두 지방자치법상 주민소송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판단을 했다. 만약 대법원에서 위와 같은 파기환송 판결을 하지 않았다면, 향후 감사청구를 한 사안에 대하여 감사기관뿐만 아니라 법원 역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각하결정을 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사기관의 잘못을 주민소송을 통해 곧바로 바로잡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위 대법원 판결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법원은 인천광역시의 지원행위에 대하여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 법원은 "국제대회지원법상 '민간투자로 유치되는 시설'을 사업비 지원대상에서 제외한 취지는 민간이 일부라도 투자하여 유치되는 모든 시설을 국가 또는 지자체의 사업비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간투자법과의 관계에서 국가 또는 지자체의 중복 지원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면서, '민간투자로 유치되는 시설'은 '민간투자법에 따른 민간투자사업으로 유치된 시설'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상고심 대법원(2024. 3. 28. 선고 2021두62720 판결) 역시 위와 같은 파기환송심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법원은 법해석의 대원칙인 문언해석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단을 하였다.

국제대회지원법에는 '민간투자로 유치되는 시설'이라고만 기재되어 있고, 달리 '민간투자법에 따른 민간투자로 유치 (또는 시행)되는 시설'이라고 규정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국제대회지원법과 시행령에는 '민간투자'와 구분하여 '민간투자법에 따른 민간투자'를 별도로 기재하고 있고, 그 밖에 '민간투자'의 의미에 관하여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실제 왕산마리나 주식회사는 국제대회지원법이 아닌 민간투자법에 따라 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즉, 인천광역시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령을 제대로 검토하지 아니한 채 집행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법원은 마치 결론을 먼저 내린 후 그에 걸맞은 이유를 찾기라도 하듯,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명시된 문언과 다른 판단을 하였다.

국제대회지원법, 민간투자법 등 관련 법령을 규정한 이유는 세금이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엄격한 절차와 형식에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국제대회지원법에서 '민간투자로 유치되는 시설'을 사업비 지원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대회 유치 등을 빌미로 민간기업에 함부로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른다면, 국가 또는 지자체가 대회 유치 등을 위해 민간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령을 어긴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법원의 판단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주민소송을 제기한 후 재상고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비와 소송비용은 모두 주민이 부담해야 한다. 승소 가능성도 희박한데다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주민소송제도는 자연스럽게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다.

감시제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소송을 제기할 경우 변호사비나 소송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의 위법한 재정행위를 감시할 수 있도록 이른바 납세자 소송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소송법 제정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형준 변호사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덧붙이는 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편집위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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