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내가 주말마다 지도 앱 살펴보는 이유

장소영 2024. 4. 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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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녀상 봉지 테러 사건을 보며 떠오른 온라인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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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기자]

아마 지난 2016년쯤으로 기억된다. 아이들 픽업 때문이었을까 왜 검색을 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 지역의 큰 공원인 '아이젠하워 파크(Eisenhower Park)'를 구글맵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뉴욕 센트럴파크보다도 크고, 공원 내에 골프 코스는 물론 주민 여가 활동을 위한 여러 편의 시설, 대형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그리고 현충원도 있다. 공원 옆 길은 '한국전 참전 용사의 길(Korean War Veterans Memorial Drive)'로 명명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대형 주차장도 여러 곳이다.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주차 공간을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사진 하나가 화면에 뜬다. 당시에는 장소를 검색하면 관련 주요 사진이 지도 화면 위에 샘플처럼 몇 장 자동으로 보였다. 소녀상이었다. 이상했다. 당시 기준으로 3~4년 전에 위안부 기림비(The "Comfort Women")가 세워지긴 했지만 소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에 익은 소녀상이 아니라 뭔가 하얀 막대기 같은 것이 보였다. 확대해 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본 극우의 말뚝 테러 사진이었다. 일본을 나타내는 빨강 원 아래 죽도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고 다른 면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글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녀상이 세워지고, 거기 말뚝 테러가 일어난 걸까? 얼른 채비해 공원으로 향했다. 아니다. 소녀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말뚝 테러를 당한 사진은 기림비가 있는 현충원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공원 내 소프트볼 경기장(Soft ball field)을 클릭하면 보이도록 사진 등록이 되어 있었다.
 
▲ 미주 주부들이 함께 한 항의 신고  온라인으로 당한 기림비(소녀상) 테러에 대항하여 미주 주부 회원들이 힘을 합해 구글측에 항의 신고를 보냈다. 재능있고 명철한 주부 회원들이 소식을 빠르게 전하고 항의 신고하는 법도 공유하여 빠른 시간내에 구글측이 사진을 내리게 되었다.
ⓒ 화면 갈무리
 
알아보니, 교묘했다. 현충원(Veterans Memorial)이나 아이젠하워 파크에 사진을 등록했다면 쉽게 들켰을 일이다.

작성자는 사람들의 시선이 덜 가는 시설에 사진을 등록해 놓고 눈을 피해 갈 속셈이었던 거다. 즉시 구글에 연락을 취했다. 난생처음 신고를 해보는 거라 헤매기도 하고, 항의 서신을 어떻게 써야 효과가 있는지도 몰라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러 번 신고를 했다.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수정도 안 되고 응답조차 없었다.

혼자의 힘으론 될 일이 아니었다. 미주 주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미즈빌'이라는 작은 인터넷 모임이 있다. 타향살이 정보도, 육아 경험도 얻고 때로는 쓴소리로 조언을 받아도 마냥 좋은 반듯한 주부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는 곳이다. 

역시 회원들이 적극 나서주었다. 항의 서신 작성하는 법, 사진 신고하는 방법이 초스피드로 공유되었고 같은 기간에 수많은 항의를 받은 구글 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을 내렸다. 게시판에서 서로 기쁨을 나누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그 뒤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주말마다 괜히 지도 앱을 살핀다. 주변 중요 시설을 훑고, 위안부 기림비가 있는 인근을 클릭해 본다.

미국 뉴저지에 세워진 1호 기림비에 이어 우리 지역구인 나소 카운티 아이젠하워 파크에는 2012년에 2호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2014년엔 미국 최초로 뉴욕주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두 개의 위안부 결의안을 새긴 비석이 위안부 기림비 양 옆에 세워지게 되었다. 

위안부 기림비 뒤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서있다. 뉴저지를 중심으로 미스김 라일락과 구상나무를 보급하며 민족애를 실천해 온 백영현 환경운동가께서 어렵게 조성하신 것이다. 

최근 한국의 부산 소녀상에 누군가 봉지 테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 탓에 마음이 어지러워 오랜만에 이곳을 찾았다. 처음 백영현 선생이 조경하신 모습과는 달라졌지만, 소나무만은 잘 자라 있다. 백영현 선생은 소나무와 함께 기림비 좌우에 도장 나무 한 그루씩, 미스김 라일락과 14년 된 분재를 심으셨다. 위안부에 끌려간 가장 어린 소녀의 나이 14세를 의미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기림비 양옆에 결의안 비가 서고 조경이 이미 달라져 있었지만, 일본의 방해를 받을까 봐 은밀하게 의미를 담아 이 자리를 마련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으며 감동을 받았었다.
 
▲ 위안부 기림비와 결의문비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아이젠하워 파크내 현충원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이다. 기림비가 세워진 후 좌 우 양쪽에 뉴욕주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문 비석도 세워졌다.
ⓒ 장소영
아이젠하워 파크에 기림비가 세워질 당시, 일본은 뉴저지에 있던 1호 기림비를 철거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기사가 날 정도로 애를 쓰고 있었다. 도서관에 방대한 분량의 책을 기증하고, 벚꽃 거리도 조성해 주고 다방면으로 지역 사회를 후원할 테니 기림비를 철거해 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다행히 1호 기림비도 2호 기림비도 굳건히 서있고 소녀상도 맨해튼 한인 이민사 박물관으로 들어왔지만, 극성을 부리며 소녀상과 기림비를 없애려는 노력은 쉼이 없다. 결국 나소 카운티 내 한인촌이라 할 수 있는 퀸즈에 '위안부 기림 거리' 추진도 무산이 되었고 각지에 세워진 소녀상도 테러를 당하곤 한다. LA의 소녀상엔 오물이 뿌려졌었고, 맨해튼의 소녀상은 빵가루 테러를 당했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영화 '암살' 안옥윤 대사 중)

영화 '암살'의 대사가 떠오른다. 알려줘야겠다. 우리가 아직도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계속 지킬 거라는 걸. 미움이 아니라 인권과 평화를 위해 나아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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