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스토리'도 황정민이 하면 다르다

양형석 2024. 4. 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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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황정민-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

[양형석 기자]

배우 황정민은 지난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목사로 포장된 수리남의 마약대부 전요환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2023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에서 12.12 군사쿠테타의 주범 전두광을 연기하면서 1312만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지난 2년 동안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를 선보였던 황정민은 연말 개봉 예정인 류승환 감독의 <베테랑2>에서 서도철 형사로 돌아온다.

현재 황정민은 3편의 천만 영화를 포함해 1억 2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어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대배우가 됐다. 하지만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영화는 역시 2005년에 개봉했던 멜로영화 <너는 내 운명>이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에서 순박한 시골총각 김석중 역을 맡아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 은하(전도연 분)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 이후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멜로영화 출연이 크게 줄어 들었다. 실제로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과 2007년에 개봉했던 허진호 감독의 <행복>, 그리고 2014년에 개봉한 이 영화 정도를 제외하면 필모그라피에서 멜로장르를 찾기가 쉽지 않다. 2024년 현 시점에서 한동욱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과 한혜진이 주연을 맡았던 정통멜로 <남자가 사랑할 때>는 황정민의 마지막(?) 멜로영화가 됐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겨울왕국>,<수상한 그녀> 사이에서 2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결혼 후 연기활동 다소 뜸해진 배우

중학생 시절 길거리캐스팅 된 후 1998년 EBS의 <중학기술산업>을 진행하며 데뷔한 한혜진은 2002년 원빈과 후카다 쿄코가 출연한 드라마 <프렌즈>를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어사 박문수>와 <로망스>,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 등에 출연하면서 착실히 연기경험을 쌓아가던 한혜진은 2005년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타이틀롤 나금순 역에 캐스팅되면서 데뷔 첫 주연을 맡았다.

방영 초반만 해도 신인에 가까운 한혜진이 긴 호흡의 일일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엔 무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한혜진은 나금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40%가 넘는 시청률을 견인했다. 그리고 2006년 판타지 사극 <주몽>에서는 계루 부족장 연타발의 외동딸 소서노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소서노는 철없는 왕자 주몽(송일국 분)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며 남자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사극 <주몽>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후 드라마 <떼루야>와 <제중원>에 출연한 한혜진은 2010년 설경구, 류승범과 함께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신참형사 민서영 역을 맡았다. 한혜진은 2011년부터 <힐링캠프>의 MC를 맡아 예능에 진출해 드라마와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혜진은 2012년 강풀의 동명웹툰을 영화화한 < 26년 >에서 '그 사람'을 저격하려는 사격국가대표 출신 심미진을 연기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 8살 연하의 축구선수 기성용과 열애를 시작한 한혜진은 2013년 7월 기성용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남편의 내조를 위해 출국하기기 전 <남자가 사랑할 때>를 촬영했다. 한혜진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아버지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사채를 썼다가 한태일(황정민 분)과 엮이는 주호정을 연기했다. 결과적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는 현재까지 한혜진이 출연한 마지막 영화가 됐다.

영국에서 남편과 생활하며 2015년 딸을 출산한 한혜진은 2016년 드라마 <닥터스>에 특별 출연해 뛰어난 동공연기(?)를 선보였고 2020년 기성용이 K리그로 복귀하면서 함께 귀국했다. 한혜진은 2023년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신성한 변호사 사무실의 상담실장 이서진 역을 맡으면서 오랜만에 시청자들을 만났고 지난 2월 종영한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의 MC를 맡기도 했다.

단순한 스토리 살린 두 주인공의 열연
 
 태일(왼쪽)과 호정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사이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지난 2012년에 설립된 영화사 '사나이픽처스'는 주로 범죄물이나 누아르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다. 2013년 <신세계>를 시작으로 2016년 <검사외전>과 <아수라>, 2018년 <공작>, 2022년 <헌트> 등 꾸준히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사나이픽처스에서 제작한 두 번째 영화이자 개봉 예정작을 포함해 총 15편의 영화를 제작한 사나이픽처스의 유일한 멜로영화다.

