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 절차, 처벌에서 잘못 바로 잡는 문제 해결로 ”

이정헌 2024. 4. 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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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로 패러다임 전환 필요
대검찰청. 연합뉴스


형사사법 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참여를 확대·보장하는 등 피해자 지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학계 내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가해자 처벌에 치중하는 기존 형사사법 체계에 ‘회복적 정의’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 4층에선 한국피해자학회와 대검찰청(인권 전문검사 커뮤니티)이 주최한 춘계학술대회·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변모하는 범죄피해자의 지위’를 대주제로 범죄피해자의 권리 보호와 지위 향상을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됐다.

조영곤 고양파주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의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사례’ 1부 발표를 시작으로, 2부에선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와 ‘형사조정 운영성과 및 개선방향’을 각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 주제를 발표한 김재희 성결대 교수는 “회복적 정의가 형사사법 패러다임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 회복 없이 불법 행위 처벌에 집중하는 형사사법 시스템만으로는 정의 실현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하워드 제어 이스턴 메노나이트대 교수가 처음 정립한 ‘회복적 정의’ 개념은 피해 회복과 관계 회복에 중심을 둔 사법·공동체적 실천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형사사법은 과거 잘못한 행위에 대한 자기책임을 다루는 반면, 회복적 정의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문제 해결로, 미래지향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형사사법 패러다임에선 피해자들이 ‘용서 또는 처벌 요구’라는 두가지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말하는 ‘엄벌의 표현’을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엄벌 탄원’에는 피해 인정, 배상. 재발 방지, 안전 보장, 교정의 의미 등이 담겨있다. 자신은 잘못이 없는 억울한 ‘피해자임’을 알아달라는 결백의 의미까지 내포된 다층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공동체도 피해 회복과 관계 회복에 책임이 있다”며 “당사자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한 약속을 만들고 사회가 그걸 수용하는 절차는 공동체 내 상호존중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동체의 역할은 이중적”이라며 “(공동체는) ‘범죄 피해’라는 사회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당사자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미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오늘날에는 피해자들이 명확히 사건을 인식하고 형사 절차에 관여하려고 한다”면서도 “기존 체계는 아직도 피해자를 ‘보호의 대상’으로만 국한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토론 패널의 김세희 검사도 “‘사건 처리는 신속해야 하지만. 피해 회복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충돌하는 이 두 명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 26일 대검찰청 별관에서 '변모하는 범죄피해자의 지위'를 주제로 개최된 한국피해자학회 춘계학술대회·인권 전문검사 커뮤니티 세미나. 이정헌 기자


‘회복적 정의’가 검찰 실무 적용된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형사조정제도’가 있다. 지역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청 내 ‘형사조정위원회’에서 고소인과 피고인이 화해에 이를 수 있도록 분쟁을 조정해주는 제도이다. 실질적 피해 회복과 형사 분쟁의 자율적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 재산범죄(사기, 횡령, 배임 등)와 의료, 소년, 명예훼손 등 민사 분쟁 성격의 형사사건에 적용된다.

이날 ‘형사조정 운영성과 및 개선방향’ 발표를 맡은 차경자 검사는 “형사조정 제도는 2024년 의뢰율 5.8%, 형사조정 성립율 62.3%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며 “형사조정은 범죄피해의 실질적 회복과 관계회복 뿐만 아니라, 조정 성립 시 사건이 조기종결돼 사법비용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형사조정제도는 검찰 수사 단계에 있는 경미한 사건 위주로 위원회에 회부되는 한계가 있다. 차 검사는 단기적 과제로 ‘대상 사건 확대’ ‘조정위원의 자격요건 강화 및 평가제’ ‘조정결과의 법적효과 부여’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상임 형사조정위원 제도를 시범 실시해 통합적인 형사조정제도 구축과 형사조정센터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앞서 첫 발표를 맡은 조영곤 사무처장은 고양파주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소개했다. 센터에선 불안감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위한 법정 동행 서비스를 비롯해 임시숙소 3채, 마음치유학교 등을 지원·운영한다. 범죄 피해를 겪은 국내 외국인을 돕는 ‘외국인범죄피해자지원단’도 2019년부터 운영 중이다. 법률 교육을 받은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 지원자들이 현장에서 피해자들에게 통역, 서류 발급 지원 등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김혜정 한국피해자학회 회장, 이영림 인권 전문검사 커뮤니티 좌장(대검고검 차장검사), 김갑식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회장, 윤경원 대검찰청 인권정책관 등을 비롯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및 사법정책연구원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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