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외친 '망치의 동등가치'…그건 공산주의 사회에도 없다

김창우 2024. 4.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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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4 자본론(하) 카를 마르크스

현실에서 공산주의 국가는 거의 모두 망했다. 1922년 12월 30일 출범한 소비에트연합(소련)은 건국 69주년을 4일 앞둔 1991년 12월 26일 붕괴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와 동유럽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과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기묘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왕조로 바뀐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보기도 어렵다. 카를 마르크스는 150년 전에 쓴 『자본론』에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내재한 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는 승리를 구가하고 공산주의는 무너졌을까.

브란덴부르크 문에 모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축하하는 독일 시민들. 중앙포토

자본주의의 변신

마르크스 시대의 자본주의는 어린이까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자본가는 국가 권력과 야합해 독점과 담합을 일삼았다. 제국주의에 올라 탄 유럽 국가들은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전쟁까지 불사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면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붕괴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자본론은 부제부터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애덤 스미스에서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당시에는 보통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얄밉게도 체질을 바꿨다.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은 '경제학 원리(1890)'에서 노동생산성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마셜의 한계혁명을 받아들인 신고전파(네오 클래시컬)는 현재 경제학의 주류를 이룬다. 마셜의 제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1936년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통해 거시경제학을 창시했다. 정부, 가계, 기업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국가 전체의 경제 현상을 분석한다. 케인스는 불경기나 공황이 올 경우 정부 지출을 늘려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이 고전학파에서 탈피해 발전하는 것과 함께 자본주의 역시 노령·실업 연금, 건강보험 같은 사회주의적 제도를 받아들이고 노동법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체질을 바꿨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19세기 자본주의와 같은 자리에 현대 자본주의를 놓고, 마르크스의 방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마르크스가 현대 자본주의 국가를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80~90%는 실현됐다"고 기뻐하지 않을까.


공산주의의 모순

실제로 현실에 나타난 공산주의 국가는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중국 등에서 시작했다. 공산혁명 당시 러시아는 유럽의 열강 중 하나였지만 농노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산업혁명에도 뒤처진 이류 국가였다. 차르가 지배하는 체제를 볼셰비키(1900년대 초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파)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뒤집어엎고 공산주의를 도입했다. 열강에도 들지 못하던 중국은 마오쩌둥이 농촌을 중심으로 내전을 벌인 끝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변신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사진 왼쪽)과 소련의 스탈린. 중앙포토


소련과 중국은 국가(정확히는 공산당)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를 통해 중공업을 육성하고 군사력을 키웠지만, 삶의 질이라는 면에서는 서방 국가와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인 1980년대 말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의 한 기자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무슨 줄이냐고 묻자 자신도 모른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고기 채소 설탕 양말 담배 술, 모든 물건이 부족해요. 언제 다시 물건이 들어올지 모르니 뭐든지 일단 챙겨놨다가 나중에 필요한 물건과 바꾸면 돼요."

1980년대까지 미국으로 망명한 동유럽 사람들이 가장 많이 놀라는 곳은 슈퍼마켓이었다고 한다. 운동장만한 공간에 다양한 물건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탈북민들도 한국에 입국한 후 밤새도록 도시를 밝히는 불빛, 산마다 나무가 빽빽한 것(북한은 나무를 난방, 취사용으로 쓰는데다 산에 다락밭을 만드느라 베어 버리기도 했다)과 함께 대형마트에 쌓인 수많은 물건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하는 경우가 많다.


소련은 왜 망했나

공산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그 사회의 표준적 생산조건, 평균 노동숙련도, 일반적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을 주장했다.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상품을 사려는 사람의 만족도(효용)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효용가치론과 다르다.

밥 한공기와 금 한덩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먹는 밥의 가치는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몇 그릇째 먹고 있는지 등에 따라 다르다. 열흘 굶은 사람에게 밥 한공기의 가치는 금덩이보다 크다. 만약 밥이 단 한공기만 있다면 열흘 굶은 사람은 기꺼이 금덩이를 지불할 것이다. 하지만 밥이 충분히 많다면 세 공기째 먹는 사람(배가 불러 별로 맛이 없을 것이다)이 낼까 말까 고민하는 1000원 수준으로 값이 정해진다. 이게 효용가치론이다.

마르크스는 밥의 가치가 농부, 유통업자, 식당 주인 등이 생산을 위해 사용한 절대적인 시간의 합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금 한덩이를 캐는 데는 밥 한공기를 만들 때보다 수십, 수백 배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만큼 값이 비싸진다. 하지만 마셜의 한계효용 이론에 따르면 가격은 마지막 한 단위의 효용에 따라 정해지는 상대적인 값이다. 그래서 수요는 우하향(가격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감소)하는 한계효용곡선이 된다. 공급은 우상향하는 비용곡선 형태로 나타난다. 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시장가격이 정해진다.

소련은 공산당이 상품의 가격과 생산량을 통제했다. 생산량을 당에서 정해 하달하는 공장의 노동자나 공동생산, 공동분배 방식의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당에서도 수백, 수천만 가지 상품을 적정한 수준으로 생산하도록 배분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결국 비효율과 허위 보고, 암시장이 판치는 경제 체제는 오래갈 수 없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후 동유럽에서는 잇따라 레닌 동상을 철거했다. 중앙포토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거나 충분한 물건을 공급하지 못할 경우 배분하는 방법은 세가지다. 선착순, 추첨, 그리고 뒷거래다. 소위 명품이나 할인특가 제품이 풀리면 사람들이 '오픈런'에 나서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선착순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추첨을 선호한다. 새 아파트를 싼 값에 분양하면 수천, 수만대 일의 청약 경쟁이 벌어진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권력을 쥔 사람이 마음대로 배분한다. 후진국일수록 공무원이 뒷돈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회적인 자원을 시장 대신 권력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판사와 목수의 망치는 다르다

김제동씨는 "국회의장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가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날은 오지 않는다. 노동가치론을 집대성한 애덤 스미스는 직업에 따라 소득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간 노동을 해도 같은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직업이 얼마나 존경받는가, 그 직업을 갖기 쉬운가, 얼마나 안정적인가 등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당신이 아들을 구두 제조공에게 보내면 아들은 거의 확실히 구두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법률 공부를 해서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될 확률은 기껏해야 20대 1이다"라고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야 나중에는 노동가치론 대신 '노동+자본+지대'가 가치를 구성한다고 했으니 직업별로 노동의 가치가 다르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반론할 수 있다. 맞다.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으로 풀어보자.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오직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노동의 가치가 모두 동등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 즉 사회의 표준적 생산조건, 평균적 노동숙련도, 평균적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초보자가 4시간 동안 낑낑대고 만들어낸 물건의 가치가 장인이 한시간만에 뚝딱 만들어낸 물건 가치의 4배가 되는 게 아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혁명 기간 홍위병들은 중국 전역에서 전통 문화재와 종교 상징물 등을 불태웠다. 차가운 머리 없이 뜨거운 가슴만으로 행동하는 맹신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중앙포토


노동가치론은 자본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수많은 상품마다 절대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현실 경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김제동씨는 한걸음 더 나가 국회의장과 목수의 망치가 동등한 가치를 갖는 세상을 바란다. 노동가치론을 알고서도 그리 주장했다면 황당하고, 모르고 주장했다면 난감하다. 모든 사람의 망치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는 물론, 공산주의 사회에도 없다. 자본주의는 망치의 가치를 시장이 정하고, 공산주의는 당이 정한다. 공산주의는 그래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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