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피의자 잇따른 '검찰 때리기'…미·프랑스에 있는 죄, 한국엔 없다

허정원 2024. 4.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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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부패 의혹 사건의 야권 성향 피의자·피고인들이 연이어 검찰 수사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효과는 명확하다. 본인은 검찰을 때리는 의혹 제기만으로 수사 및 재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야당은 검찰개혁 여론을 확산하는데 활용하고 있어서다.

피의자가 의혹을 제기하면 정치권에서 이를 검증의 대상으로 올리고, 수사가 진실공방의 영역으로 끌려 나오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검찰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역시 검찰수사 불신 이슈에 땔감을 제공하고 있다.


술판 의혹에 차장 탄핵…대북송금 수사 전방위 공격


2018년 10월 25일 방북 결과를 발표하는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 전 부지사는 2022년 10월 대북송금 의혹, 쌍방울 뇌물 의혹 등 재판을 시작한 후 1년7개월만인 지난 4일 '수원지검청사 내 술판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경기도.

지난 4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불법대북 송금 재판 마지막 기일에서 ‘검찰청사 내 술판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6월경 수원지검 내에서 자신을 회유하기 위한 술자리가 벌어졌고, 그 자리엔 경기도 대신 북한에 8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도 동석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7월 검찰에 ‘대북송금 필요성과 쌍방울 측의 대납 계획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는데, 자신의 진술이 이른바 ‘술판 회유’에 의한 것이라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 전 부지사측의 주장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6일 “100% 진실로 보인다”며 힘을 실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 대책위원회도 18일 수원지검을 방문해 “수원지검은 진술 조작 모의 의혹의 수사 주체가 아닌 수사 대상”이라며 “대검이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야당 대표를 상대로 한 진술 조작 모의 의혹을 그냥 유야 무야 덮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검찰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10차례의 검찰 해명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측은 음주 장소·일시, 음주 여부까지 계속해서 번복하는 중이다.

대북송금 수사와 관련해선 ▶이정섭 전 수원지검 2차장에 대한 탄핵 ▶후임인 안병수 2차장 직무대리의 ‘KT ens’ 사건 수사기밀 유출 및 이로 인한 검찰 전관 변호사의 이익 몰아주기 의혹 ▶이 전 부지사의 재판부 기피 신청 및 기각에 따른 항고·재항고 등 여러 수단이 동원됐다.


피의자가 던지고 정치권이 받는 패턴 반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성남FC·백현동 배임·뇌물 등 혐의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공판에 앞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 전 부지사의 술판회유 의혹에 대해 "100% 진실일 것"이라며 힘을 실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도 야당의 공세를 피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의 피의자인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는 검찰이 자신의 휴대전화 정보 전부를 불법으로 수집·관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24일까지 20차례에 걸친 기획보도를 통해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의혹이 불거진 초기인 지난달 22일엔 조국혁신당이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추진”을 공언한 반면 검찰은 뚜렷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본류 수사의 내용보다 수사 과정이 더 조명받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선 피의자인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가 “보석청구 기각으로 참정권을 침해당했다. 저항권의 하나로 재판을 거부한다”며 지난 1일과 3일 공판에 연이어 불출석하는 등 재판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美·佛 등엔 사법방해죄 규정…“사법불신, 검찰개혁도 무용화”


신재민 기자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고소·고발이 되면 일단 피의자 신분이 되는 데다 검사만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국가소추주의를 채택하는 한국에선 이 같은 갈등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면서도 “무리한 의혹 제기로 인한 수사·재판 지연이나 수사중 허위 진술 등은 해외에선 사법방해죄로 처벌될 사안이기도 하다”고 우려했다.

현재 한국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법정모욕, 범인은닉, 위증, 증거인멸·증거은닉, 무고죄 등이 있지만 수사단계에서의 허위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 등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2002년과 2010년 두차례 사법방해죄 도입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당시 법안엔 다른 사람이 형사처분을 받거나 면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형사사건에 관해 타인의 증언·진술을 방해하거나 허위증언·진술을 하게 할 목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약속·공여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지난해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사법방해죄 도입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엔 연방법에 사법방해죄 개념을 규정하고 ▶공무원 또는 배심원 방해죄 ▶정부부처·관청 등에서의 절차방해죄 ▶법정질서 방해죄 ▶수사방해죄 ▶증인·피해자·정보제공자 매수죄 등을 처벌하고 있다. 워싱턴 D.C.에선 3년 이상 30년 미만의 징역 또는 1만 달러 미만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프랑스에선 형법상 사법기능에 대한 침해의 하나로 경찰 단계에서의 허위진술도 처벌하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선 범인비호죄 등을 규정·적용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형법상 검사의 수사에 대한 허위진술죄에 대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이 일반화하면 검찰의 대안으로 탄생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나아가 향후 검찰개혁으로 중대범죄수사청 등 전문수사기관이 탄생한다 하더라도 불신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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