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정말 꿈인가요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4. 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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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즉시 스마트폰을 끄고 싶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 당신. 저녁 식사 뒤 노곤한 몸을 소파에 뉘이는데 카카오톡이 울린다. 부장으로부터 온 메시지다.

“○○ 과장, 클라이언트 요청 사항이 있는데 확인해서 피드백을 해줘.” “네, 알겠습니다.”

상사에게 즉각 답을 보냈지만 24시간 일하는 것마냥 개운하지 않다.

이런 장면은 한국 직장인에게 흔하디흔하다. 알고 보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연결차단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지난 4월 3일 민주당 소속 맷 헤이니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퇴근하거나 휴일 등을 맞아 근무하지 않는 직원에게 연락한 고용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법’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의 모든 고용주가 근로자와 고용 계약을 체결할 때 근무 시간과 휴무 시간을 명확히 적시하도록 한다. 또 캘리포니아의 모든 사업장은 직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실행 계획을 작성해 공개해야 한다.

법안은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하는 등 위반 행위를 할 경우 캘리포니아 노동위원회가 이를 조사하고, 위반 1회당 최소 100달러(약 14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다만 단체교섭이나 긴급한 상황과 관련한 사안이거나 일정 조정을 위해 연락한 경우는 법 적용의 예외로 뒀다. 이 법안에 대한 심사는 캘리포니아주 하원 노동고용위원회에서 앞으로 몇 주 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헤이니 의원은 발의 보도자료에서 “스마트폰은 일과 가정생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며 “근로자들이 24시간 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급받지 않는다면 연중무휴 근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람들은 저녁 식사나 자녀의 생일파티 중 업무 연락으로 인한 방해나 업무 관련 응답에 대한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 주민의 일과 삶의 균형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헤이니 의원은 주장한다.

미국에서 업무 시간 외 회사와 접촉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퓨(Pew)리서치센터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절반 이상(55%)이 정규 근무 시간 외 업무용 이메일이나 기타 메시지에 응답한다고 답했다.

국내에서도 퇴근 뒤 연락은 잦은 편이다. 지난해 엠브레인퍼블릭이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60.5%가 ‘휴일을 포함해 퇴근 이후 직장에서 전화, SNS 등을 통해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답했다. 특히 퇴근 후에도 업무 연락을 매우 자주 받는다는 응답이 14.5%에 달했다. 가끔 받는 경우는 46%로 나타났고, 업무 시간 외 업무 연락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39.5%에 불과했다. 또 휴일을 포함해 퇴근 이후 집이나 카페 등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4.1%가 ‘그렇다’고 답해 직장인 4명 중 1명꼴이 퇴근 없는 삶을 산다는 분석이 나왔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퇴근 후 연락이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일도 허다하다”며 “야간이나 이른 아침에도 알림이 울리면 직원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인권 침해 요인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연결차단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매경DB)
프랑스 세계 최초로 법제화

호주에서는 징역형까지 가능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보장하고 있다. 호주의 ‘공정근로법 개정안(Fair Work Legislation Amendment)’에는 근무 시간 외 고용주가 직원에게 이메일이나 전화에 응답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금지한다. 개정안은 지난 2월 호주 상하 양원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은 호주 자유당과 노동당 간의 입법 공방 끝에 형사 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집권당인 노동당은 6개월의 유예 기간에 이 법안을 개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개정안은 ‘합리적인’ 예외를 전제로 호주 직원이 “근무 시간 외 고용주 연락(또는 연락 시도)을 모니터링, 열람 또는 응답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다. 고용주가 직원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추가 업무를 요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호주 로펌 민터엘리슨의 분석에 따르면, 예외 조항은 직원의 연락 거부가 합리적인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락 사유, 연락 방법과 방해 정도, 직원의 시간에 대한 보상 정도와 유사한 고려 사항 등의 요소를 파악한다.

프랑스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이 권리를 법제화해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관한 노사 협의 내용을 매년 단체교섭 협상에 포함하도록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각종 정보통신기기(전화·SNS 등)로부터 근로자는 차단될 권리를 얻게 됐다. 재택근무자에 대해서는 연결 차단권을 더욱 확보해준다. 물론 연결만으로 바로 처벌은 아니다. 관련 ‘단체협상’을 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처벌하는 방식이다. 독일,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필리핀, 포르투갈, 캐나다 같은 나라에도 유사한 법이 있다.

“지나치게 포괄적” 비판도

국내서도 발의됐지만 통과 ×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기업인 단체인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는 이 법안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사업장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애슐리 호프만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 수석 정책 자문위원은 “이 법안은 사실상 모든 직원에게 엄격한 근무 일정을 적용하고 긴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회사와 직원 간 의사소통을 금지할 것”이라며 “이런 포괄적인 규정은 작업장의 유연성을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안나 스타렉 조직심리학자는 “수천 명 직원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일하는 경우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의사소통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소규모 신생 기업부터 포춘 100대 기업까지 이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도 경제 단체들은 생산성 저하, 일자리 감소, 기업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여전히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발의된 법안의 실효성 논란도 나온다. 100달러의 과태료는 기업이 법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톰스피글 노사 전문 변호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결 차단권이 부적절하게 침해됐는지 따지는 데만 몇 달이 걸릴 수 있다”며 “이론적으로는 좋은 생각이지만 고용주가 규칙을 따르도록 이끌기에 벌금은 무시할 수준의 금액”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서도 퇴근 후 카카오톡 등 휴대전화를 이용한 반복적인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근무 시간 외 카톡 금지법’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다. 2016년 신경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용자는 근로 시간 외 전화, SNS 등 통신 수단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실적 집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2022년에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근로 시간 외에 전화, SNS 등을 이용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업무 지시를 하면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또한 현실성 논란으로 계류 중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6호 (2024.04.24~2024.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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