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쟁의 시대’… 유럽, 커지는 ‘징병제 부활’ 목소리

송태화 2024. 4. 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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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계기 ‘모병제’론 병력 증강 한계상황 직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전 세계가 목격하면서 곳곳에서 징병제 부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는 1991년 냉전이 끝난 뒤 30년간 지속된 평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냉전이 본격화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돌아온 전쟁의 시대에 많은 나라들이 방위력 강화를 선포했으나 병력 증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 젊은이들의 입대 기피 경향으로 모병이 쉽지 않은 것이다. 결국 징병제를 폐지했던 유럽 주요국들조차 전면 모병제의 한계를 절감하며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병력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따라 관련국들이 군사비 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난 티안 선임연구원은 “2009년 이후 5개(미주·아시아태평양·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모두에서 군비 지출이 증가했다”며 “전 세계 평화와 안보가 악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개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불투명한 상황 등을 감안하면 각국의 군비 지출 확대 추세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에는 방위력 증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독일은 현재 18만2000명인 정규군 병력을 2030년까지 20만3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24만명 규모인 병력을 27만5000명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올해 안에 19만7000명인 병력을 22만명으로 늘린 뒤 향후 30만명까지 확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러시아라는 가공할 위협을 눈앞에 맞닥뜨리게 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다수 선진국의 공통적인 문제인 저출산·고령화로 갈수록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입대 기피 현상까지 심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연구단체 세계가치관조사(WVS)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각국 16~29세 청년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유사시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덜란드에서는 응답자의 36%만 “그렇다”고 답했다. 네덜란드의 현재 병력은 4만9000명으로 냉전 시대의 5분의 1도 안 된다. 지난해 5000명이 목표였던 정기 모병에선 3600명을 충원하는 데 그쳤다.


WVS 조사에서 독일과 미국의 청년들도 40% 정도만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답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커리어를 중요시하고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입대를 꺼린다”며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의지가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고령화로 젊은 인력이 부족해지는 선진국에서 청년들을 직업군인으로 유인할 매력이 별로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무인기(드론)를 비롯한 첨단 무기가 많이 동원되는 현대전에서도 병사의 절대적 규모는 여전히 중요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나토의 확장에 대응해 115만명 규모의 병력을 132만명으로 15% 늘리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곳곳서 징병제 재도입 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징병제를 유지하던 서방 국가들은 냉전 종식 후 폐지 흐름을 탔다. 프랑스·스페인(2001년), 이탈리아·포르투갈·헝가리(2004년), 폴란드(2008년), 독일(2011년), 덴마크(2015년) 등이 징병제를 폐지했다. 20세기 초 약 80%의 나라가 부분적으로나마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40% 아래로 떨어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그렇게 사라져가던 징병제가 다시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2015년), 노르웨이(2016년), 스웨덴(2018년) 등이 징병제를 다시 채택했다. 덴마크는 2026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지난달 발표했다.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도 완화된 징병제 재도입을 논의 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에 직면한 대만이 올해부터 군 의무복무 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징병제 부활 논의는 각국이 병력 증강을 꾀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입대하는 청년 수가 줄어드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늘어나는 병력 수요를 전면 모병제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 것이다.

징병제 부활의 가장 중요한 관문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해 초 취임한 뒤 2011년의 징병제 폐지가 ‘역사적 실수’라고 주장했다. 독일군은 ‘우리는 독일에 봉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애국심 고취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실존적 위협을 체감하는 동·북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징병제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WVS 조사에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은 응답자 3분의 2 이상이 유사시 기꺼이 참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트로엘 룬드 폴센 덴마크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여성 징병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징병제 강화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모든 성별을 포함하는 폭넓은 모집 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랜 중립국 노선을 포기하고 지난달 나토 회원국이 된 스웨덴의 팔 욘손 국방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의무복무 제도는 청년들에게 군대에 대한 거부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열의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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