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의 여자를 빼앗으려는 마술사의 최후
[김성호 기자]
최근 마술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뉴스거리가 하나 있다. SBS에서 국내외 마술사들을 모아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 매직스타'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에 일찌감치 한국의 재능 있는 마술사 여럿이 출연을 확정짓고 경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된 틀에 익숙한 출연진만 내세워온 방송가의 안이한 관행 가운데, 마술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전격 채택한 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실내 토크쇼, 야외 예능, 아이들이 출연하는 가족예능과 일반인이 출연하는 연애 관찰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비슷비슷한 포맷 위에 얼마 다르지 않은 설정으로 찍어낸 프로그램이 가득한 세상이다. 오디션이라는 익숙한 포맷에도 마술이라는 소재를 씌워낸 점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모르는 이들도 있겠지만 한국은 손꼽히는 마술 강국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기는 어딘지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손기술 좋고 아이디어 뛰어나기로 주목받는 마술사를 제법 보유한 것과는 별개로, 마술 산업만큼은 얼마 발전하지 못한 채로 멈춰있기 때문이다. 이은결과 최현우라는 스타를 제외하면 대중공연 부문에서 티켓파워를 가진 마술사는 전무하다 해도 틀리지 않다. 소규모 공연장이나 바에서 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아서 마술은 대중의 눈과 귀 가까이로 접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 일루셔니스트 포스터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어느 마술사의 마술적 이야기
<일루셔니스트>는 마술사의 이야기다. 한국과 달리 마술이 보다 삶 가까이 자리해온 서양에선 마술 소재 영화를 제법 만날 수가 있는데, <일루셔니스트>는 그 대표격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영국 출신의 감독 닐 버거가 일약 세계적 연출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을 만큼 개봉 당시 반응이 뜨거웠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어느 도시, 초자연적 마술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마술사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 분)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 초반 아이젠하임은 삽시간에 빈 화분에서 나무를 자라게 하는 마술을 선보인다. 상자에 넣어 봉인해둔 손수건을 나비가 물고 날아가게 하는 마술도 잇따라 펼쳐진다. 관객들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마술에 환호를 보낸다.
▲ 일루셔니스트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옛 연인을 만난 마술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젠하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떠돌이 마술사다. 그런 그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어릴 적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에서 쫓겨나듯 도망쳤던 일이 있는 것이다. 그가 제 고향을 떠나게 된 건 어린 시절 귀족인 공녀 소피(제시카 비엘 분)와 밀회를 가졌던 일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우연히 접한 마술에 매료되어 매일 마술을 연습하는 것으로 소일하던 아이젠하임에게 소피가 호기심을 나타내고 이따금 만나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이 당대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선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였던 모양이다.
▲ 일루셔니스트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왕세자의 여자를 빼앗으려는 마술사
공연 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를 찾는 아이젠하임의 요청을 받아 소피가 무대로 오른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아이젠하임이 이끄는 대로 이런저런 동작을 취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든 그녀가 저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피는 화들짝 놀라지만 더욱 놀랄 것은 그 다음이다. 거울 속에 비친 저 뒤에 또 다른 제가 나타나더니 칼을 빼어 거울 속의 저를 베어버린다. 소피는 놀라 쓰러지고 아이젠하임은 거울 속에 남은 이들을 물리쳐 쫓아낸다.
▲ 일루셔니스트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실존했던 마술이 영화 속으로
<일루셔니스트>는 아마추어 마술사로 아이젠하임을 동경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권력자인 레오폴드에게 충성하고 있는 울 경감의 상황을 흥미롭게 드러낸다. 마술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데다 남다른 노력으로 걸출한 공연을 만든 아이젠하임에게 그는 몹시 매력을 느낀다. 그의 마술이 가진 비밀을 알고 싶어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그에게 은근한 존경심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난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난 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기 황제 일순위 후보인 레오폴드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젠하임과 소피의 사이를 의심하는 레오폴드 탓에 상황은 차츰 심각해져만 간다. 마음이 가는 곳과 머리가 가리키는 곳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울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거듭 고민한다. 영화를 보는 범상한 관객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진 울의 존재를 통하여 관객들은 아이젠하임이 해낸 것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를 마침내 확인하게 된다.
한편으로 <일루셔니스트>는 마술을 영화 안에 담아낸 인상적 시도로 꼽힌다. 실존했던 마술을 영화 가운데 재현해낸 이 작품은 마술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얼마 되지 않는 현실 가운데서 특별한 작품으로 기록됐다. 마술은 수많은 볼거리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 나라 모든 마술사와 마술 애호가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더 매직스타'의 성패가 그 답이 되어줄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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