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 잃고..." 감독이 영화에 담은 진심
[이선필 기자]
▲ 영화 <미지수>를 연출한 이돈구 감독. |
ⓒ (주)인디스토리 |
2년 전 영화 <봄날>은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느낀 감흥이 재료였다면, 이 영화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서 시작했다. 꾸준히 상실감을 조명하는 탓에 영화들이 자칫 무겁고 어두울 것 같지만 <미지수> 또한 전작처럼 마냥 슬프진 않다. 오히려 몽환적이고 아기자기한 설정들이 눈길을 끈다.
이돈구 감독의 신작 <미지수>는 살인을 했다며 두려움에 떠는 남자 친구 우주(반시온)를 품고 도우려는 지수(권잎새)가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이와 함께 아르바이트생을 사고로 잃은 동네 치킨집 사장 부부(박종환, 양조아)와 아들을 잃은 엄마(윤유선)가 등장해 저마다 상실의 아픔을 품고 사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중간중간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서 떠도는 이미지가 등장하는 등 SF 요소와 멜로 요소가 흥미롭게 가미돼있다. 강렬한 이미지나 스릴러 성을 담아온 전작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전면에 내세운 두 신인 배우
"도전이었다. SF가 워낙 팬층이 견고하잖나. 제가 SF 장르를 만들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랜 친구와 이별하게 됐고, 살면서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낯선 건 처음이었다. 상실감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관계가 좋을 때는 이별이란 걸 염두에 두진 않잖나. 하지만 이별이란 건 갑자기 찾아오곤 한다."
그 상실감을 우주라는 공간과 연결시킨 것에 이돈구 감독은 공포심이라 답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살며 경험한 사회적 참사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떤 분들은 좋아하는 공간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바닷속과 우주를 무서워한다. 망망대해에 있거나 미지의 세계에 떠 있는 게 마치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엔 바닷속을 촬영할까 했는데 예산의 문제로 지금과 같은 설정을 하게 됐다. 그리고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너무 일기처럼 보이더라. 제 개인 경험이라도 항상 장르성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 쓰기가 더 어려웠다.
▲ 영화 <미지수> 관련 이미지. |
ⓒ 인디스토리 |
그간 신인 배우들을 꾸준히 등용해 온 이돈구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배우 권잎새와 반시온을 캐스팅했다. 뮤지컬 배우, 그리고 과거 가요 오디션 프로 출연자로도 알려진 권잎새는 조건 없이 우주를 돕고, 아들을 잃은 어머님을 선뜻 위로한다. 우주는 자신의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고, 제법 순수하게 속죄 의식을 갖는다. <미지수>가 신선하게 다가온다면 이 두 배우들의 공이 크겠다.
"반시온 배우는 6년가량 알던 친구인데, 사람이 투명하고 솔직하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단역을 해왔는데 지금처럼 중심 캐릭터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근데 시나리오 과정에서 우주 대목을 쓸 때마다 반시온 배우가 계속 생각나더라. 지수 역은 나름 알려진 배우 측과 접촉하기도 했지만, 권잎새 배우가 오디션 과정에서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홍보마케팅을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지수와도 같은 느낌의 배우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겐 배우의 스타성이 크게 중요친 않은 것 같다. 등장인물과 같은가 그것만 본다. 대화를 나눠보고 어떤 사람인지 생각한다. 물론 오디션을 보긴 한다. 근데 그게 절대적이지 않다. 현장에서 참 잘하는 배우인데 오디션에서 죽 쑤는 이도 많거든. 테크닉은 동기부여만 잘 해주면 알아서 는다. 그래서 마음이 열려 있는 배우인지가 제겐 중요하다."
배우 연기에 집착하다
이돈구 감독은 그간 콘티를 꼼꼼하게 만들어왔다. 대본과 함께 촬영장에서의 설계도와 같은 콘티를 이번엔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에게 모든 걸 열어놓기 위함이었다지만 스스로도 모험이었다. 배우 출신이기도 한 이돈구 감독은 "그래서 더 배우분들 연기에 집착했던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촬영 두 달 전부터 리허설을 했다. 집과 소품을 재현해놓고 말이다. 박종환, 양조아 배우님이야 워낙 베테랑이어서 콘티가 있는 게 더 나았겠지만 반시온 배우나 권잎새 배우는 거기에 갇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영화가 특별한 카메라 기술이나 미장센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름 콘티 없이 하게 됐다. 저로서도 성장이었다. 배우들에게도 특별한 기술 말고 그 현장에 그 사람으로 존재해달라고 말한 정도다.
근데 그게 어렵잖나. 어떻게 지수로, 우주로 존재하지 그 딜레마가 있었던 것 같다.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까 힘들어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그래서 더 빨리 받아들이더라. 반시온 배우가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고 권잎새 배우는 용맹한 스타일이랄까. 그래서 현장에서 권 배우가 리드를 잘 해나갔던 것 같다."
상실과 이별을 소재로 했다지만 결국 영화는 남은 자들이 어떻게 그걸 견뎌내고, 애도하는지 물어보고 의미를 던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돈구 감독 또한 "그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더 큰 일을 겪으신 분들에 비할 바 아니지만 저도 그랬고, 결국 남은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감히 제가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용기를 갖고, 두꺼운 커튼을 걷어볼 수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었다. 상실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시고 주변을 좀 둘러봤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별은 정말 갑자기 오거든.
▲ 영화 <미지수>를 연출한 이돈구 감독. |
ⓒ (주)인디스토리 |
영화 <가시꽃>(2013) 데뷔 후 약 10년간 다섯 편의 장편을 발표했다. 독립예술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돈구 감독은 추후 상업영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한다. 한국영화산업 침체 일로에서 더욱 어려운 독립영화 제작 여건임에도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해온 그에게 영화하는 마음을 물었다.
"일단 할 말이 많아야 한다(웃음). 저도 종일 어떤 한 장면, 어떤 단어들을 떠올리며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마치 운동하듯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에 훈련이 돼 있다. 현장에도 너무 가고 싶다. 창작용이겠지. 일종의 집착 같은 게 있다. 그게 없다면 영화를 오래 못할 것 같다. 왜냐면 작품 하나하나 매번 여러 개 산을 넘어야 하거든.
상업영화는 전혀 안 할 것 같다고 오해를 하시는 분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제안받은 걸 거절한 적은 있다. 주변 친구들이 엄청 욕했다. 왜 거절했냐고(웃음). 근데 제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다. 하고픈 이야기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걸 상업 영화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인 것이지. 하고픈 이야기가 아닌데 상업영화 타이틀을 달면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더라. 물론 제 생각이다. 영화를 오래하기 위해 놓치지 않아야 할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MBC가 위험합니다... 이 글을 널리 알려 주세요
- 갑작스러운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 채상병·김건희 침묵 윤석열... 국힘 "야당이 다시 얘기 안 해서"
- '채 상병 사망 당시 하천 상황 열악'...지휘관 진술로 확인됐다
- '서울미래유산'이라더니 이젠 단속만... 힙지로 '노가리 골목' 한숨
- 1심 이어 2심도 "윤 대통령 식사비·영화비 공개하라"
-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 의사들이 이 구호를 걸고 파업했다면 어땠을까
-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3년까지 두고 볼 수 없다"
- "이종섭 둘 중 하나... 실없는 장관이거나 누군가 개입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