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도 앰프도 없다…'소음민원 제로' 버스킹 펼쳐지는 곳

김서원 2024. 4.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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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8시 30분쯤 서울 관악구 봉림교 아래 도림천 수변 공간에서 '다리 밑 프로젝트'의 버스킹 공연이 펼쳐졌다. 이들은 올해로 10년째 앰프, 마이크 등 공연 장비 없이 오직 굴다리 울림을 이용해 길거리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서원 기자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림교 아래 도림천 수변 공간. 오후 8시 30분이 되자 기타·바이올린·젬베 등 악기를 든 뮤지션 11명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2~3명씩 서로 짝지어 어쿠스틱·발라드·재즈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작곡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순식간에 인근 아파트 주민과 운동하던 시민 등 관객 20여 명이 이들을 빙 둘러쌌다. 한 곡씩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하지만 이곳에 앰프나 마이크 같은 공연 장비는 없었다. 굴다리 아래 울림만을 이용한 이른바 ‘언플러그드 버스킹’이다. 이들은 팀명도 ‘다리 밑 프로젝트’라고 지었다. 한참 공연을 즐긴 서원동 주민 신모(53)씨는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부르는 공연을 보니 신기하다”며 “경기 분당에 살다가 여기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공연 덕분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리 밑 프로젝트'의 거리 공연이 시작되자 인근 아파트 주민 등 20여 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김서원 기자


보통 버스킹은 지나가는 차량이나 상점의 노랫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행인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소음 민원과 싸워야 할 때가 많지만, 이들은 다르다. 늦은 밤까지 공연해도 민원이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리 밖으로 세 걸음 정도만 나가면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리 밑 프로젝트를 이끄는 변원영씨는 “처음 언플러그드 공연을 하게 된 건 공연 장비가 무거워 들고나오기 번거로워서였다”며 “보통 2~3시간씩 공연하는데 길게는 새벽 3~4시까지 6~7시간 동안 공연을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림교 아래에서 '다리 밑 프로젝트'의 기타와 젬베 연주가 시작되자 한 어린 아이가 홀린듯 멈춰 서 음악을 즐기고 있다. '다리 밑 프로젝트' 제공.


관중과의 거리도 더 가깝다. 관객과 가까이 교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청년 커뮤니티 역할도 하게 됐다. 다리 밑 프로젝트 멤버와 청년 관객 53명이 모인 SNS 채팅방엔 “날씨도 풀렸는데 일요일 저녁에 버스킹 하러 나갑시다”, “오늘은 버스킹 안 하나요” 같은 대화가 수시로 올라온다. 이날 만난 고소희씨(25)도 정기적으로 이들의 공연을 찾는 관객 중 한 명이다. 지난해 11월 퇴근길에 봉림교 아래를 지나가다 우연히 공연을 보고 팬이 됐다고 한다. 고씨는 “타향살이를 하는 중에 동네 친구가 생긴 기분”이라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다른 커뮤니티보다 친밀감이 두텁다”고 했다.

'다리 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버스킹 공연장 옆에 돗자리를 펴고 어울리고 있는 모습. 자연스럽게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다리 밑 프로젝트' 제공.


지난 2014년 관악구에서 열린 ‘다리 밑 축제’에 참여했던 멤버들이 모여 결성한 다리 밑 프로젝트는 10년째 봉림교 아래에서 언플러그드 버스킹을 이어오고 있다. 초창기엔 주민들에게 후원금을 받아 활동을 이어갔다. 지금은 전업 음악가를 비롯해 극작가, 회사원, 서울대 교환학생 등 악기 연주를 취미로 즐기는 청년 15명으로 구성됐다.

9년 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교대역에서 촛불 하나 부르는 이름 모를 백형’ 영상의 주인공도 다리 밑 프로젝트 출신이다. 멤버 안코드(Aancod)는 2014년 지하철역 환승장에서 통기타를 치며 가수 지오디(god)의 ‘촛불 하나’를 불렀는데, 관중 수십 명이 떼창으로 화답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782만회에 달했다.

서울 관악구 봉림교 아래 도림천 수변 공원에서 버스킹 공연하는 '다리 밑 프로젝트' 옆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김서원 기자


관악구에서 인디 음악과 버스킹이 활성화한 건 2000년대 샤로수길 인근에 라이브 재즈 카페 등이 여러 곳 생기면서다. 관악문화재단 관계자는 “대학로나 홍대 쪽에서 저렴한 집을 찾아 넘어오는 음악가들이 많아지며 커뮤니티가 활발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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