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안'에 대한 세대 갈등 프레임은 틀렸다

주은선 2024. 4. 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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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의 세대론적 의미... 세대 불문한 노후 불안에 대한 우려

[주은선]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 촉구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4년 한국의 연금개혁 방향을 선택하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공론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은 지난 4월 21일에 최종적으로 연금개혁 방향을 선택하였다. 더 내고 더 받는 안, 즉 국민연금 수준은 40%에서 50%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13%로 높이는 안이다. 시민대표단 중 다수가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강화론을 선택한 것이다.

약 한 달간의 학습과 장시간 토의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시민대표단 다수의 이런 선택에 대해 몇몇 언론은 그 선택 이유와 의미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예를 들면 몇몇은 2030이 시민대표단에 적게 들어가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는 '소득보장강화론'을 거부했을 것이고, 이들이 시민대표단에 많이 들어왔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 가정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20대 역시 소득보장 강화론을 더 많이 선택하였다. 시민대표단 선정에 세대 대표성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고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들어왔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다. 물론 이런 근거 없는 해석을 정정한 보도는 없다.

시민대표단의 세대 대표성을 문제 삼기 어려워지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20대의 소득보장 강화론 선택 이유에 대해 '20대는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언론에 등장했다. 이런 해석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해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자녀가 없어서...'는 무례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20대는 자녀가 없다는 성급한 일반화도 문제이지만, '자녀가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의 증거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채, 이것을 시민대표단 중 특정 집단의 판단 근거로 내세운다는 것은 시민대표단의 임무와 태도에 대한 존중을 결여한 것이다.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에서는 젊은이건 노인이건 동등하게 성숙한 시민으로 토의에 참여한다. 각자는 모든 시민을 대표하므로 개인의 직접적 이해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습과 토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가장 바람직한 해법을 찾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대표단으로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의해서만 연금개혁 대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빠른 고령화 가운데 닥친 노후보장에 관한 과제와 재정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역량을 깊숙이 생각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시민 각자가 대표로서 가진 책임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여하였겠는가? 이들이 시민대표단으로 가진 무거운 책임감, 장기간의 학습과 토론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대표단 중 특정 연령대를 짚어 누군가의 식견을 단견이라거나 혹은 각자의 처지에서 바로 나온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1)

시민대표단 다수의 소득보장 강화론 지지, 특히 20대의 지지에 대해 이런 무리하고도 무례한 해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일부에서 연금개혁 문제를 세대 분할의 틀로 해석하길 끝끝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쯤 되면 누구든 연금개혁 문제를 세대 분할이란 틀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경계조차 불분명한 세대를 분리하고, 그렇게 나눈 세대별로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어느 연령대에 이득이고,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은 어느 연령대에 손해인지를 따져서 이해관계를 쪼개놓고 주장하는 것은 잠시는 통할지 모르겠지만 한계가 있다. 왜 그럴까?

답은 시민대표단 논의에 앞서 3월에 이루어진, 연금 이해당사자로 구성된 의제숙의단 논의에 있다. 청년, 노인, 노동자, 농민, 사용자, 지역가입자 등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은 대다수가 연금개혁 의제 이름을 '세대 간 형평성'이 아닌 '세대 간 연대'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미래 연금제도 존립의 핵심이 '세대 간 연대'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삶, 장년의 삶, 노년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 빈곤이 만연하다는 것은 노인만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으며, 노후 불안에 대해 속 편한 세대는 없다.

예를 들면 저급여의 덫에 빠져 있는 국민연금 보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하여, 2050년경에도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계속 노후 불안에 시달리고 노인 빈곤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노인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2050년의 젊은이들이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이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빈곤 대응 제도에, 각자의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거나 그러지 못해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축소된 상태에서는 각자 사적연금 상품을 사들이는데 매달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노인이 많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중 얼마만큼을 사회연대에 의한 공적연금에 투입하느냐, 또 얼마만큼을 사적 부양에, 연금시장에 투입하느냐 하는 것이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 촉구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토의 과정에서 나온 시민대표단의 질의 중 상당 부분은 불안정한 경력 확보 전망과 관련된 것이었다. 심화하는 고용불안정에 대한 우려는 20, 30대만의 것도, 50, 60대만의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면 노후 불안은 특정 세대의 것만이 아니며, 세대 불문하고 모두에게 이를 극복할 수단은 필요하다. 40대, 50대라고 해서 모두 노후 대비용 자산을 쌓아놓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고용불안과 조기퇴직이 만연한 가운데 젊은 세대라고 해서 노후 빈곤 위험이 이전 세대보다 덜하다고 볼 이유도 없다. 20대, 30대라고 해서 나이들기까지 안정적인 경력을 쌓으며 보통의 삶을 살며 노후를 대비하리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이 경우 소위 퇴직연금으로 부족한 국민연금을 메우라는 말은 공염불과 같다.

시민대표단이 했던 또 다른 질문 중에는 2025년 은퇴하는 노인보다 지금의 40, 50대가 나이 들어 2040년, 2050년에 받게 될 국민연금 평균 급여 수준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것이 있었다. 2007년 국민연금 삭감의 효과가 시간에 따라 점점 더 크게 나타나면서, 보험료를 내는 기간이 길어져도 미래 국민연금액 수준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질문이 나온 것이다.

혹자는 이를 4050세대가 겪게 되는 국민연금 인하로 인한 불공평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지만, 핵심은 세대를 불문한 노후 불안에 대한 우려였다. 저급여 상태에서 더 낮아지는 국민연금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특히 고령사회로의 전환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정년은 늘지 않고 크레딧의 혜택도 볼 수 없는 세대이므로 이 우려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누구든 어느 세대에 속하기 이전에 모두 동시대인이다.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주요한 고통이 있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서 그것은 불안정성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은 노동의 불안정성, 그리고 노후의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중간층도 이를 피할 수 없다. 출생 연도가 달라도 동시대인이라면 이 시대의 고통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삶에서 젊은이들은 그저 동시대인이며, 노인이 되는 미래의 삶에서도 동시대인이다. 그래서 어느 세대에 대해서건 부양책임은 세대 순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국민연금 보장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국민연금액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일부 다시 되돌려 우선 2040년, 50년에 은퇴하는 세대가 빈곤한 노인이 되는 것을 좀 더 막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40, 50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노인 빈곤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노인 빈곤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미래 젊은이의 사적 부양비용을 줄인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든 공적연금을 위한 재정에서 국가의 책임 몫을 점차 늘려나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한 부담은 노동과 자본, 그리고 상층과 하층 사이의 분배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게 된다. 사회연대적 공적연금 보장과 재정에서 핵심은 세대 분할에 근거한 세대 간 이해관계 대립이 아니라 결국 불평등의 극복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가입 기간을 늘려 앞으로 20~30년에 걸쳐 국민연금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은 우리 사회를 불안에서 벗어난 다른 복지국가로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특정 세대에만 좋은 것은 아니다. 세대 분리와 갈등론에 기초한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에 대한 반발은 잠시 주목받을 수는 있겠지만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이 보여주듯이 연금이란 것의 본질을 설명하고 우리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별로 소용이 없다. 사적연금 시장의 활성화 외에는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연금에 대한 세대 갈등 프레임은 틀렸다.

미주
1) 참고로 연금개혁에 관한 이해관계에 의한 의사표명은 시민대표단 논의에 앞서서 이해당사자의 공청회, 연금개혁 의제 설정 논의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시민대표단의 논의는 이와 분리되어 이루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연금행동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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