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협치의 성공 조건 두 가지
취임으로부터 거의 2년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트루먼의 교훈을 깨닫는 데까지.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냉전의 설계자로 유명하지만,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통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통령은 지시한다. 그리고 다시 또 지시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권위에 의존한 하향식 정책 결정으로는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트루먼은 꿰뚫어 보았다. 관료들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대통령의 정책은 표류할 뿐이라고 본 트루먼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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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에 본격적인 협치 첫 시도
협치에는 함정도 위험도 적잖아
협력 게임의 복잡성 받아 들이고
공통이해를 찾는 과정이 곧 협치
」
2년 만에 윤 대통령은 리더쉽 1.0에서 2.0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총선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늘(29일)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거대 야당 대표와 정책협의 회동을 갖는다. 그동안 언론과 전문가들이 숱하게 주문해 온 협치의 길이다.
협치의 길은 다수가 바라는 바른길이다. 하지만 그 길은 정글을 헤쳐가듯 험난한 길이다. 뜻밖의 함정들도 있을 것이고(거대 야당 그리고 여당), 비를 피하기도 쉽지 않다(언론과 여론의 비판). 오직 대통령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거친 길이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협치의 성패는 결국 ①여당, 야당, 여론과 벌이는 복잡한 협력 게임의 운영과 ②대통령의 정치적 자원(지지율, 권위, 설득력)의 효과적인 운용에 달려 있다. 협치 성공의 두 가지 조건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주요 당사자들의 협력 게임의 구조. 협치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남은 외관처럼 1:1 협상의 단순한 구도는 아니다. 협상에 임하는 이 대표가 전적인 자율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당을 지탱하는 열렬 지지자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윤 대통령과 타협을 주고받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민주당이 총선 때 맨 앞에 내세웠던 민생 지원금 25만원 전국민 지급에 타협의 여지는 얼마나 될까? 이 대표는 어려운 국가재정 형편을 고려해서 지원금 지급 대상을 대거 축소하거나 차등 지급하는 타협에 선뜻 합의할 수 있을까?
정치학자들이 흔히 양면 게임이라는 부르는 이차원 협상은 윤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쟁점 특검 등 다른 사안을 양보받는 대가로 25만원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차등 없이 지원하는 데에 합의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정부 재정의 엄격 집행을 강조해 왔고 선심성 현금 지급을 비판해 왔는데, 급격한 방향 전환에 나설 수 있을까? 방향을 선회한다면 어떤 논리로 핵심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마주한 양면 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더 있다. 4월 총선에서 비례득표 24%를 얻은 조국혁신당의 존재는 과연 민주당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레버리지일까 혹은 부담일까? 조국혁신당의 협력적 견제가 민주당의 협상 입지를 넓혀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협치의 성패를 좌우하는 두 번째 요소는 대통령 권력자원의 속성과 운영이다. 마치 자연의 법칙과도 같이 대통령의 권력자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권력자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지율, 남은 임기, 대통령 개인의 카리스마는 꾸준히 우하향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 여권 내의 카리스마, 남은 임기는 지난 2년간 꾸준히 하향세를 그려왔다. 지난 총선 결과 역시 이러한 하향세의 한 흐름이었다.
그렇다면 위축되는 권력자원을 갖고 협치에 나서는 윤 대통령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기만 하는가? 곤경을 헤쳐갈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은 대통령만이 가진 권력, 그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접근은 수직적이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대통령이 결정하면, 관료조직이 시행하고 친윤들이 행동한다. 그에 따라 부과되는 정책들로 민생을 살핀다는 것이 수직적 접근의 핵심이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의-정 갈등, 대학입시 사교육 혁파 시도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수직적 권력 행사는 한국 사회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 권력은 쌍방향 교환을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지금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서 갖는 각별한 지위를 기반으로 실제 일하는 이들과 정성껏 소통한다면 대통령의 정책목표와 이해 당사자들의 직업적 동기, 정치적 이익의 교집합을 꾸준히 찾아낼 수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 관료들, 야당, 여당 의원들, 정책 당사자들에게 끊임없이 대통령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들의 직업적, 정치적 이해관계와의 공통분모를 찾는 과정 자체가 곧 민주사회에서 대통령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트루먼의 교훈에 다가갈 때, 윤 대통령도, 한국 정치도 무언가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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