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지속 불가능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40%로 하향 조정하고, 보험료를 15%로 6%포인트 더 올려도 재정 안정 달성이 불가능하다. 이마저도 0.7대의 출생률이 1.21로 반등한다는 낙관적인 가정에서 나온 결과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회 연금특별위원회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은 ‘조금만 더 내고 훨씬 더 많이 받는 안’을 선택했다. 시민대표단이 연금 공부를 하기 전에는 ‘지속이 더 가능한 안’을 선호했었으나, 공론화위에서 학습한 후에 ‘지속 불가능한 안’을 선택하다 보니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정계산위 전문가와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이 선택했던 안과는 정반대의 개편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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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대표단에 제대로 설명 안돼
‘연금 더 주자’는 잘못된 결정 유도
연금 누적 적자 등 정보 공개해야
」
2023년 1월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 투표에서 15명의 위원 중 10명이 찬성했던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 안’은 시민대표단의 학습 자료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36개 이해관계자의 결정으로, 전문가가 선호하는 안을 시민대표단에 알리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국민이 ‘그대로 받으면서 부담만 더하는 안’을 선호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왜 전문가들이 그 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재정계산위와 국회 특위에서 ‘더 지속 가능한 안’을 만든 전문가가 정작 의제숙의단 자문단에서 배제됐다. ‘더 지속 가능한 안’을 제대로 설명할 전문가를 배제한 자문단 선정, 이 안을 시민대표단에 소개조차 할 수 없게 만든 공론화위의 룰 세팅이, ‘연금 더 주자’는 결정이 나게 한 대참사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연금연구회는 공론화위에 ‘어떤 원칙과 절차로 자문단이 구성되었는지’를 공개 질의했으나 해명도 없다. 36개 이해관계자 집단에는 청년층을 대표하는 8명이 있으나, 이 중 4명이 국민연금 지급률 인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변해야 할 단체가 연금 기득권 강화를 주장하고 있으니, 기가 찰 뿐이다.
꼭 알아야만 할 핵심 자료는 배제하면서 시민대표단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학습시킨 정황도 드러났다. 적자를 702조원이나 더 늘리는 1안(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을 ‘지속 가능한 안’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정작 적자를 1970조원 줄여 ‘더 지속이 가능할 2안(소득대체율 40%-보험료 12%)’에는 그런 표현조차 없다. 두 안 사이에는 2700조원에 달하는 재정 절감액 차이가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다. 누적 적자가 전문가 사이에 합의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하면서다. 재정추계로 얻어지는 기금 소진 시점은 인정하면서도, 똑같은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누적 적자 수치는 거부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1안이 세대별로 생애보험료 부담에서 5배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으면서, 2안은 너무도 연금액이 적다(월 66만원)고 사실과 다른 공포 마케팅을 했다. 1안을 채택하면 저소득층 연금액(90만원)이 23만원만 늘어날 수 있음에도, 50만원이 더 늘어난다고 학습시켰다. 잘못된 학습으로 2안 찬성 비율이 하락하면서 소득보장안인 1안 찬성 비율이 19.1%포인트나 대폭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공론화위가 논의 구조와 학습 자료 측면에서 공정하게 운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영국에서는 핵심 정보 제공 후에 고통스러운 개혁안에 대한 선호도가 과반을 넘겼다. 일본이 연금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100년 후에 연금 지급할 돈이 4330조원 부족하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논란이 되는 누적 적자와 유사한 개념이다. 일본은 밝혔는데 왜 우리는 밝힐 수 없다고 하는가?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는 1안을 제외한 시나리오별 누적 적자가 수록되어 있다. 정부·국회가 추계기간에 발생할 누적 적자 총규모와 대안별 증감 폭을 밝혀야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노무현 정부처럼 미적립부채도 공개해야 한다.
왜곡된 학습 자료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된 시민대표단 결정을 21대 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하려는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 개혁이 아무리 시급할지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원인 분석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론화 취지와 부합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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