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스튜디오 앨범을 낸 임윤찬과의 줌 콜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첫 스튜디오 앨범을 냈습니다. 바로 쇼팽의 연습곡 24곡을 모두 녹음한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 그를 줌(Zoom)으로 만났습니다.
최근 손목 부상으로 공연이 취소됐다. 잘 회복하고 있는지
1-2주를 쉬니까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피아노 치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다. 다만 컨디션 조절에 신경쓰며 연습하고 있다.
다행이다. 음반 얘기로 넘어가서, 데카에서 데뷔 앨범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를 발매했다.
굉장히 영광이다. 어렸을 때부터 듣고 연습했던 작품이기에, 10년 동안 속에 있었던 용암을 이제서야 밖으로 토해낸 느낌이 든다. 이 레퍼토리를 허락해 준 데카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스튜디오 녹음은 어땠나
일단은 연습한 걸 홀에서 마음대로 쳤다. 그러다 내가 쇼팽이 남겨놓은 텍스트에서 조금 벗어났다 싶으면 훌륭한 디렉터인 존 프레이저가 중심을 잡아주었다. 덕분에 밸런스를 잘 맞춰서 녹음했다. 하고 싶은 연주를 여러 가지로 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수 있다는 게 스튜디오의 장점이다.
앨범에서 눈여겨 볼 만한 점이 있다면
24곡 모두 내겐 중요하지만, 25-9번 곡인 ‘Butterfly Wings’ 중에 왼손의 음을 아예 바꾼 마디가 있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왼손을 완전히 다른 음으로 치는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나도 한 번 해봤다. 다른 음을 치면 존 디렉터가 귀신같이 잡아내는데, 그 역시 바뀐 왼손의 음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말해줬다. 이 부분을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25-9번이나 10- 2번, 10-4번을 재밌게 했다. 25-7번도 너무 좋아하는 곡인데, 첫째 날 가장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다. 8-9시쯤 굉장히 심취했었는데, 괜찮게 나온 것 같다.
25- 7번 곡 ‘Cello’의 두 마디에 7시간을 연습했다고 들었다
7시간이 아닐 수도 있는 게, 그 두 마디를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생각하고 연습했다. 첫 음을 누를 때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그건 연습이 아니다.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의 연결이 심장을 강타해야만 세 번째 음으로 넘어갔다.
연주 때마다 곡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물론이다. 예시로 10-2번 곡은 일본에서 대여섯 번 연주했는데, 어느 날은 나방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치거나 어떤 날은 패달을 1/ 10 정도로 밟으면서 흐르는 느낌으로 치고 싶었다.
근본 있는 음악가를 담고자 하는 마음에서 쇼핑 에튀드를 선택했다. 근본 있는 음악가란 어떤 음악가인가
첫 번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깊이 깔려 있고, 두려움 없는 표현을 하는 음악가. 진실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에 가볍게 던지는 유머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두 번째는 연주의 음이 튀자마자 귀가 들을 새도 없이 심장을 강타하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다. 사실 이건 노력으로 될 건 아니고, 시대가 택한 천재만이 할 수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
너무 겸손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근본 있는 음악가는 누구인지
이그나츠 프리드만, 소프로니츠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유리 에고로프 등 매우 많다. 사실 이번 녹음은 그런 분들의 연주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나이에 내 앞에 있는 산을 꼭 넘고 싶다는 의지에서 가장 크게 비롯됐다.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열독했다고 들었다. 참고한 책이 있다면
알프레도 코르토의 〈쇼팽을 찾아서〉를 즐겨 읽었다. 교육자로서 쇼팽의 모습부터 그의 외모, 연주, 말년과 같은 내용이 많은 영감을 줬다.
백혜선 교수가 “2년 전 반 클라이번 대회 때와는 전혀 다른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했다
내 입으로 얘기하긴 그렇지만 좋게 변하고 있다. 일단 그때 연주는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다. 공부를 하는 힘든 환경에서 딱딱해져 있었고, 스스로 갇혔다는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무대 위에서 약간의 여유도 생겼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달라져야만 한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새 곡을 선보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멘탈 관리법이 있나
없다. 공연하는 게 너무 힘들면 ‘그냥 힘들구나’하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일정 속에서 새로운 곡을 익히는 것은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
쇼핑 에티드를 연습할 때 곡에 저마다의 스토리를 입힌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의 심상이 저절로 머릿속에 펼쳐지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고민하고 구축해내는 쪽에 가까운가
후자다. 곡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한다. 사실 쇼팽 에튀드뿐만 아니라 다른 곡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호로비츠가 한 말 중에 굉장히 유명한 얘기가 있는데, ‘음표 뒤에는 항상 숨겨져 있는 내용들이 있는데 항상 이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음표 너머에 있는 그 내용들을 반드시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나도 그것을 했을 뿐이다. 그 내용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소프르니츠키의 말을 인용한 글을 올렸다. “진정 위대한 예술은 일곱 겹 갑옷을 입은 뜨거운 용암과도 같다.”는 문구 말이다
소프르니츠키가 콩쿠르에서 8 번 우승했을 때 한 말이다. 쇼팽과 연결되기보다는 나의 연주 그 자체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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