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을 쥐지만 일식은 아니다"…한국식 발효에 빠진 오마카세 [쿠킹]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⑳ 토와
“장아찌와 씨간장 위에 정성 한가득…세상에 없던 새로운 오마카세”
바쁘게 달리는 자동차만큼이나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방배동. 정신없는 도로 뒤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면, 도심과는 다른 결을 지닌 독특한 가게가 나온다. 작디작은 나무 간판 옆, 초인종 대신 투박하게 기계식으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숨겨진 공간.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를 깊게 공부하며 한국식으로 초밥을 쥐어내는 ‘토와’다.
음식과 약은 결국 그 근원이 다르지 않다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을 주제로 하는 이곳은 오직 자연에서 나오는 제철 식재료와 시간에 의해 완성되는 각종 발효물만 사용해 요리를 만들어낸다. 2018년 일본에서 2년간 스시를 공부하고 2020년 서울 상암동에 자신만의 가게를 열었던 조영재(34) 셰프는 2022년 제주도에서 발효연구를 하는 공간 ‘오지나’에서 오랜 시간 숙성된 발효 재료들을 접하고 음식의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무엇보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꽃게·대하·딱새우 등 온갖 갑각류를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오랜 시간 숙성해 간장에 온전히 녹여낸 어(魚)간장이었다. 간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독특한 풍미에 반한 그는 본인이 가장 자신 있던 스시에 이를 접목하겠다 마음먹고 그해 8월 지금의 위치로 토와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양식하지 않은 완전 자연산 재료, 계절의 맛을 담은 제철 지역 특산물, 일체의 첨가물 없이 깨끗하게 만들어진 장까지. 건강한 재료만 엄선해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것은 조 셰프가 토와에서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다. 신선한 원물이 지닌 개성과 특징을 맛의 반석으로 삼는 덕분에 수급되는 재료에 따라 요리와 코스 역시 달라진다.
“몸이 아프면 괜히 짜증이 나고 불편하잖아요. 건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서 몸을 편안하게 하면 마음도 한층 더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기보다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같은 조영재 셰프의 가치관과 신념은 하나하나의 음식은 물론 공간에서도 잘 드러난다. 식사 시작 30분 전, 약재로도 쓰이는 침향을 피워 공간 곳곳을 은은한 향기로 채우며 손님을 기다리는 그는 식사 전후로는 즉석에서 내린 따뜻한 자소엽과 당유자 차를 낸다. 오감을 만족시키려는 조 셰프의 노력은 식사 중에도 끊이지 않는다. 식재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자연을 거쳐 자신의 손끝에서 완성된 음식에 관한 스토리까지 맛깔나게 풀어놓는 그는 한 편의 공연과 다름없는 식사를 선물한다. 조영재 셰프는 본인의 음식의 장르를 정통 일식이나 한식이 아닌 ‘토와’라고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고, 어제보다 오늘 더 건강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그의 굳건한 소신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여운이 짙게 남는다.
EAT
13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씨간장부터 직접 담근 일곱 종류의 장아찌까지. 자연과 정성, 시간과 발효, 몸과 마음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음식을 내놓는 곳답게 ‘토와’에서의 식사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재료들이 등장한다. 특히 조영재 셰프 본인이 화학첨가물과 조미료에 민감한 만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대부분의 재료를 직접 만든다.
초밥을 쥐지만 일식은 아니라는 조 셰프의 말처럼, 이곳의 초밥은 밥과 생선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장아찌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1년 6개월 전부터 초석잠, 냉이, 부추, 생강, 방아, 곰피, 산초, 갓, 삼 등 스무 종류에 가까운 장아찌를 직접 담가온 그는 그날 현지에서 수급받은 생선과 가장 궁합이 좋은 것을 함께 내놓는다.
자칫 비릿할 수 있는 멸치는 숯으로 한 번 가볍게 그을려 풍미를 더하고 알싸하고 풍부한 향을 지닌 부추장아찌와 함께 먹을 것을 권한다. 광어와 우럭 등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흰살생선은 씹는 식감이 살아있으면서도 짭조름한 갓 장아찌와 함께 제공된다. 어간장을 섞은 물에 약불로 삶아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전복에는 아삭아삭하면서 전에 없이 독특한 향이 매력적인 초석잠이 곁들여진다.
이러한 조합은 마치 밥 한 숟가락 위에 반찬을 얹어 먹는 듯한 한국의 전통 식사 문화를 연상케 한다. 밥반찬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장아찌들은 제철 해산물과 만나 한층 더 깊이 있는 자연의 맛을 선물한다. 초밥에 사용하는 소금, 청, 참기름, 된장 역시 예사롭지 않다. 채취 과정 중 극미량의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될 수 있는 소금은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소금으로 불리는 안데스 호수의 것만을 사용한다. 청 또한 40년간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제주도 땅에서 재배한 청귤만을 사용하고, 참기름은 참깨부터 직접 재배하고 그것을 직접 짜 만들어낸다. 홍삼을 넣어 발효한 된장도 조 셰프가 직접 장을 담근 것이다.
초밥 이후에는 제철 생선의 다양한 부위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조리해 원물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광어 하나만 해도 뱃살, 지느러미 등은 초밥으로 만들거나 된장과 조리해 회무침으로 내놓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쌈 문화를 본떠 곱창 김에 밥과 삭힌 고추에 담근 곰피 장아찌를 얹어 주기도 한다. 이어 남은 살은 튀겨 냉이 장아찌와 함께 솥밥으로 맛볼 수 있다.
이처럼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건강하고 깨끗한 요리를 넘어서고 싶다는 조영재 셰프의 목표는 식사를 마친 후에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배는 부르지만 더부룩함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속은 기분 좋게 편안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작은 요소 하나조차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그의 탄탄한 소신은 ‘토와’의 음식이 지닌 가장 큰 무기처럼 느껴졌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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