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일본해 병기 촉구하는 외교부의 문제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4. 4. 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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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강효백 전 교수 "왜 동해 아닌 한국해인가"

[김종성 기자]

"우리는 일본과 달리 '일본해' 대신 '동해'만 단독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양측이 모두 사용하고 있는 명칭을 함께 병기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외교정책' 코너에 있는 설명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이며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게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다.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는 주장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외교부는 평가했다. 하지만 동해 명칭 속에는 한국인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제 식민 지배의 잔재가 묻어 있다는 게 전직 외교관이자 국제법학자인 강효백 전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의 지적이다.

강효백 전 교수는 외교부 동북아1과(일본과)와 주대만대표부·상하이총영사관·주중국대사관 등에서 12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2003년부터 21년간 국제법 교수로 강의했다.

일제청산연구소(소장 양진우 목사)가 기독교 매체 <C헤럴드>와 함께 경기도 하남시 화평교회에서 28일 주최한 제11차 월례포럼의 강사로 나선 그는 일제강점기에 동해가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해·일본해 병기 주장은 그런 이중성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일제청산연구소 제11차 월례포럼에서 강의하는 강효백 전 경희대 교수.
ⓒ 일제청산연구소
  
한국 동쪽 바다가 국제사회에서 '한국해'로 불리는 것과 '한국만(灣)'으로 불리는 것은 천양지차다. 한국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의미인 한국만으로 불리게 되면, 제3자들이 볼 때에 이 바다에 대한 한국의 권리는 더욱 강해진다. 한국만이라는 명칭은 이 바다가 한국의 내해(內海)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강 전 교수는 18세기와 19세기에 세계 바다를 지배한 서유럽인들이 만든 지도에 한국만이라는 표현이 적지 않음을 강조했다. '1740년~1873년 기간에 영국·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아일랜드에서 제작된 지도 중에 한국 내해나 다름없는 한국만(Corea Gulf, Gulf of Corea)이란 표현을 담은 지도가 86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만으로 표기된 지도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강효백 전 교수가 제시한 1821년 미국 지도 속의 한국만 표현.
 
 강효백 전 교수가 제시한 1821년 미국 지도 속의 한국만 표현.
 
일례로, 1821년에 제작된 미국 지도들에도 그런 명칭이 표기돼 있다. 고래사냥을 위해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역을 넘나들며 이 바다를 한국의 내해쯤으로 인식하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공권력의 공식적인 '동해' 표현 계기는 일제 강점

그런데 이 바다를 제3자들이 어떻게 불렀는가도 중요하지만, 바다의 관리 주체인 공권력이 어떻게 불렀는지 역시 중요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식민 잔재가 발견된다는 게 강효백 전 교수의 지적이다.

강 전 교수는 대한제국 후반인 1907년과 1908년에 제작된 지도에서 대한해(大韓海)라는 표현이 사용됐음을 언급했다. 1907년에 제작된 '대한전도'에서 그가 말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전도 속의 대한해 표현.
  
그는 동해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제강점 이후였다고 언급했다. '1910년 8월 29일 병탄 이후 일제는 한국의 고유 지명에 동서남북 방위를 붙여 백악을 북악으로, 삼각산을 북한산으로, 목멱산을 남산으로 개칭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한국해를 동해로, 대한해협을 남해로, 황해를 서해로 개칭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국 멸망은 대한해 명칭이 폐기되고 동해 명칭이 공식 사용되는 계기가 됐다. 그 이전에도 한반도 사람들이 한반도 동쪽 바다를 동해로 부르는 일은 당연히 흔했다. 강 전 교수가 말하는 것은 공권력이 공식적으로 동해 표현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일제 강점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동해 명칭을 사용했다는 이 대목에서 그가 강조한 것이 있다. 고대 이래로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동해로 부르는 일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인터넷 일본어 사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동해가 일본의 별칭 혹은 이칭 또는 미칭이었다는 점은 입증이 필요 없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인터넷 일본어 사전에서 확인되는 동해의 다양한 의미.
ⓒ Weblio 국어사전
 
중국 대륙이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중심이던 시기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동국(東國)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일본인들은 자신을 동해로 지칭하기도 했다.

