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 사라져 속앓던 낙동강…뜻밖에 몰려온 이 생선에 웃음꽃

김민주 2024. 4.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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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수조 속의 까치복. 중앙포토

“자망 그물을 띄워가 물 흐르는 대로 살살 훑으모 까치복이 항그(많이) 들어찹니더.” 26일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의 김국태(76) 계장이 함박웃음을 띠며 이같이 말했다. 열다섯살 때부터 평생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했다는 그는 “원래 낚시로도 잡았는데, 2020년부터는 그물로도 잡힐 만큼 (까치복이) 늘었다. 산란기인 매년 5~7월 어획량이 100t은 된다”고 덧붙였다.


수라상 오르던 생선은 왜 사라졌나


사하(沙下)라는 지명대로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이 지역 연안엔 강줄기를 따라 흘러온 고운 모래가 쌓인다. 모래톱 위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어자원이 풍부한 기수 생태계를 이룬 사하 앞바다에서는 조선 시대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웅어나 재첩이 많이 잡혔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이 재첩으로 낸 맑은국을 솥째 머리에 이고 “재첩국 사~소”라고 외치는 '재첩국 아지매'들이 매일 동트기 전 부산 주택가를 구석구석 누볐다.
낙동강 하굿둑의 모습. 뉴스1


하지만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강의 상류로 올라가야 하는 산란기 웅어떼의 물길을 둑이 가로막으면서 웅어가 크게 줄었다. 둑 건설 이후 유속이 변하고, 일대 오염이 심해지면서 재첩도 차츰 자취를 감췄다. 주력 어종을 잃은 일대 어민들 한숨도 깊어졌다.


불어난 까치복, 어민엔 福덩이


어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까치복 어획량이 늘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과 부산시 수자원연구소 등 기관에 따르면 까치복이 늘어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일대 까치복 개체 수만 헤아린 자료는 없다. 공설 어시장에서 위판되는 게 아니라 어촌계와 상인 간 사거래 위주여서 정확한 어획량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진구 국립부경대 자원생물학전공 교수는 “특정 종의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건 천적이 줄었거나, 해당 종 산란기에 먹이 공급이 매우 원활해졌기 때문으로 여길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일대 환경에 대한 조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 어민들이 까치복 손질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


다만 이곳 어민은 매년 까치복 어획량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복어는 몸값이 높은 물고기인데, 까치복은 복어 중에서도 중ㆍ고가 어종이어서 어촌계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


어민표 까치복 밀키트로 해수부 우수상 탔다


‘까치복 호황’이 이어지자 어민은 지난해부터 까치복을 활용한 상품인 ‘까치복 맑은탕’ 밀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김국태 어촌계장은 “그냥 팔기만 하면 중간상인들은 짭짤한 수익을 보지만, 우리에겐 큰 돈벌이가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 어민이 직접 잡은 까치복으로 개발한 밀키트. 사진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

수산자원공단 소속으로 특허상품 개발 등 어촌계 소득 창출을 돕는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가 밀키트 개발에 도움을 줬다. 센터는 하단어촌계 까치복 밀키트 개발을 지난해 역량강화 사업으로 선정하고 어촌계에 복어 조리와 레시피 개발부터 법인 설립, 브랜딩을 위한 교육을 제공했다. 교육을 들은 어민 가운데 진영남(48)씨는 어렵기로 유명한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복어 조리 기능사 자격을 땄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단포구영어조합법인은 횟집 밀집 지역에 작업장을 차려 직접 밀키트를 제작하고 있다. 하단어촌계는 까치복 밀키트를 앞세워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전국 ‘우수 어촌특화마을’ 세 곳 중 한 곳으로 이름을 올렸다. 손미혜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장은 “어민이 직접 조업부터 제작 과정 전반을 책임진다.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작할 수 있는 구조”라며 “올해부터 지역 축제장을 포함한 온ㆍ오프라인 시장에서 하단어촌계 밀키트 판로를 본격적으로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 사하구 하단어촌계 어민들이 개발한 까치복 밀키트. 하단어촌계는 이 밀키트를 앞세워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지정하는 전국 우수 어촌특화마을 세 곳 중 한 곳으로 지정됐다. 사진 부산어촌특화지원센터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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