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0년 모디도 껄끄러운 사람…델리 '빗자루 당수'의 돌풍 [후후월드]

박형수 2024. 4.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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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지난 19일(현지시간)부터 오는 6월1일까지, 44일 간의 ‘총선 대장정’에 돌입한 인도에서 최고 스타는 사실상 3연임이 확정된 나렌드라 모디(73) 총리다. 인도 전역은 이미 모디의 사진과 소속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의 상징물인 샤프란색 연꽃으로 뒤덮였다.

야당에서 내세운 총리 후보는 최고의 정치 명문가 출신 라훌 간디(54) 인도국민회의(INC) 전 총재이지만, 그의 존재감도 모디에 비할 바 못된다. 인도의 총선 결과는 6월4일 발표된다.

집권 10년째, 지지율 70%를 웃도는 모디에게 대항마는 누구일까. 가디언·포린폴리시 등은 현재 모디에게 가장 껄끄러운 상대이자, 모디를 선거에서 이긴 유일한 인물로 아르빈드 케지리왈(56) 델리주(州) 주총리를 꼽았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인도 델리주 주총리가 지난달 암리차르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디의 대항마, 케지리왈…총선 직전 체포


그런데 케지리왈은 현재 사법당국에 의해 구금된 상태다. 인도 금융범죄수사국(ED)은 총선을 한달여 앞둔 시점인 지난달 21일, 케지리왈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다. 앞서 2021년 케지리왈 주총리는 연방 정부가 독점하던 주류 판매 규제를 없애고 민간 업체도 술을 팔 수 있게 허용했다가, 논란에 부딪히자 이듬해 철회했다. ED는 당시 케지리왈이 민간 업체로부터 10억 루피(약 165억원)를 받고 델리주의 규제를 없앤 것으로 보고 수사해왔다.

ED는 케지리왈에게 총 12차례 소환 통보를 했지만, 모두 응하지 않자 그를 체포했다. 당초 7일 구금이 결정됐지만, 계속 구금 기간이 연장돼 케지리왈은 한달 넘도록 구치소에서 주총리 업무를 보고 있다. 인도 역사상 현직 주총리가 체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케지리왈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구금된 아르빈드 케지리왈 인도 뉴델리 주총리가 지난달 28일 법원 심리에 참석한 뒤 차를 타고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부패 쓸어버리자" 빗자루 당수, 수도의 주총리로


가디언은 케지리왈의 체포에 대해 “모디 정부의 힘에 맞서 정치 신인에서 거물로 급성장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정치 탄압 가능성을 제기했다.

케지리왈은 2012년 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며 ‘보통사람당(AAP)’을 창당했다. 그는 카락푸르의 인도공과대학(I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이전까지 정치적 배경이 없는 ‘아웃사이더’다. 당시 인도는 1947년 독립 후 수십년 동안 집권해온 INC, 구자라트 주총리인 모디가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며 상승세를 타던 BJP 등 두 거대 정당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양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아웃사이더 소수정당인 AAP는 ‘반부패’를 기치로 내걸었다. 인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를 쓸어버리겠다는 의미로 빗자루를 당의 상징으로 삼았다. 빗자루가 불가촉천민의 유일한 생존수단이라는 점도 내세웠다.

케지리왈은 평상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공학 전공을 살려 단전된 가구 등을 찾아가 전깃줄을 직접 연결했다. 그의 소탈한 모습에 대중들은 “빗자루 당수”라며 환호했다.

인도 남부의 방갈로르에서 아르빈드 케지리왈 지지자들이 모여 그의 구속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깃발에는 AAP 당의 상징인 빗자루 모양이 그려져 있다. EPA=연합뉴스


그의 심상치 않은 인기몰이에 기성 정당들은 정치자금 관리 등을 문제삼았다. 이에 케지리왈은 자금 내역을 개하며 정면 돌파했다. 2013년 델리 주 선거에서 AAP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BJP에 불과 3표 뒤지며 2위를 차지했다. 케지리왈은 INC와 연합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주총리에 취임했다. 창당 1년만에 수도 뉴델리를 포함한 델리 주의 수장이 됐다.

그는 공약했던 반부패법안이 INC의 반대로 주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취임 49일 만에 주총리직을 자진 사퇴했다. BJP 등은 케지리왈의 사퇴를 두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지만, 시민들은 그의 언행일치를 높이 샀다.

2015년 델리 주의회 선거에서 AAP는 전체 70석 중 67석을 얻은 압승을 거뒀고, 케지리왈이 다시 주총리에 올랐다. 당시는 1년 전 총리에 취임한 모디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다. 모디가 델리에서 4차례 연설하는 등 선거운동을 펼쳤으나 케지리왈에 패했다.

이후 인도 정치가 모디와 BJP의 독주 양상이 됐지만, 케지리왈은 2020년 선거에서도 승리해 델리주를 지켜왔다. 때문에 케지리왈은 ‘모디조차 이길 수 없는 인물’, ‘차기 총리’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현재 AAP는 델리주와 펀자브주에서 집권하고 있다. 모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주에서도 의석을 차지했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총리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케지리왈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고학력·고소득 델리서 인기…모디 눈엣가시


케지리왈의 인기 기반인 델리주는 인도에서 학력과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편이다. 델리주 유권자들은 BJP와 지지자들로부터 ‘힌두 흐르데이 삼라트(힌두 정신의 황제)’ ‘신들의 왕’으로 추앙받는 모디도, 정치 명문인 네루·간디 가문에 기댄 ‘도련님’ 이미지인 라훌 간디도 인도의 미래에 어울리지 않다고 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인도 야당 지도자 라훌 간디(왼쪽)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델리 유권자들은, 카스트의 뿌리가 깊고 가난한 전형적인 인도 유권자과 다른 성향”이라며 “델리에서 케지리왈의 약진은 인도인들이 품고 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어 “케지리왈과 AAP는 ‘부패한 힌두 노년층(BJP)’과 ‘왕조에 갇혀 시대에 역행하는 무리(INC)’와 같은 거대 정당에게 냉소를 보내던 이들에게 반가운 해독제”라고 전했다.

수도 뉴델리의 티하르 교도소에 투옥된 케지리왈은 건강이 악화된 상태다. 케지리왈은 30년째 당뇨병을 앓고 있어 주기적인 인슐린 주사와 가정에서 만든 특별식으로 혈당을 관리해왔다. AAP는 사법 당국과 교도소가 케지리왈에게 인슐린 주사와 특별식 모두 금지했다며 “BJP가 사법 당국을 통해 그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지리왈은 편지를 통해 현재 자신의 공복 혈당 수치가 160~200mg/dL(정상 범위 70~100), 식후 혈당 수치는 250~320mg/dL(정상 범위 140 이하)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법원은 케지리왈의 의사 면담을 불허하다가, 지난 22일 화상 면담을 허가했고 당일 오후 인슐린 주사를 처방 받았다. 사우라브 바라드와즈 AAP 대표는 "의료진의 처방으로, 그간 케리지왈에게 인슐린 투여가 시급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BJP와 모디 정부는 의도적으로 케지리왈을 치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르빈드 케지리왈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자들. AFP=연합뉴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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