현대 한국에서는 해(海)가 바다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이 단어는 한자 문화권에서 '땅'의 의미로도 쓰였다. 중국 한나라 때는 동해군(東海郡)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오늘날의 한국에도 동해시와 남해군이 있다.

사해(四海)의 '해'는 바다를 가리키기보다는 땅을 지칭했다. 김원봉의 의열단을 위해 신채호가 1923년에 집필한 의열단선언(조선혁명선언)에서도 그런 의미로 쓰였다. 민중에 대한 억압과 압제가 사라진다는 복음이 사해에 전파되고 혁명이 일어나는 날은 "강도 일본이 필경 쫓겨 나가는 날이리라"라고 신채호는 선언했다. 여기서 신채호가 말한 '해'는 식민지배가 진행되는 한국 땅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들 역시 '해'를 땅의 의미로도 썼고, 동해를 자국의 별칭·이칭·미칭으로도 썼다. 일본인들은 동해라는 말을 들으면 동쪽 바다도 연상하고 일본국 자체도 연상했던 것이다.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

그래서 총독부가 대한해 명칭을 폐기하고 동해 명칭을 사용한 일이 고약하다는 것이 강 전 교수의 토로다. "일제강점기부터 동해는 일본의 별칭이자 일본이 지배하는 식민지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이중적 함의를 띠는 고약한 의미가 내포된 바다 이름"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조선총독부가 '동해는 일본의 별칭이므로 앞으로 이 표현을 쓰겠다'고 언명하지는 않았다. 식민지 한국인들은 한반도 동쪽 바다라는 의미로 그 표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볼 때는 그것은 자국을 지칭하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었다. 식민지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어휘가 동해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약'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해 명칭에도 일제 식민잔재가 묻어 있다는 것이다.

동해가 한반도 동쪽 바다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고 일본에 촉구하는 외교부의 주장이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를 추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강 전 교수는 '차라리 한국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요청하라'고 옛 친정에 촉구했다.
 
 ‘한국만’이 표기된 서양 지도 앞에서 강의하는 강효백 전 교수.
ⓒ 일제청산연구소
  
<G2 시대 중국법 연구> <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 상징 바로잡기>를 비롯해 30권 이상을 저술한 강효백 전 교수는 윤봉길 의사가 체포될 당시의 사진이 일제의 조작임을 입증해 이 사진이 교과서에서 삭제되게 만들었다.

또 중국 지도에서 중국 땅과 한국령 이어도가 실제보다 40킬로미터 가깝게 표기된 사실을 찾아내 중국 측이 지도를 수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로 인해 1만 평방킬로미터 이상의 바다가 지도상에서 한국 해역으로 회복됐다.

2012년 6월에 강효백 당시 경희대 교수가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특강할 때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이 "강효백 교수는 서희 장군보다 위대하다"며 "세 치 혀도 쓰지 않고 글 한 줄로 우리나라 제주 이어도 해역 1만 평방킬로미터를 넓혔으니"라고 말한 일이 있다고 강 전 교수는 다음달에 발행될 신간인 <왜 동해 아닌 한국해인가?>에 썼다.

그는 신간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28일의 포럼 강의를 진행했다. 윤봉길 체포 사진의 진실을 찾고 이어도 해역을 되찾는 일에 이어서 동해 명칭 속에 담긴 고약한 의중을 널리 알리겠다는 게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다.

이 전직 외교관은 동해 명칭에 담긴 이중적 의미를 간과한 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고 일본에 촉구하는 외교부의 태도에 담긴 문제점이 바로잡혀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외교부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응원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다.
 
 일제청산연구소 제11차 월례포럼 포스터.
ⓒ 일제청산연구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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