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뛰면 걸어다니던 인니가 한국 잡았다…신태용 매직 비결

정영재 2024. 4.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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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3 아시안컵’ 명암 엇갈린 한국·인도네시아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이 2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아시안컵 8강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론 너무 처참하고 힘들다.”

한국을 꺾고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4강에 오른 신태용 감독이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2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한국과의 8강전에서 연장까지 2-2로 비긴 뒤 12번째 키커까지 나선 승부차기에서 11-10으로 승리해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이후 68년 만의 올림픽 본선행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대회 3위까지는 파리 올림픽에 직행하고 4위는 가나와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인도네시아는 사우디-우즈베키스탄전 승자와 준결승을 벌인다.

반면 한국은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에 충격적인 일격을 당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신 감독은 4강에 오른 비결에 대해 “4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기부여만 해주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신 감독과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신 감독은 부임 후 네덜란드·벨기에 등에서 뛰고 있는 혼혈 귀화 선수들을 대거 발탁, 대표팀의 체격과 체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인도네시아 축구를 근본부터 바꿨다는 찬사와 지지를 받고 있다.

신 감독과 인도네시아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맡아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꺾어 탈락시키는 대이변을 연출한 뒤 쉬고 있을 때였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서 대한축구협회(KFA)로 ‘신태용 감독 연락처를 알려 달라’며 이름을 콕 집어서 문의가 왔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5전 5패를 하던 중이었는데 신 감독은 ‘인구 수나 축구열기가 나쁘지 않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FIFA 랭킹과 축구 수준이 처져 있나.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 2월 잠시 귀국한 신 감독을 만났다. ‘신태용 매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팬들이 한국과의 아시안컵 8강전을 관전하며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지에 가서 보니까 어떤 문제점과 가능성이 있었는지 물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축구를 20분 정도밖에 하지 않는 스타일과 체력이더라. 체력이 있을 때는 발 기술이 좋아 보였는데 20~30분 지나고부터는 거의 걸어 다니는 수준이었다.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코어 운동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튀긴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주로 먹는 식단부터 바꾸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코어 훈련에 집중했더니 선수들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스스로 개인운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올린 다음엔 마인드 컨트롤, 즉 멘탈에 집중했다고 한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거짓말 해선 안 된다는 걸 강조했다. 거짓말이란, 자기가 실수를 해 놓고도 동료가 패스를 잘못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남 탓을 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시간 약속을 밥 먹듯이 어겼다. 심지어 대표팀 소집을 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안 온 선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다 집에 보내버렸다. 지금은 철저히 규율이 잡혀 있다.”

신 감독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여기에 녹아들려는 ‘존중의 리더십’을 꼽았다. 그는 “무슬림으로서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1%도 터치하지 않고 존중해 줬다. 다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바꿔라’고 요구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목이 타고 힘들어도 물을 서서 마시지 않고 앉아서 마시는데, 신에 대한 존경을 담은 행동이라고 한다. 제발 좀 서서 먹으라고 설득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생각의 틈을 좁혀가는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중도 퇴진으로 공석이 된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신 감독도 유력 후보로 올라 있었다. 실제로 지난 2월 인터뷰에서 “KFA에서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묻자 그는 “아직 KFA에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온다면 그때부터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대표팀을 다시 맡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계약 만료(올해 6월)를 앞두고 일찌감치 신 감독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한국행 가능성은 사라졌다.

신 감독은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밤잠 설치고 응원해 준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 축구와 선수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지금 비록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팬들이 조금만 인내하고 기다려 준다면 머지 않아 ‘아시아의 호랑이’ 위용을 되찾게 될 거라고 믿는다. 특히 대표팀의 젖줄인 프로축구 K리그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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