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민주화 이후의 이념 대립, 일본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과제”

이유정 2024. 4. 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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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연세대 라제건홀에서 '민주화와 민주주의: 한국과 전후 일본의 사상과 경험'을 주제로 한일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사진 한국정치사상학회

“한국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데 반해, 일본은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정치사상학회와 우당이회영교육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26일 연세대 라제건홀에서 개최된 한·일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이런 진단이 나왔다. ‘전후 한·일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는 양국의 손꼽히는 지식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와 고쿠분 고이치로 도쿄대 교수를 비롯해 고마무라 게이고 게이오대 교수, 함재학 연세대 교수,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대 교수, 김주형 서울대 교수, 가와데 요시에 도쿄대 교수, 장인성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국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의 윤영관 이사장과 한국 유네스코위원회의 한경구 사무총장, 한헌법학회와 정치사상학회의 전·현직 회장들도 자리했다.

김성호 정치사상학회장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비(非) 서구권에서는 보기 드문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라는 의미에서 한·일은 민주주의라는 이상과 제도를 공유하고 있다”며 “최근 양국 관계 개선의 명분으로 두 나라가 공유하는 민주주의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일의 민주주의 발전 양상은 닮은 듯 하지만 차이점이 분명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를 성취한 이후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과제가 있다면, 일본은 패전 후 ‘완제품’의 형태로 민주주의 제도를 수입했으나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부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다.

이어 한·일 학자들은 한·일의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간 관계, 민주주의 운동의 주체와 전개 양상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최상용 전 대사는 “극단성을 극복하는 중용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형태로 제시했다. 최 전 대사는 “한국은 헌법 5조를 통해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했고, 일본 역시 헌법 9조를 통해 전쟁을 포기했다”며 “한·일은 이런 헌법 정신을 바탕으로 비핵 평화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 전 대사는 연설문을 통해 한국 정치권이 헌법 정신을 중심으로 진보·보수의 이념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그는 “빨갱이, 친미보수 등의 이분법은 건설적 이념 담론을 위해서도 백해무익하다”며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4조)를 받아들이는 진보, 소득의 적정한 분배와 경제적 민주화(119조)를 받아들이는 보수가 공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반인도적인 북한 체제를 비판하며 친미적인 진보, 북한 체제와의 불가피한 평화 공존을 받아들이고 한·미 관계 못지 않게 한·중 관계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보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대의 고쿠분 교수는 최근 일본 정치권의 개헌 시도를 중심으로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간 조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 계층과 국민의 고민을 공유했다. 그는 아베 신조 정부가 2기 이후(2012년~2020년)가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일본 헌법 9조를 그대로 둔 채 집단적 자위권 도입 등 해석을 통해 입헌주의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고쿠분 교수는 이를 “민의에 안주하고 입헌주의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쿠분 교수는 이 과정에서 일본의 헌법상 존재인 천황(일왕)이 오히려 아베 정부에 대항해 평화헌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과정을 지적했다. 궁극적으로 일본 국민이 천황에 의존하지 않고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조화시키는 과제가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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