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닥터 수스와 철회 문화
어느덧 두 살이 되어가는 딸이 매일 읽어달라는 책이 있다. 바로 『초록 달걀과 햄』(사진)이라는 1960년 출판된 닥터 수스 (1903∼1991)의 클래식 작품이다. ‘샘이다-나는(Sam-I-am)’이라는 긍정적인 캐릭터가 부정적인 성격의 주인공에게 ‘초록 달걀과 햄’을 먹어보라고 끈질기게 권하는 평범하고 간단한 내용이다. 오직 50개의 단어로 쓰여진 이 책은 닥터 수스 고유의 말장난과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주제를 기발하고 율동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엮어나간다. 몇백 번째 반복해서 읽고 들어도 신이 나는 명작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영어권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중에 닥터 수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는 어릴 때 즐겨 읽었던 『크리스마스를 훔친 그린치』(1957)의 클라이맥스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가 출판한 60여 권의 아동도서가 서양의 정신문화 토대에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21년 인종차별적인 묘사를 담은 닥터 수스 책 6권의 판매 중단 결정이 발표되면서, 저자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현재 도덕 기준에 따른 과거의 잘못으로 저명인사나 역사적 인물을 규탄하는 ‘철회 문화(cancel culture)’가 지난 몇 년간 강화된 영향이 컸다. 특히 아동도서의 경우 아직 자각적 비판 능력이 부족한 독자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시대적 도덕성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도 비판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시대정신을 빌미로 일괄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예술은 시대의 표상이다. 그 포폄은 궁극적으로 독자가 내려야 한다.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 앞에 서서 사생활이 어지러운 화가의 도덕성을 떠올려야 하는 것일까. 오페라의 거장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을 들을 때마다 고려해야 하는 것일까.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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