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온 아프리카, 교회의 품으로 품다

최기영 2024. 4.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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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이민자들 섬기며 신앙공동체 이룬 파주 디자인교회
이인자 조이하우스 센터장이 다양한 국적의 아프리카 아이들과 센터에서 교제하며 활짝 웃고 있다. 조이하우스 제공


244만 8401명. 올 1월 현재 국내 장·단기 체류 외국인 숫자다. 외국인 250만 시대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은 내년엔 우리나라 전체 인구(약 5100만명)의 5% 수준에 도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 다문화 국가’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한외국인’이란 말이 친근하게 느껴질 만큼 요즘 외국인들은 관광객 증가와 맞물리며 우리 곁에 부쩍 가까이 다가선 존재가 됐다.

하지만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떠올리는 다수 국민은 동남아시아 유럽 북미 출신 외국인의 모습을 흔히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경기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우리네 일상에 자리 잡았다. 바로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하늘길로 최소 15시간 이상,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들. 여전히 현실보다는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동네를 찾았다. 그곳엔 한국인 일상에선 보기 어려웠던 이들이 상상도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 아픔을 끌어안은 채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들이 그들의 일상이 되길 소망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우리 곁의 아프리카, 그곳에 떨어진 밀알
경기도 파주 조이하우스 전경.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를 출발해 50㎞를 달려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의 한적한 고추밭 길을 지나자 사뭇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틀이 군데군데 녹슨 낡은 공장과 창고 건물 앞에 유아용 미끄럼틀과 장난감 자동차 등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건물에 부착된 ‘선교센터, 조이하우스’ 간판과 귀여운 그림들이 이 공간의 쓰임새와 운영 주체를 가늠케 했다.

조이하우스 내부로 들어가자 서너 살배기 아이 20여명이 선생님을 따라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흔한 영어 유치원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모인 이들은 아이도 선생님도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오전 7시가 좀 넘으면 출근하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죠. 그 엄마들이 다시 돌아오는 건 보통 12시간 후에요. 야근해야 하는 엄마들은 더 늦기도 하고요.” 친정엄마처럼 아이들을 바라보던 이인자(54) 센터장이 조이하우스 일과를 설명했다.

오전부터 이곳에서 머무는 아이들은 생후 3개월부터 5세까지 28명이다. 조이하우스에서 생활하다 인근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이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아오면 50명 넘는 웃음소리로 내부에 가득 찬다. 그 시작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주 디자인교회(장일석 목사) 사모이기도 한 이 센터장이 마을 어르신을 대상으로 반찬 나눔 사역을 하던 중 만삭의 몸을 이끌고 둑길을 지나던 아프리카계 외국인을 만난 게 계기였다.

“임신부 여성을 부축해 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돈 벌러 나가는 엄마들이 일 나가기 어려운 임신부 친구의 집에 아이들을 맡겨놨는데 작은 방에 두 살배기 아이들을 눕혀놓고 방치해 둔 수준이었지요. 당장 데려갈 곳이 마땅치 않아 교회 자모실로 데려가 온종일 돌봐줬어요. 그러기를 한 달쯤 하다 교회 권사님이 마련해주신 보증금 500만원으로 다세대 주택을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 양육에 나섰지요.”

경기 침체로 생긴 빈자리 채운 아프리카계 외국인

1960~70년대 미군부대 주둔과 함께 경제 활성화가 이뤄졌던 파주시 법원읍과 동두천 보산동 지역이 부대 이전, 공여지 반환 등으로 침체를 맞으면서 빈자리를 채운 것이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었다. 떨어질 데까지 떨어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건물 용도를 바꾸고 월세를 대폭 낮추자, 저렴한 거주지를 찾아 상대적으로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던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진 셈이다.


파주시에 거주 중인 아프리카계 외국인(상위 3개 국가는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공) 거주자는 2021년 287명이었던 것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엔 327명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체류 허용 기간이 1년 이내인 G-1(난민신청자) 비자나 기타 비자로 들어와 있거나 불법체류 중인 이들도 상당수다.

만약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이 출산을 하게 되면 축복과 우려의 경계를 넘나든다. 출생한 아이에게 ‘미등록 이주 아동’이란 분류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는 곧 ‘있지만 없는 존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땅의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 교육, 의료 서비스로부터 제외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센터장은 “순산으로 산모와 아이가 건강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큐베이터라도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면 부모가 평생 갚지 못할 수천만 원짜리 빚을 안고 아이가 태어나는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일상의 희망터이자 영적 피난처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조이하우스에서 선물 받은 무당벌레 가방을 메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 조이하우스 제공

임시식별번호를 부여받아 어린이집을 찾아가도 등원을 거부당하기 일쑤인 상황에서 조이하우스는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에게 친정집 같은 공간이 돼줬다. 정 넘치는 사모가 무료로 아이를 돌봐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엄마들이 갈수록 늘었다.

다세대 주택 단칸방으론 수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기도하며 찾은 곳이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공장이었다. 폐공장을 손수 리모델링하며 아이들을 위한 보육 공간, 엄마 아빠들의 예배 공간을 마련하자 조이하우스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아프리카 공동체가 됐다.

지난해 4월 조이하우스에서 부활절예배를 드리는 아프리카 성도들 모습. 조이하우스 제공


조이하우스에 두 아이를 맡기고 있는 미혼모 아이린 소티(가명·29)씨에게 이곳은 피난처이자 희망터다. 그는 “남아공을 떠나 6년 전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동안 끊임없이 고난과 역경을 겪었는데 2년 전 조이하우스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희망을 품게 됐다”며 “일자리를 구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이 센터장은 폐고물상 구제옷공장 등 밑바닥 노동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에 여념이 없다. 내전과 종교적 탄압, 경제적 문제 등 저마다 조국을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한민국 땅에 발 디딘 채 같은 공기를 마시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부모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기 전에 기도하고 퇴근할 때도 기도한 뒤 아이를 데려가요. 주일엔 카메룬 세네갈 짐바브웨 등 10개국 출신 외국인 100여명이 언어 장벽을 넘어 예배를 드립니다. 힘겨운 한국 생활을 술과 마약으로 버티는 이들 소식을 듣다가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밖에 없다’는 고백을 듣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격스러워요. 이곳이 아프리카 친구들의 ‘오산리 기도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파주=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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