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첨단칩까지 집어삼키는데…'K반도체 골든타임' 4년 남았다 [칩스법 2년]
한국·대만 등 동아시아에 집중됐던 반도체 제조 무게중심이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8월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에 4년간 520억달러(약 71조7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반도체법을 발효한지 약 2년 만이다.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 경쟁과 메모리 시장의 지각변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가운데 한국이 ‘반도체 산업 그랜드플랜’을 보다 정교하게 다시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美, 반도체 ‘배틀그라운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61억4000만 달러(약 8조5000억원)의 보조금 지급을 발표하자 현장에 모인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과 지역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쳤다. 연단 뒤에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마이크론은 1250억 달러(약 172조원)를 투자해 뉴욕과 아이다호에 최첨단 메모리 제조 기지를 건설한다.
미국에선 인공지능(AI)·스마트폰·PC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도 머지않아 곧 쏟아질 전망이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지난 18일 “7나노 공정도 버거웠던 미국이 이제는 (더 첨단인) 2나노 공정의 전쟁터(battlegroud)가 됐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3나노 공정의 최첨단 칩은 전 세계에 단 2곳, 한국·대만에서만 양산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말 1.8나노(18A)급 공정의 반도체 양산에 돌입하는 인텔을 시작으로 삼성전자·TSMC가 모두 2027년까지 2나노 칩을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한다. 인텔은 지난해말 2나노 이하 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의 최첨단 하이-NA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1호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오리건주 공장에 확보했고 최근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삼성을 제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2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한 인텔에 가장 많은 보조금(195억 달러, 약 26조원)를 지원하며 키우고 있다. 2028년부터는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 주 첨단 패키징 시설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든다.
이로써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부터 파운드리·첨단 패키징에 이르는 반도체 제조 생태계를 완성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 매출액 기준 상위 8개 기업(TSMC·인텔·삼성전자·엔비디아·퀄컴·브로드컴·SK하이닉스·AMD) 모두 본사가 미국에 있거나 주요 제조거점을 미국에 두고 있다. 이미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장악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생태계를 포함하면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A부터 Z까지 모두 쥐고 있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주의’를 선언한지 3년 만이다.
중국도 반도체 자립
한국에게 남은 시간 4년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세계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패키징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제조 역량을 국내에 집중시키는 전략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충북 청주 낸드 생산기지인 M15 바로 옆에 신규 D램 공장 M15X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애초 15조 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5조원을 더 투자해 주력인 D램 생산능력을 키우기로 했다. 삼성전자 역시 평택캠퍼스에 짓고 있는 P4(4공장)를 기존 계획과는 다르게 메모리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라인 위주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무조건 된다’ 말한 테일러처럼
무엇보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전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전력망으로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막대한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고, 주민 반대를 해결할 수 있는 중앙·지방 정부간 협업이나 인허가 절차 속도도 느리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현행 전력망 관련 법을 고쳐서라도 즉시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반도체 제조 기지로서 위상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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