사실 거친 3류 건달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사랑을 다룬 멜로영화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조금 멀리 가면 2001년에 개봉했던 최민식과 중국배우 장백지 주연의 <파이란>이 있었고 전성기가 저물어가던 박중훈의 숨은 명작으로 꼽히는 2010년작 <내 깡패 같은 애인>도 있었다. <남자가 사랑할 때> 역시 친구 밑에서 사채업을 하는 태일과 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던 은행직원 호정의 사랑을 담은 영화다.

사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이야기 구성은 상당히 단순하다. 돈을 받으러 호정을 찾아간 태일은 호정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하고 호정에게 정성을 쏟아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다. 하지만 태일은 건달생활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뇌종양이 발견되고 호정과 헤어지게 된다. 호정은 깡패의 기질을 버리지 못한 태일을 잊으려 하지만 태일의 병을 알게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태일과 함께 한다.

이처럼 뻔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을 <남자가 사랑할 때>는 전국 197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약 150만)을 가뿐히 넘겼다. <너는 내 운명>과 <행복> 이후 오랜만에 정통 멜로연기를 하게 된 황정민은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태일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호정 역의 한혜진 역시 여러 드라마를 통해 쌓아온 연기내공을 <남자가 사랑할 때>를 통해 제대로 보여줬다.

OST 역시 영화의 슬픔을 극대화했다. 태일이 호정의 맞선장면을 보고 쓸쓸하게 돌아서다가 코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갔을 때 나오는 노래는 이기찬이 부른 <언젠가 누군가>였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곡으로 흘러 나왔던 노래는 이문세 13집 타이틀곡 <기억이란 사랑보다…>였다. <기억이란 사랑보다…>는 작곡가 고 이영훈이 이문세를 위해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노래로 태일과 호정의 이야기가 가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욕 없으면 대화가 안 되는 발칙한 조카
 
  송지(오른쪽)는 자고 있는 삼촌의 돈을 빼앗을 정도로 삼촌과 매우 친하게 지낸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한창 배우로 전성기를 달리던 2022년 음주운전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자숙하고 있는 곽도원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도 못하고 아내와 이발소를 운영하는 태일의 형 한영일을 연기했다. 틈만 나면 태일을 혼내고 태일과 주먹다짐을 할 정도로 '찐형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영일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사고뭉치 동생, 철없는 딸을 먹여 살리는 책임감 넘치는 가장이다.

기상캐스터 출신 배우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보완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이태원 클라쓰>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에 출연했던 김혜은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영일의 아내이자 태일의 형수 영미를 연기했다. 학창시절부터 영일-태일 형제와 알고 지낸 영미는 어린 시절 지금의 남편인 영일이 아닌 태일을 좋아했다. 미영은 사고만 치는 태일을 집에서 쫓아내면서도 따로 용돈을 챙겨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히든카드는 태일의 조카 한송지를 연기한 강민아였다. 삼촌에게 준비물 살 돈을 달라며 주머니를 털어갈 정도로 태일과 격 없이 지내는 송지는 삼촌 앞에서 육두문자도 거침 없이 사용한다. "제발 욕 좀 하지 말라"는 태일의 꾸지람에는 "그럼 나보고 말을 하지 말라고?"라고 받아 칠 정도. 강민아는 영화 <박화영>과 웹드라마 <에이틴 시즌2>, 드라마 <괴물> <가우스전자>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사나이픽처스의 첫 작품 <신세계>에서 이중구를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박성웅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면도를 해주는 영미에게 성추행을 하는 변태손님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변태손님은 영일과 영미 부부를 무섭게 위협하지만 태일까지 합류한 가족들과의 싸움에서 밀려났다. 박성웅은 태일과 싸우면서 뜬금없이 <신세계>에서 황정민의 명대사였던 "드루와, 드루와"를 외치며 관객들에게 뜻밖의 웃음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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