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제주 녹지 사업 패러다임 전환, 도민·기업이 참여한다

문정임 2024. 4. 29. 05: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 숲 혁신’ 프로젝트
제주시 연동 신시가지 도로를 시민들이 걷고 있는 장면. 제주=문정임 기자


“공사 현장에 도민이 들어오려면 안전장치가 보완돼야 합니다.” “도민이 직접 나무를 심으면 해당 사업체에 주는 인건비를 얼마나 제해야 할까요?” “사회공헌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나 양봉단체, 학교 어린이들과 손을 잡아도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7일 제주도 산림녹지과에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 녹지부서 공무원 13명이 모였다. 회의 주제는 각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도시숲 사업에서 도민 참여 방식 찾기. 그동안 공공이 추진해 온 가로수 확장 사업에 도민을 참여시키기 위해 실무적으로 선행해야 할 사안이 여러 각도에서 논의됐다. 직원들은 안전 문제와 공사 예산 책정, 일반인 식재 시 기술적 미비점을 보완할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직원들은 전문 지식 없는 일반 도민이 어디까지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씩 의견을 달리하면서도 식재와 사후 관리에 도민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뜻을 같이했다.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도시녹지정책이 갖는 의미와 위상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도민 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제주도가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회의를 주재한 이경준 제주도 산림녹지과장은 “업체에 맡기는 방식에서 도민과 함께 하는 형태로 도시숲 사업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숲 공간 혁신 프로젝트

지난달 22일 신비의도로 공원에서 열린 식목일 행사에서 오영훈(가운데) 제주도지사와 김경학(왼쪽) 제주도의회 의장이 나무를 심고 있다. 제주도 제공

2022년부터 매년 12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추진 중인 제주도가 올해부터 도민과 기업을 참여시키며 도시녹지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숲 조성, 정원 가꾸기, 가로수 식재·관리 등 주요 사업에 민간을 파트너로 대등하게 참여시켜 기후 위기 시대 최일선 대응 수단인 가로수를 최대한 확보하고 활용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른바 ‘제주 숲 공간 혁신 프로젝트’다.

제주에서는 봄이 되면서 도민이 직접 나무를 심거나 기증하고, 가로수 관리 주체로 참여하는 사업이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온국민 모다드렁(모여서) 낭(나무)심기 대작전 1호’는 도민이 직접 묘목을 구입해 기증하는 방식이다. 산림조합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나무를 선택하고 묘목값을 지불하면 기증자의 이름표가 붙은 나무가 사라봉공원 유휴공간에 식재된다. 본인이 직접 심을 수도 있고, 묘목만 기증할 수도 있다. 도는 이번 1호 사업에서 총 160그루를 심는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연내 4호 사업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가로수 분양사업이 제주에선 처음 추진된다. 반려 가로수 입양제다. ‘모다드렁숲’이 헌수(나무 기증)를 통해 숲을 조성하는 사업이라면, 가로수 입양은 거리의 가로수에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사업이다. 국립제주박물관~사라봉 입구, 롯데마트 사거리~한화아파트 사거리 등 총 6개·2660m를 가로수 입양 구간으로 정했다. 기업·기관·단체가 입양을 희망하면 심사를 거쳐 가로수를 분양한다. 입양한 단체는 해당 구간 식수대의 잡초를 뽑거나 쓰레기를 줍고, 가물 때 물을 주는 활동을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꽃이나 관목 심기 등 가꾸기에 드는 물품은 도가 지원한다. 입양이 결정된 단체에는 인증서가 지급되고, 현장에는 단체명이 적힌 안내판이 설치된다. 도는 올해 시범 운영 후 운영 구간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제주도는 올해 처음 제주에서 함께 나무 심을 기업을 모집 중이다. 조성 대상지는 제주시 사라봉공원 월남참전기념탑 앞 1900㎡ 규모 부지다. 본사 소재지와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다. 기업 참여로 조성되는 도시숲은 주민 쉼터로 활용되며, 조성지에는 해당 기업의 공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된다. 조성 후에는 제주도와 기업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행정에도 새로운 변화

지난 17일 제주도청 산림녹지과 사무실에서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 녹지부서 공무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직원들은 도시숲 사업에 도민을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매년 되풀이되는 폭염으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귀해지면서 행정 전반에도 전에 없던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아연로 도로 확장 공사다. 제주시는 KCTV사거리에서 정실 방향 도로에 차량 정체가 발생하자 지난 2020년 왕복 2차로를 4차로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후 도민사회에 가로수 벌채에 대한 반발 여론이 확산하자 시는 해당 구간의 가로수를 살리는 방식으로 공사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초 2차로씩 건설하기로 했던 설계 방향을 차량 정체가 심한 곳은 2차로, 반대 차선은 1차로로 선회했다. 덕분에 수령 30~50년 이상된 벚꽃나무와 구실잣밤나무 306그루 중 이식이 결정된 41그루를 제외한 나머지가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정실마을에서 도로를 기존 계획대로 넓혀 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제주시와 제주도는 주민들을 찾아가 가로경관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 이 도로는 5월 중 실시설계를 마치고 6월 착공에 들어간다.

앞서 지난해에는 동광로 제주시청 앞 구간에서 첫 도로 다이어트 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달 23일에는 제주시 연동과 화북동을 연결하는 연북로에 도로 다이어트를 추진하고, 확보된 공간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됐다.

녹지를 확대하면서 차량에 우선해 내어 주었던 도로를 사람 중심의 가로환경으로 개선하려는 변화가 조금씩 이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사업은 기후 위기 대응은 물론, 제주도가 추진 중인 보행기반 생활권 조성을 위해서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쾌적한 도시 환경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가로수는 도시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며 “제주도는 올해부터 민관 협력 방식을 통해 도시숲을 늘리고, 가로수 디지털 정보 구축을 통해 가로수 관리 정책의 세밀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