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위험하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4. 4.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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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왜?

[김종성 기자]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허드슨연구소에서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와 대담 중인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
ⓒ 허드슨연구소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와의 대담에서 그는 "글로벌 무대에서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무언가를 한 공로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솔직히 묻는다면, 나는 기시다와 윤의 공동 수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이 사실은 25일 윤석열 대통령실의 언론에 공지하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윤석열·기시다의 노벨평화상 언급은 1988년의 전두환 노벨평화상 추천보다 못한 측면이 있다. 5·18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이 추천됐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사유를 놓고 보면 그런 전두환을 추천한 것보다도 명분이 떨어지는 게 이번 언급이다.

1987년 6월항쟁의 직격탄을 맞은 전두환이 노태우 정권에 정권을 넘긴 직후인 1988년 3월 3일의 일이었다. 다음날인 4일 자 <동아일보>는 "유럽의회 관계자들이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금년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은 3일 서방 외교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이 소식통은 '올해 노벨상 후보 추천을 의뢰받은 영국 의회와 서독 연방의회의 유력 의원들이 지난 1월 29일 노르웨이 의회 노벨상위원회에 전(全) 전 대통령의 후보추천 수속을 마쳤다'고 밝히고, 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몇 차례에 걸친 안전보장상의 중대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 한반도의 평화 유지에 기여한 공로라고 설명한다."

영국·서독 의원들은 전두환이 공산권에 반격을 가하지 않은 일을 높이 평가했다. 위 기사는 "전 전 대통령이 83년 9월 소련의 KAL기 격추 사건에 대해 냉철히 대처한 것을 비롯, 랑군의 테러 사건과 지난 11월에 발생한 KAL기 추락 사건 때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항 조치를 자제"한 점을 거론하면서, 전두환이 김일성에게 평화통일을 제안하고 청와대를 평화적으로 나오는 것과 더불어 이런 것들이 추천 사유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노벨평화상 감으로 언급한 것은 두 사람이 미국의 세계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기시다를 거론하기 직전에 캠벨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초점을 맞춘 노벨상이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윤석열·기시다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캠벨 부장관의 말이다.

인도태평양전략은 보편적 관점의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아니다. 이는 세계를 하나가 되게 하기보다는 둘로 나누는 전략이다. 미국을 도와 이런 전략에 참여한다는 것이 윤·기시다를 언급한 사유이므로, '전두환이 자제했기 때문에'라는 1988년의 추천 사유보다 못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커트 캠벨이 참여한 대담의 주제는 윤석열·기시다가 아니라 기시다 한 사람이다. 허드슨연구소도 대담 제목을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과의 대화; 미일관계의 새로운 시대'로 잡았다. 미일관계를 다루는 대담에서 노벨평화상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무부 부장관이 기시다를 노벨평화상 감으로 언급한 이유를 드러낸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
ⓒ 허드슨연구소
  
10일로 예정된 미일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캠벨은 이 회담이 "양국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도 이 회담을 "역사적 정상회담"으로 평했다.

캠벨은 이번 회담이 양국관계를 크게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판단한다. 그를 비롯한 대담 참여자들은 업그레이드의 결과로 미국과 일본이 군사·안보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호평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가 이전보다 높아지고 일본이 떠안는 부담도 이전보다 무거워졌다는 의미에서 '일본이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대담에서 캠벨은 미일관계를 "이 행성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로 표현했다. 일본이 군사적 부담을 떠안는 모습을 미국 행정부가 얼마나 반기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일본의 군사적 기여도가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은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절정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여느 국가와 달리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나라의 과거 전력 때문이다. 일본의 질주가 위험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역사 문제를 통한 대일 견제는 긴요하다.

일본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미국 상원에서 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린 작년 12월 7일, 캠벨은 "아시아의 안보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에서 일본과 한국이 근본적인 적대감을 뒤로 하고 에너지, 기술, 안보, 인적 관계, 교육 등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식민지배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근본적인 적대감'으로 폄하하면서 여타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여느 미 행정부 당국자들과 마찬가지로 캠벨 역시 일본의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군사대국화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견제할 의지가 별로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캠벨은 기시다 후미오가 아베 신조보다 낫다고 말했다. 캠벨은 아베 신조의 위상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사실 그는 그중 일부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군사·안보 측면에서 "혁명적" 성과를 이룬 것은 기시다라고 말했다. 기시다 내각이 과거 범죄에 대한 반성 없이 군사 분야에서 질주하는 것을 '아베보다 낫다', '혁명적이다, 역사적이다'라며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기시다가 아베보다 낫다고 한 직후에 나온 것이 기시다의 노벨평화상 감이라는 발언이다. 이른바 한일화해가 한미일 안보협력을 매개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시다에 관해 한참 이야기하다가 노벨평화상에 관한 대목에서 윤 대통령을 거명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4·10총선 참패가 한일·한미·한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양국은 윤 대통령이 현 기조를 유지하리라 보면서도 야권의 태도가 변수가 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일례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등의 의견을 정리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지난 10일 자 기사인 '한국의 2024 총선: 결과와 영향'은 총선 결과가 윤 대통령의 외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 뒤, 승리를 거둔 야당의 반대가 예상되므로 "새 국회에서 이러한 전략적 분열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상당한 도전에는 직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지난 17일,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했다. 총선 참패가 한일관계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고 일본 측이 우려하는 가운데 나온 이 통화는 윤 대통령의 마음을 붙잡아두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CSIS 기사에서 나타나듯이 미국 역시 한국 총선에 주목하는 상황에서 국무부 부장관이 노벨평화상을 언급했다. 기시다에 관한 집중 대담을 이어가다가 노벨평화상 대목에서 윤 대통령을 언급한 것은 미국 역시 윤 대통령을 신경 쓰는 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캠벨은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했다. 이것이 미국의 안보 부담을 덜어주고 세계전략을 돕는다는 발상에서 기시다를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돕는다며 진행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세계를 위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으로 칭찬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견제해야 할 일이다.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일본 총리의 노벨평화상은 세계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뿐이다. 일본이 그런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가장 앞장서서 반대해야 할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노벨평화상 감으로 언급된 사실을 언론 공지를 통해 홍보했다. 군사대국화가 절정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통령실이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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