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겨우 넘긴 텐트폴영화, 실패의 이유는?

김성호 2024. 4. 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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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04] <비공식작전>

[김성호 기자]

이전까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납치 말이다. 21세기 세상에 해적이 있다는 것도, 매년 수십 명의 한국인들이 납치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외교부까지 개입해서 이들의 귀환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항해사가 되기 위해 처음 항해를 시작했을 무렵, 해적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들었다. 아프리카 동북쪽 소말리아 앞바다, 아프리카 서안 나이지리아 근해, 또 말레이 제도 일원에서 수시로 배가 피랍되고 선원들이 납치된다는 교육을 받았다. 해적에 따라 화물만 취하고 선원을 해하는 경우도 있고, 선원을 납치해 몸값 협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배웠다.

실제 바다에서 일을 시작하니 해적의 위협은 현실이 되었다. 아프리카 서안을 따라 올라가던 때, 통신장비는 수시로 해적의 위협을 알렸다. 수십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배가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날아들고는 했다. 한 번은 아예 선상에 해적이 침입해 선원들이 '시타델'이라 불리는 선내 안전구역으로 대피했고 몇은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일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매년 보고되는 것만 200명 정도의 피랍 피해가 발생하고, 그중엔 한국인 선원도 꽤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단 나라 밖에 나간 사람이 해적을 비롯한 무장단체에 붙잡히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외교부가 임무를 다하지 않으면 피랍된 국민은 철저히 혼자 고립돼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국 외교부가 매년 민간인 피랍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이유다.
 
 영화 <비공식작전> 포스터
ⓒ 쇼박스
 
피랍 외교관 구출 실화... 실상은 이렇다

<비공식작전>은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된 국민을 구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비공식작전을 바탕으로 한 실화영화다. 피랍된 이는 외교관 신분의 국민이었고, 그를 구출하려 파견된 이 또한 외교관이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 분명하다.

때는 1987년, 5년 째 기피지역인 중동담당만 맡고 있는 외교관 민준(하정우 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에선 한국 외교부 직원들만 알고 있는 암호가 들려온다. 암호를 해독하니 몇 년 전 레바논에서 납치된 외교관이 보내온 메시지다. 그로부터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1987년이 어떤 해인가. 독재자 전두환의 임기 마지막 해, 노태우가 당선된 바로 그 해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도 신군부에 짓밟힌 한국은 88올림픽 개최에 국운을 걸고 있었다. 여전히 정보를 쥔 안기부가 군림하는 세상, 정부 부처가 모두 안기부장의 눈치만 보고 일하던 시절이다. 주요한 업무는, 특히 돈이 움직이는 일은 죄다 안기부를 거치는 게 관례화되어 있는 가운데, 납치돼 있던 외교관의 생존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아랍어도 못하는 중동통의 좌충우돌 모험

1년이 훌쩍 넘게 생사가 알려지지 않던 공무원의 소식이었다. 최강석 외교부 장관(김종수 분)은 안기부를 거치지 않고 외교부가 독자적으로 인질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비서실장의 재가까지 받고서 그나마 조직내 중동통으로 불리는 민준을 현지에 파견한다. 이후 영화는 제대로 된 치안이 서지 않은 당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민준이 인질을 구해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는다.

중동통이라고 하지만 아랍어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민준이다. 당시 한국 외교력의 밑천이 여실히 드러나는 가운데 민준은 현지에서 만난 택시기사 판수(주지훈 분)에게 기대어 레바논 무장조직에 접촉해 약속된 몸값을 건네려 한다.

그러나 일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외교도 무엇도 관심 없는 레바논 군 당국은 돈을 뜯는 데만 혈안이 돼 있고, 현지 치안은 몸값을 노린 갱단 간의 싸움까지 공공연히 빚어질 만큼 엉망진창이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닮아 있는 영화들, 소모되는 설정들

해외를 배경으로 납치와 몸값협상이 이뤄진다는 설정은 지난해 초 개봉한 임순례의 <교섭>을 떠올리게 한다. 구성 또한 상당부분이 닮아 있어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얼마 시차를 두지 않고 개봉하는 흔한 사례의 하나처럼도 여겨진다. 이를테면 2015년 2주의 시차를 두고 개봉한 <탐정: 더 비기닝>과 <성난 변호사>가 서로 유사한 액션 시퀀스와 설정을 품고 있는 사례, 2017년 개봉한 <프리즌>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역시 닮아 있는 설정과 구성을 가진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교섭> 속 정부 요원들이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카심(강기영 분)에게 큰 도움을 받았듯, <비공식작전>에서도 판수가 혁혁한 공을 달성한다. 처음엔 신뢰가 없던 카심과 요원들이 마침내는 우정을 다지게 되듯이, 판수 역시 민준이 가진 돈을 훔쳐 도망가는 등 사고를 치지만 마침내는 굳건한 전우애를 쌓게 된다. 두 역할 모두 영화의 긴장을 풀어주는 감초의 역할까지 일부 담당함은 물론이다.

물론 두 영화가 영화계에서 공공연히 나도는 트리트먼트 시나리오 유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 크지 않은 시차를 두고 여러모로 닮아 있는 설정의 영화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 쇼박스
 
신선한 소재발굴... 오락영화의 선결조건

여기에 더하여 2021년 작 <모가디슈>부터 치안이 불안한 타지에서 위기를 겪는 정부 요원들의 이야기가 연달아 제작되어왔음을 고려하면 <비공식작전>이 한국 관객에게 신선함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형배급사의 소위 '텐트폴 영화(텐트의 기둥처럼 한 해 개봉작 중 성공을 보장해줄 믿을 만한 영화라는 뜻)'로 개봉했음에도, 100만 명의 관객을 겨우 넘긴 데는 이처럼 유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럼에도 <비공식작전>엔 눈여겨 볼 구석이 없지 않다. 영화의 가장 큰 마케팅포인트였던 연출자 김성훈의 역량은 익숙하지 않았을 해외 촬영에서도 빛을 발한다. <끝까지 간다>와 <터널>을 통해 제 재능을 납득시킨 바 있는 김성훈이다. <비공식작전>에서도 현지에서의 긴박한 상황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영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템포를 조절한다. 캐릭터들의 관계가 익어가는 속도와 관객이 그들에게 몰입하게 되는 속도 또한 적절히 보조를 맞추어서 무리 없는 작품이 되었다. 하정우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이 영화의 부진한 성적에 대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탄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여러모로 <비공식작전>은 한국 관객의 입맛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를 내보인 작품이다. 출중한 연출자와 검증된 배우, 꽤 잘 만들어진 완성도로 나온 작품이 철저하게 외면될 수 있음을 알린다. 티켓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거듭된 설정에 식상함을 느낀다. 소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피로감은 제작자의 판단보다 빨리 누적될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 만큼이나 신선한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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