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필, 대본 하달... '노조파괴' SPC그룹의 화려한 언플

김화빈 2024. 4. 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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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복 대표 공소장 속 언론대응 살펴보니... 어용노조 이용해 '노노갈등' 유도, 국회 검증도 회피

[김화빈 기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
ⓒ 연합뉴스
 
SPC그룹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한 민주노총 산하 노조를 쫓아내기 위해 인터뷰 대본이나 성명서 등을 대신 작성해 보도되게 하는 등 전방위적인 언론플레이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상급 단위 산별노조가 동원됐는데 이들 노조 위원장들은 인터뷰용 사진을 언론사에 보내거나 언론 취재에 대비해 말을 맞추는 등 SPC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황재복 SPC 대표이사의 공소장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임삼빈 부장검사) 수사결과 자료에는 SPC가 '민주노총 없는 사업장'을 뜻하는 클린사업장을 위해 벌인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황 대표이사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과 함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SPC는 지난 2018년 제빵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체결한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화섬노조)를 없애기 위해 조합원의 탈퇴를 종용하고, 그 과정에서 직접 또는 한국노총 식품노련 피비파트너즈노동조합(피비노조)을 활용해 회사에 유리한 입장이 보도되도록 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 요구에 "노노갈등 프레임으로 대응"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발표한 'SPC그룹 부당노동행위 사건 수사 결과' 보도자료 중 노조 탈퇴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내용을 설명하는 도식표
ⓒ 서울지방검찰청
 

SPC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노갈등' 프레임을 적극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SPC 사측은 한국노총 소속 피비노조 위원장이 인터뷰한 것처럼 작문해 언론사에 보내 기사화했다. 

"백승천(당시 SPC 커뮤니케이션 실장)이 2021년 4월 15일경 피고인(황재복 당시 SPC 대표이사) 주재의 티 미팅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파리바게뜨지회의 주장에 대해 피비노조가 노노갈등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보고한 후 사실은 전진욱(피비노조 위원장)이 피비노조 위원장 자격으로 인터뷰한 사실이 없음에도 마치 전진욱이 인터뷰한 것처럼 기사 초안을 작성한 다음 이를 전진욱으로부터 받은 사진과 함께 <헤럴드경제>에 송부하여 기사화되게 하였다." - 검찰 공소장 중 일부

실제로 <헤럴드경제>에는 <전진욱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조위원장 "갈등 조장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정신 되새겨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2021년 4월 15일)가 실렸다.

관련해 <헤럴드경제>는 "관련 데스크 등에 확인 결과, SPC 측 요청을 받아 헤럴드경제의 통상적 과정을 거쳐 기사화됐다"면서도 "법원에서 사실관계를 다퉈야 하는 사안인 만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는 공식입장을 26일 <오마이뉴스>에 전해왔다.

회사에 부정적인 보도가 나올 때도 SPC는 피비노조를 적극 활용했다. 2021년 4월 1일 SPC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완료했다고 비전 선포식을 열었지만 화섬노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하며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그러자 SPC는 황 대표 주재로 열린 미팅에서 피비노조 위원장을 활용한 언론 대응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백승천은 정홍(피비파트너즈 전무) 및 피비노조 위원장 전진욱에게 전화해 'MBC 기자가 취재요청 하였는데 우리가 회사 입장을 밝히면 적절하지 않다. 내가 준비한 입장문 및 인터뷰 멘트 자료를 공유해 줄테니 스터디를 해서 피비노조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하고 회사서 정리한 입장문을 줄 테니 그대로 발표하라'고 전했다." - 공소장 중 일부

하지만 MBC 보도가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황 대표는 다른 언론사로 방향을 바꾼다. 이후 <아시아경제>의 <'편가르기·갈등 조장 중단하라' 목소리 내는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비판 보도엔 다른 언론 적극 활용... 다수 실행돼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화섬노조)이 2022년 5월 19일 오전 11시 양재동 SPC 본사 단식농성장 앞에서 53일 단식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재준
 

이런 언론대응에는 피비노조와 한국노총 식품노련도 가담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공소장에는 한국노총 식품노련 위원장이 SPC와 긴밀하게 연락하고 성명서 발표 등에 협조한 정황이 나와있다. 

