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올림픽 좌절, 후폭풍은 축구협회로

이준목 2024. 4. 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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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위기의 한국축구, 변화 없으면 더 큰 위기 온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월 A대표팀의 AFC 아시안컵 4강 탈락에 이은 또 한번의 대형 참사다. 3개월 사이에 무려 두 번의 '도하 참사'를 겪으며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부하던 한국축구의 자존심과 명예는 땅바닥까지 떨어졌다. 전례없는 위기를 자초한 대한축구협회(KFA)와 정몽규 회장에 대한 비판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축구대표팀(23세 이하)은 지난 4월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10-11로 패했다. 인도네시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4위에 불과하여 한국(23위)과 격차가 큰 데다, 한국인 신태용 감독에게 일격을 당하여 충격이 배가 됐다.

이로써 2회 연속 8강에서 탈락한 한국은 이번 대회 4강 이상에 오른 팀들에게 주어지는 파리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놓치게 됐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건 지난 1984 LA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2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 황선홍 감독이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축구전문가와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사태가 예상치 못한 이변이라기보다는, "우려했던 상황이 끝내 현실이 된 것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황선홍호는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만 해도 퍼펙트 우승으로 대회 3연패를 달성했고, 이번 U-23 아시안컵 개막 전 열린 전초전 성격의 2024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U-23 챔피언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정작 이번 U-23 아시안컵은 준비 과정부터 미흡했다. 황선홍호는 이번 대회에서 핵심전력인 양현준, 김지수, 배준호 등 유럽파 선수들이 모두 소속팀의 반대로 차출이 불발되며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는 올림픽 진출이 걸린 대회를 앞두고 팀의 경쟁력을 가다듬는데 전념해야 할 사령탑 황선홍 감독에게 지난달 A대표팀 임시 사령탑 역할을 맡기는 무리수를 뒀다. 황 감독은 주축 선수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태국 원정 경기를 승리(3-0)로 이끄는 등 임시 감독으로서는 선방했지만, 정작 본업인 올림픽팀의 완성도는 챙기지 못한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황선홍 감독의 전술과 리더십, 경기운영 방식에도 문제가 많았다. 황선홍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3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사실 내용은 내내 그리 좋지 않았다. UAE전에서는 밀집수비에 고전하다가 후반 추가시간 터진 이영준의 극장골로 기사회생했고, 중국전은 전반 중반까지 상대에게 수많은 득점찬스를 내주며 압도당하다가 김정훈 골키퍼의 선방쇼로 위기를 넘겼다. 일본전은 양팀 모두 8강행을 이미 확정지은 상황에서 주력 선수들을 빼고 로테이션으로 임한 경기였고, 역시 내용상으로는 크게 밀리다가 역습 한방으로 운좋게 거둔 승리였다.

결과적으로 연이은 행운의 꾸역승은 토너먼트에서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8강전은 한번 지면 그대로 끝장인 단판승부라는 점에서 조별리그나 4강-결승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한 경기였다. 그런데 황선홍 감독은 인도네시아와 8강전에서 이영준-정상빈-강상윤 등 핵심선수들을 벤치에 대기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이는 누가 봐도 인도네시아의 전력을 얕봤다고 밖에는 볼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상 인도네시아가 한 수아래로 꼽힌 것은 사실이고, 4강에서 우즈벡VS 사우디(우즈벡이 4강진출) 승자와의 총력전을 대비하려는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오산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이미 조별리그에서 호주를 잡았을만큼 만만치 않은 팀이었고, 한국을 상대로도 거침없는 공세를 이어갔다.

조별리그부터 불안감을 드러냈던 한국의 수비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한국은 전반에 인도네시아에 주도권을 내주고 2-1로 역전까지 허용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황선홍 감독은 부랴부랴 주전들을 투입했지만, 이번엔 믿었던 공격수 이영준이 거친 플레이로 퇴장당하는 대형사고를 저지르며 상황은 더욱 꼬였다. 여기에 후반에는 황선홍 감독마저 심판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수적열세에 감독까지 잃은 총체적 난국 속에서 한국은 정상빈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갔지만 끝내 승부차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패하여 조 2위로 밀렸던 일본은 8강에서 더 까다로운 상대였던 홈팀 카타르를 꺾고 4강에 오르며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한국축구에게는 모든 면에서 지난 2월 카타르 AFC 아시안컵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끌었던 A대표팀이 겪었던 비극의 재림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이번 올림픽 본선진출 실패로 지도자 커리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황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이자 한국축구의 레전드 공격수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지도자로서는 포항 시절 2013년 K리그-FA컵 2관왕 이후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병역혜택이라는 메리트가 걸려있어서 유럽파와 와일드카드까지 최정예멤버 소집이 가능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성적을 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전력상의 이점이 없고 변수가 많은 U-23 아시안컵에서는 황 감독의 부족한 전술적 역량과 고집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황선홍 감독은 축구협회가 발표한 차기 A대표팀 감독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만일 23세 이하 대표팀이 올림픽 본선진출에만 성공했다면, 황 감독이 A대표팀 정식 감독으로 선임될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황선홍호가 40년만의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A대표팀 감독 선임 가능성도 사실상 사라졌다.

후폭풍은 축구협회로
 
 22일 카타르대학교 훈련장에서 2024 AFC 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일본과 경기를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황선홍 감독이 훈련 중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제 그 후폭풍은 축구협회로 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2월 아시안컵 부진으로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과 황선홍 감독은, 모두 정몽규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영입된 인물들이다. 그 결과로 A대표팀은 우승을 노렸던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4강에서 탈락했다. 클린스만호는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비기고 요르단과는 1무1패에 그치는 최악의 경기력으로 일관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A대표팀 후임 감독으로 당초 K리그 현직 감독 차출을 추진하다가 축구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올림픽팀에 집중해야 할 황선홍 감독을 임시 감독으로 임명하는 또다른 악수를 택했다. 하지만 정작 유럽파 선수차출 문제 등 행정적으로 협회가 지원하고 해결해줘야 할 현안에서는 이번에도 손을 놨다. 이처럼 A대표팀과 올림픽팀의 동반 참사는, 우연이 아니라 누적된 실책들이 쌓이고 쌓여서 터진 '예고된 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는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할 시간이다. 한국축구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27일 현재 협회 공식 SNS 게시글에는 축구협회를 성토하며 "정몽규 OUT"를 외치는 항의성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에 대해 축구팬, 축구인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발표했다. 이어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위해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선수와 지도자 육성, 대표팀 운영 체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내 더 이상 오늘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팬들은 더 이상 협회의 형식적이고 안이한 사과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수장 정몽규 회장을 비롯하여 축구협회 수뇌부에게 모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정몽규 체제의 대한축구협회에서 능력에 비하여 홀대받았던 신태용이나 김판곤같은 축구계 인재들은 오히려 해외무대로 나아가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친정인 한국을 적으로 만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도 뭔가 의미심장하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한국축구가 이번에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절실하게 변화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더 큰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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