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다닌 기상청 '그냥' 퇴직하고, 이렇게 삽니다

강언구 2024. 4. 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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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그만두고 '기사' 쓰는 '기사'가 되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언구 기자]

 지난해 8월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관계자들이 제6호 태풍 카눈(KHANUN)의 예상 진로를 살펴보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 국회사진취재단
'화물차 구입은 어떻게 하지?'
'화물운송종사자격 취득과 면허는?'

이런 상황은 그저 영화적 표현인 줄만 알았다. 갑자기 귀가 닫혔고, 즉시 대뇌에는 새로운 안건이 상정된 것이다. 인생의 선택이... 이렇게 찰나에 결정되는구나.

바로 몇 초 전까지만해도 부서원들과 함께 차년도 주요업무 추진계획 작성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며 집중한 상태였기에, 10년 넘게 몸담은 기상청에서 퇴직하려는 나의 고민은 그저 누구에게나 한번씩 찾아오는 홍역 정도로 여기고 있던 바였다.

"어렵게 마음 정한 거라 네게 말할 거지만, 사실 오늘 아침에 그냥 나 생각한거야."

H.O.T.가 불렀던(NCT DREAM이 재작년 리메이크 했다!) '캔디'의 가사처럼, 인생의 가장 무거운 결정일지 모를 퇴직을 '그냥' 선택해 버렸다. 회사에 악감정이 있어서 감정적 퇴사를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우리 모두 꿈꾸는 '상상 속 미친 짓'을 실행하기로 결정했을 뿐.

총괄예보관실 근무 시절, 비번일마다 50cc 스쿠터를 타고 전국여행을 하며 들었던 '화물 운송업에 종사하면 여행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겠는데?'라는, 지금 생각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 같은 생각 덕에 '미친 짓'에 시동을 걸어 버렸다.

"원에 의하여 그 직을 면함"

그리하여 소중한 분들의 만류와 많은 분들의 응원을 지나, 나의 이름이 명시된 퇴직 문서를 마주했다. 이후 화물차 구입, 운송자격 취득,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전환, 운송면허 취득, 사업자 등록 등으로 보름의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화물차 운전기사로서 전국을 유랑하는 새 인생을 시작했다.

장단점은 확실하다. 자유롭다. 육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무척, 엄청, 매우, 너무 자유롭다(놀랍게도 기상청 시절이 육체적으로도 더 고됐다). 반면 경제적으로 '안' 자유롭다. 월급이 매달 따박따박 나오던 시절에는 경기의 흐름 따위 생각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젠 매일매일 변화하는 거시적이고도 미시적인 경제적 흐름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아간다.

또한 매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세상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좋은 사람이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더 많은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만 긴 대화를 할 상대가 없다. 상, 하차지에서조차 대화가 없는 날이면, 네비게이션 속 '아리아'에게 괜히 시비를 걸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에, 평생을 미뤄두었던 생각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통해 드디어 밀린 숙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복싱 프로테스트에 도전하다

먼저, 나 자신을 위한 도전을 결정했다. 과거부터 복싱 체육관에서 꾸준히 수련하며 생활체육 대회를 참가하곤 했지만, 더 열심히 준비해 프로 역량을 평가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무려 8킬로그램을 감량해 슈퍼밴텀급으로 출전한 KBC(한국권투위원회) 프로테스트에서 정말로 합격해버렸다.

아직은 프로 경기에 데뷔하지는 않은 '세미 프로'이지만 퇴직의 이유였던 '도전'이란 삶의 방향을 착실히 밟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재능기부? 어렵지 않아요

다음으로 사회를 향한 작은 도움으로서, 관련된 공부를 하는 분들께 경험을 나누어드릴 방법을 고민했다. 이론이야 책에 있다지만, 자연과학을 매일, 매시, 매분 현실에 적용하는 기상학, 특히 예보 분야는 실제 예보현업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지식 축적이 매우 어렵다.

먼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기반으로 예보의 적용과 일기도 묘화를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연결된 분들의 요청으로 개별적 수업도 진행하게 되었다. 나의 삶에 재능기부라니! 작은 도움이나마 드린 후 이분들께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가 찾아올 때마다 마치 내 일인 양 짜릿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모든 시민이 기자다'

어느 날, 날씨 이야기를 하기에 유튜브라는 마당은 과연 적합한가 고민을 하던 차였다. 더 나은 진중한 전달매체가 없을까 생각하던 머리 속에 뇌전이 번쩍! 왜 생각지 못했을까. 즉시 <오마이뉴스>를 찾아 시민기자로 등록을 했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면 글보다 동영상이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의 진실된 수용자로서의 우리는 여전히 글을 읽으며 판단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날씨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편집부에서 기사로 채택해주신 덕분에 '기자'라는 또 하나의 도전에 성공하게 되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돌이켜보면 정말 내가 거기에 있었나 싶은 총괄예보관실과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의 근무 경험은, 작가님이 실제 예보실에 머물며 구상했던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이 실제 방영되었을 때의 기분만큼이나 신비로운 추억이 되었다.

이 기억들을 현실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있다면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오마이뉴스에 과학 카테고리가 열린다거나, 기상 관련 기사를 연재하는 일도 꿈꾸어 본다. 하나씩 해 치우고 나면 언젠가 문득 '미쳤나봐, 나 정말 그걸 다 했네' 하고 피식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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