2021년 7월 1일 <경향신문>은 <"노조원 탈퇴시키면 두당 5만원씩 지급" 파리바게뜨 전직 관리자 폭로'> 기사에서 SPC가 화섬노조 탈퇴를 종용하며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후 민주노총 소속 화섬노조가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회사를 고소하겠다고 하자, 한국노총 식품노련은 <경향신문> 보도에 유감을 표하는 한국노총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한다. 이는 SPC가 한국노총 식품노련 박갑용 위원장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작성한 것이었다. 이후 한국노총에 입장문 출처를 묻는 취재가 시작되자, 황 대표는 박 위원장에게 입장문 게시를 부탁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한국노총에서는 입장문을 작성하거나 배포한 적이 없다는 말을 전해들은 <○○일보> 기자가 SPC 커뮤니케이션실에 입장문의 출처를 문의하자, 피고인은 박갑용에게 위 입장문이 한국노총의 입장이 맞다는 취지로 기자와 통화해 줄 것을 부탁했다. (중략) 이 부탁을 받은 박갑용은 피비노조 위원장 전진욱에게 <경향신문>을 비판하는 성명서 발표를 재차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진욱은 박갑용과 함께 (중략) 홈페이지에 경향신문과 파리바게뜨지회(화섬노조)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게시했다." - 공소장 중 일부

SPC는 다음날인 7월 2일에는 피비노조에 대본을 보내고 그 내용대로 인터뷰하도록 했다. 그날 TV조선은 <파리바게뜨 양대노총 기싸움에... 애꿎은 가맹점주들 피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백승천은 전진욱에게 전화해 'TV조선 기자와 통화해 내가 카톡으로 보내준 코멘트대로 말을 해 달라'고 했다. 전진욱은 같은 날 TV조선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백승천이 보내준 (중략) 내용을 피비노조의 입장인 것처럼 말하며 파리바게뜨지회(화섬노조)를 비난했다. 이로써 TV조선이 (중략) '전형적인 노노갈등으로 가맹점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를 하게 했다." - 공소장 중 일부

이후 2022년 4월 KBS <시사직격> 보도에서도 SPC는 계속해서 피비노조에 지침을 내렸다. SPC는 자회사 해피파트너즈를 통해 피비노조에 인터뷰 대본을 전달했고 피비노조가 해당 내용대로 인터뷰하도록 했다. 특히 "노조 사무실 같이 보이도록 플래카드를 걸라"는 지시 또한 있었는데, 이 역시 실제로 이행됐다. 인터뷰 장소에는 '조합원이 가라는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황재복 SPC그롭 대표의 공소장에 따르면, SPC는 KBS <시사직격> 취재에 피비노조(한국노총 식품노련 피비파트너즈노동조합)를 시켜 대응하도록 하는데, 그 중엔 "(인터뷰 장소가) 노조 사무실처럼 보이도록 플래카드를 걸라"는 내용도 있다. 실제 <시사직격> 보도에 담긴 피비노조 플래카드.
ⓒ KBS
 
<시사직격> 방영 후 피비노조는 "한국노총을 매도하고 민주노총을 찬양한 KBS의 편향 보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또한 SPC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외에도 SPC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회피하기 위해 공문 문안을 대리 작성해 발송하는 등 피비노조와 긴밀히 협력했다. 

"피고인(황 대표)은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을 위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중략) '회사는 성실히 응하려고 하나 교섭대표 노조인 피비노조가 반대해 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외관을 만들기로 (간부들과) 공모했다. (간부들이) 공문 문안을 작성해 전진욱(피비노조 위원장)에게 전달했고 전진욱은 같은 날 (중략) 전달받은 공문 문안 그대로 (중략) 공문을 보냈고 (중략) 기사가 다수 보도되도록 했다. 이후 피고인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요구에 대해 (중략) 전진욱이 발송한 공문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 공소장 중 일부

"언론·기업 협잡 확인, 기념비적 상황"

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연구원은 2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재판을 통해 공소장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언론과 기업의 협잡이 확인되는 기념비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기업이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것에 치중하고 광고비로 엮이는 것 아닌가"라며 "언론의 자성 또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도 <오마이뉴스>에 "보도자료를 토대로 작성하는 기사라도 담긴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한 뒤 전달할 가치가 있는지 고려하는 일체의 과정이 곧 취재"이라며 "사람들은 언론을 비판하면서도 언론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신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취재 기본에 대한 문제인 동시에 언론이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는 공소장 내용과 관련해 SPC에 문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한편 SPC그룹 내 민주노총 노조 와해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허영인 회장과 황재복 대표 외 임직원과 피비노조 관계자 등 총 18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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