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유언장 공적 보관제’ 도입 시급해졌다

2024. 4. 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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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유류분제 위헌·헌법불합치로
자필 유언장 중요성 더욱 커져

일본, 이 제도 도입한 뒤
상속 분쟁 건수 38%나 줄어

한국, 유언장 요건 엄격하고
공증 큰 비용… 입법 서둘러야

지난 25일 헌법재판소가 유산상속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을 내렸다.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서 단순 위헌 결정이 내려져 망인의 형제자매는 유언장에서 배제되었을 경우 유산을 한 푼도 못 받게 됐다. 이번 헌재 결정이 심리한 사건 중에는 미혼인 망인이 유산을 공익법인에 기부하자 망인의 형제자매들이 공익법인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형제자매들이 낸 유류분 반환 소송은 법원에서 기각될 운명에 처했다.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은 단순 위헌 결정을 면했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기에 입법을 통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망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하면 유류분 청구를 못 하도록 내년 말까지 민법을 개정해야 한다. 망인을 오랜 기간 부양하거나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기여상속인이 망인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은 경우 해당 재산은 유류분 대상에 넣지 않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에는 유류분 청구 대상이 되는 재산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제시됐다. 비록 위헌 판정을 받진 않았지만 망인과 수증자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입힐 것을 알고 증여한 경우 아무리 오래전에 증여된 재산이라도 모두 유류분 대상에 포함되도록 한 민법 조항과 상속인이 공동상속인에게 생전 증여를 한 경우 그 증여의 시기를 불문하고 유류분 대상에 포함되도록 한 민법 조항도 헌법에 반한다는 재판관 4인의 소수 의견이 있었다. 망인이 공익단체에 증여한 경우나 자신의 가업 승계를 위하여 가업 지분을 증여한 경우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별개 의견도 있었다. 결국 이번 헌재 결정은 지난 47년간 존속하던 유류분제도가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존재 의의를 상당 부분 상실했으므로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과 그에 따른 후속 입법은 향후 유산상속제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상속제도의 큰 축에 해당하는 유류분제도를 반세기 만에 손보는 만큼 유산상속 관련 법제도 전반의 개선이 추진돼야 한다. 지난해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유언장 공적 보관제도’ 도입도 시급하다.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유언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예전에는 유언하더라도 유류분제도가 있었기에 유언장의 효력이 부정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앞으로는 유류분제도가 크게 위축될 것이므로 그만큼 망인의 유언은 더 강력한 효력을 갖게 됐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유언장 요건이 엄격하고 유언 공증에는 큰 비용이 들며 유언장을 공적으로 등록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유언장 작성이 활발하지 않고 유언장이 작성돼도 유언장의 존재 여부나 그 신빙성에 관한 분쟁이 잦다. 몇 년 전 한 민간 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언장 작성 비율은 5%에도 못 미친다. 유언자가 유언서를 장롱 속에 넣어두거나 수증자 또는 유언 집행자에게 맡기기 때문에 유언장의 멸실·훼손·위조·변조의 우려, 작성과 내용의 진정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돼 오히려 유언장 존재가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일본은 상속재산 처리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자필 유언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2020년 7월부터 자필 유언장 공적 보관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 이용자는 3900엔(약 3만5000원)을 지급하면 각 지역 법무국에 있는 보관소에 유언장을 맡길 수 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법 시행 2년 남짓이 지난 2022년 5월 말까지 3만5888건의 보관 신청이 접수됐고, 상속 분쟁 건수는 38.2% 줄었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며 고령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상속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재산 분할 분쟁은 2014년 771건에서 2022년 2776건으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도 2012년 590건에서 2022년 1872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언장 작성을 활성화하고 상속 관련 분쟁을 줄이는 유언 공적 보관제도 도입은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이번 헌재 결정은 만시지탄이지만 크게 환영할 만하다. 정부와 국회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상속 분쟁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유산상속 관련 법제 전반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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