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노래 만들어 놀리는 아들에게 엄마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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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 기자]
▲ 같은 듯 다른 세 남매 똑같은 곳을 보는 것 같아도 속은 제각각인 세 남매 |
ⓒ 문수진 |
지난주 일요일 오후의 일이다. 평일에는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이 일요일에는 집에서 뒹굴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방콕'을 선언하고 아이들과 함께 종일 집에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인 큰 딸과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은 방에 틀어박혀서 그림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엄마, 잘 들어봐.
어쩌고 저쩌고... 블라 블라. 그러니까 너 T야?
그러니까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너 T야?'
평소 악동뮤지션과 가수 비오를 좋아하는 아들은, 이날 힙합도 아니고 랩도 아닌 말을 흥얼거리다 후렴구처럼 '그러니까 너 T야?'를 스타카토를 넣어 강조하면서 낄낄댔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아들이 하는 말(노래 같은데, 차마 노래라고 부를 수는 없는)은 누나와 여동생의 성격유형을 빗대서 놀리는 말이었다.
중학생인 딸은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검사) 신봉자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MBTI검사를 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 따라쟁이 막둥이도, 누나가 하는 말은 무조건 따르는 남동생도 덩달아 MBTI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며칠 전 10분 정도의 검사를 통해 자신들의 MBTI를 알아낸 아이들이 나와 남편 옆에 오더니 핸드폰을 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MBTI는 오래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질문하는 즉시 답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부부는 성실하게 아이들이 묻는 질문에 답했다.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인 아이들
MBTI검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남편과 내가 성향이 다르다는 건 21년 결혼생활로 알고 있었다. 내가 낳은 세 남매지만,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이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MBTI검사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 게 신기했다.
아들과 나는 ENFP다. 남편과 큰 딸은 ISFP이고, 막둥이는 ISTJ다. E는 에너지가 외향적이고 I는 내향적인 건 알겠는데, N부터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와 아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말하는 게 쉬운 반면, 세 사람은 집순이에 상대방이 말을 시키지 않으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인 것만 확인했다.
여기서 아이들이 주목하는 건 세 번째 알파벳이었다. 나와 아들과 남편은 F다. 즉 공감능력이 뛰어난 감정형 인간이다. 막둥이는 이성적이고 논리 정연한 T다. 문제는 큰 딸의 성향이 F에서 최근 T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그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누나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친구 때문에 T가 됐다'며 배신자라고까지 했다.
아들의 말도 일부 이해가 갔고, 커가면서 성향이 바뀌는 큰 딸도 이해가 됐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MBTI가 이러하니 이런 사람일 겁니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16가지 MBTI로 분류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다.
나는 외향적인 E성격을 가졌지만, 나보다 더 외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진다.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절대 안 볼 것처럼 굴다가도 말 한마디에 마음이 확 풀리기도 한다. 충동적으로 갈 곳을 정할 때도 있지만, 여행일자가 잡히면 계획에 진심이다.
MBTI에 따르면 나에게는 E형과 I형인간이 둘 다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아들 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되묻는다. 열두 살 아이가 이해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 사람마다 마음속에 수많은 내가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매일 고민하고 갈등하며,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아들은 아직은 잘 모른다.
아들이 세상을 좀 더 살아가다 보면 날카로운 바위가 오랜 세월 부딪치는 파도에 깎여 조약돌이 되듯이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쯤 아들은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아들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아들, 이 노래가 재밌어? 왜 재미있을까? 그런데 네 노래를 T 성향인 사람이 들어도 재미있을까? 노래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놀리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닌데. 너는 재미있다고 하는데 왜 누나는 그만하라고, 노래 듣기 싫다고 할까?
꼭 누나뿐이 아니야. 네가 하는 어떤 행동을 보고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네 마음이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그게 배려야. 너만큼이나 누나도 동생도 다른 사람도 소중하니까."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아들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사랑해'라고.
▲ 아이들을 응원한다. 보이는 것보다 세상은 넓고, 세상에는 네가 아직 만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 픽사베이 |
아들이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보이는 것보다 세상은 넓고, 유튜브에 나오는 게 진실만은 아니며, 세상에는 네가 아직 만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그릇이 지금보다 더 크고 단단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먼 훗날 폭풍우를 뚫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기를, 비바람을 피할 집을 제 손으로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어쩐지 작은 일에 너무 멀리 나가거나 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이것도 F형인간의 특징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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