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89.3%가 성실한 2030 청년... 정부가 손해 안아야"

김동규 2024. 4. 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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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세사기 피해자 135명 상담한 돈병원 서경준 원장

[김동규 기자]

지난달 7일 '광주 광산구 우산동 전세 피해자 모임'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아래 광주청지트), 광주YMCA, 참여자치21 등이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광주 우산동 전세사기 문제에 대한 광주시 측 대응을 비판하며 "사건 직후 피해자들은 광주시의 전세피해 지원 사업에 도움을 구했으나 '(여러분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광주시가 운영하는 긴급 금융지원, 긴급 주거지원 그리고 무료 법률지원 중 어느 것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관련 기사: 광주 전세피해자들 "이자만 4천만원... 경찰 조속한 수사" https://omn.kr/27q1x)

정부 및 지자체 정책과 현장의 괴리감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광주청지트와 함께 전세사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인천가계부채상담센터(돈병원)의 서경준 원장은 지난 2월부터 3월 사이에 전세사기 피해자 135명을 상담했다. 지역에서 저신용, 저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제공하는 일을 하던 서 원장은 "전세사기 문제에 정부는 없었다"고 했다.

25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돈병원 서경준 원장을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피해자들 미로에 빠졌는데 정부는 없다"
 
 돈병원 서경준 원장.
ⓒ 김동규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병든 돈과 그 돈 때문에 병든 사람을 고치는 돈병원의 서경준 원장입니다. 돈병원은 지난 2019년에 출범했습니다. 이전까지도 지금과 비슷하게 저신용, 저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돈 문제'는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돈병원에서는 이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생활에 대한 의지를 찾으실 수 있도록 애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금융상담과 금융교육은 부자가 되게끔 돕는 일반적인 금융상담이나 교육과는 다릅니다. 내담자들이 소득과 자산 형태에 맞는 돈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빚문제 해결을 조력합니다."

-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상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170여 명의 피해자를 모집했습니다. 전국 대책위나 희년함께와 같은 시민단체의 조력도 있었고, 대부분은 피해자들이 모여 계시는 단체채팅방에서 모집했습니다. 이중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을 빼고 135명을 상담했습니다. 상담을 수행한 저에게는 상당한 숫자였지만 전체 피해자를 3만 명이라 보면 0.5%가량이었습니다."

- 상담해 보니 어떠셨나요.

"정부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미로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상담한 피해자의 89.3%는 2030청년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재정상태는 대부분 건전했습니다.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했다거나, 다중 채무를 갖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실하게 예적금을 통해 돈을 모아서 주거독립을 하신 분들인데, 이런 분들이 사기 피해로 큰 고통을 받고 계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분들의 억울함을 회복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다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전세보증금 채무는 보증금 반환을 통해 상환해야 하는데, 반환받을 보증금이 없어서 부채가 남은 게 이분들의 문제입니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개인회생 등 채무조정제도를 위해 변제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소득 활동을 하는 분들이었기에 파산이 아닌 개인회생이 해결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상담을 해보니, 개인회생을 하면 안 된다는 선입견이 강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것인데, 필요할 때는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지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개인회생은 2년~3년 동안 부채를 상환한 후, 나머지를 탕감받는 채무조정제도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이 같은 조정으로 피해를 축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소득이 많다면 탕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탕감 가능한 소득범위에 있었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에게는 월 220~230만 원가량의 소득이 있었는데, 여기서 생계비를 제외한 후 매월 90~100만 원가량을 2년~3년간 갚고 나머지를 탕감받는 겁니다. 이분들의 보증금은 8천만 원~1억 원가량이었기 때문에 개인회생 기간 동안 최소한의 생계비로 생활하는 게 버겁긴 하지만, 이 기간만 견디면 전세사기 피해로 생긴 문제가 종결되기 때문에 자기인생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 정부대책도 있는데 개인회생을 추천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정부대책은 어떤 게 있는지도 잘 설명돼 있지 않습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온 분들도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거기서 얻은 게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대책을 다시 설명드리고, 개인회생과 비교해서 장단점이 뭔지 설명드렸습니다.

정부대책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존의 보증금 대출을 대환대출해 주거나 추가 대출을 해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기존 보증금 대출을 20년 동안 이자 없이 분할 상환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전세계약이 종료된 후 은행이 채무 상환을 요구하면, 보증기관이 대위변제를 하고 이후 20년에 걸쳐 보증기관이 상환을 받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연체가 발생하게 되어도 해당 연체가 임차인의 귀책으로 발생하지 않았음에 착안하여 '신용도 판단 정보 등록 유예' 등의 지원도 해줍니다.

그러나 채무 변제 의무와 압박은 그대로 남습니다. 이자는 면제되더라도 수천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돈을 20년 동안 갚아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에 이 돈을 갚는 대신, 한 달에 몇 십만 원을 갚는 게 피해자 입장에서는 대안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대안은 못됩니다. 삶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어야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1억 원을 20년 동안 나누어 갚으려면, 매달 42만 원가량의 돈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앞으로 살아갈 20년 동안 매달 42만 원의 소득을 잃게 됩니다.

정부대책과 개인회생을 비교해서 설명해 드리고 나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정부대책 대신 개인회생을 선택합니다. 실제로 갚아야 할 금액이 줄어들기도 하고 시간 측면에서도 2~3년 만에 부채가 정리되어 자기인생을 다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부대책이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네요?

"이런 가치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 대책은 피해자를 위한 대책이 아니고, 금융회사의 재무재표상 부실을 줄이는 대책입니다. 금융회사는 원금을 보장받고 정부도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손해를 피해자 개인이 온전히 떠안습니다. 이렇게 할 거면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상담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저랑 상담했던 분들을 통해서는 정부가 성의 있게 상담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떤 분은 '센터에 전화해서 물어봤지만 담당자에게 자기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 피해자 인정도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1만5천 명가량이 피해 인정을 받았지만 사각지대가 상당합니다. 피해 인정을 받으려면 임대인의 고의성이나 사기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피해자 결정 조건 4개를 다 충족하지 못해서 '피해자 등'으로 분류되면 경공매 유예 및 정지를 신청할 수 없고, 경매시 우선 매수권 신청도 할 수 없습니다. 우선 매수권을 LH에 양도한 후 공공임대를 신청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상담한 피해자들은 저와의 상담을 통해 자기가 뭘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정부가 기본적인 가이드조차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부대책을 맞춤형으로 제시하는 상담이라도 하길 바랍니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최우선 변제금만이라도 돌려줘야 합니다. 소액 임차보증금은 사회·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가 최우선 변제금을 책임지는 건 당연합니다.

전세보증금은 일종의 사금융입니다. 보증금 대출을 사용하는 사람은 임대인인데 대출 시에는 임차인의 상환능력을 심사합니다. 임대인의 상환 능력을 심사해야 합니다. 상환하지 못했을 때의 불이익 역시 임대인에게 있어야 합니다. 임대 계약 시 임대인의 상환 능력 정보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저는 정부가 하루빨리 손해를 받아 안길 바랍니다.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상담사로서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화가 많이 나고 속상하고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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