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수사 과정에서 밝히겠다”는 말 대신
기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수사기관에서 소명하겠다”는 짧은 답변이다. 어떤 의혹이 있든 범죄 혐의에 대한 정황이 드러나든 언론 앞에서 이를 해명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민 대표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시원시원한 답변을 이어갔다.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에 대해 “주주 간 계약 협상으로 스트레스 받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말하고, 무속인 연루 의혹엔 “지인인데 무속인”이라고 밝혔다. 카카오톡 대화까지 일일이 공개하며 질문을 피해가지 않았다. 그의 말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진 않았고, 전부 진실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중에 밝히겠다”거나 “수사기관에 소명할 것”이라는 식의 답은 없었다. 그러자 민 대표를 편드는 반응이 늘어나는 등 여론은 확실히 반전됐다.
이전까지 몇 번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기억에 남는 건 2019년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다. 딸 조민씨의 의학 논문 1저자 등재, 장학금 수령, 사모펀드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조 당시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딸 장학금 의혹과 관련해 “서울대장학회 측에 확인해보셔야 하는 문제”, “부산대 같은 경우 의전원을 조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답변했다. “모르겠다”거나 “검찰 수사로 밝혀질 것”이라는 발언도 여러 차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1층 로비 앞과 서울중앙지법 출입구엔 자주 포토라인이 설치된다. 진을 치고 있다 보면 수사 대상자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한 피의자를 맞닥뜨린다. 애써 준비한 질문은 보통 의미 없는 답변으로 끝난다. “구체적인 사실은 법정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답변이 일상화되면 취재 관행도 바뀔 터다. 피의자와 참고인의 번호로 수차례 문자를 남기고 사무실을 찾아가도 돌아오는 답변이 없는 상황에선 검찰과 경찰에 묻는 수밖엔 없다.
연예인을 비롯해 민 대표와 같은 유명인은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만 계속 일할 수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표를 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직을 이어나갈 수 있다.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면, 다시 말해 대중 앞에 계속 서서 지지를 받겠다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카카오톡 대화창을 화면에 띄우진 않더라도 조건 없이 질문을 받고, 근거를 제시하며 답변하는 게 필요하다.
여전히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며 불리한 얘기엔 침묵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이 남긴 확실한 한 가지 교훈. 사람들은 터놓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최소한 일단 믿어본다.
정진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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