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세력 극복하는 길을 찾아

김삼웅 2024. 4. 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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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21] 정치·경제·사회적 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외세와 쉽게 결탁하며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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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학의 현재성은 대중성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이 자신의 중요한 존재 이유이기도 한 현재성을 상실하게 될 때, 역사학은 대중성도 잃게 되며 사람들의 생활 일반과 완전히 격리되고 만다는 것이다. 삶과 유리된 형식적인 역사는 무용하기 짝이 없는 오성의 사치이며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필수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다고 한 니체의 비판도 이에 다름 아니다. (주석 1)

그는 5공 정권에서 '숙정'의 대상이 되어 옥고를 치르고, 복직하고, 그리고 6월항쟁이라는 뜨거운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과 시대사에 대한 인식, 무엇보다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두환 정권 후기에서 노태우 정권 초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이와 관련해서 여러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1990년 7월에 출간된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청사)에는 '1980년대 민중민족운동의 위상, 통일과 분단의 갈림길에서, 민족해방운동의 또 다른 관점들, 우리 역사학의 오늘과 내일, 역사를 보는 눈의 이모저모, 통일로 가는 길' 등의 크게 6가지 주제로 나누어 글을 실었다.

'1980년대 민중민족운동의 위상'에서는 <1980년대 우리 역사의 의미>, <5.18 광주민중항쟁의 민족사적 의의>, <1980년대 민중민족운동의 위상>이, '우리 역사학의 오늘과 내일'에서는 <역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의 현재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현대사, 어떻게 쓸 것인가>, <역사진행의 방향을 찾아서> 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2008년 6월에 증보판(서해문집)이 출간되었다가 2018년에 '강만길 저작집 06'(창비)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통일로 가는 길'이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20세기 동북아·한반도 역사의 반성과 21세기 전망>, <6.15 남북공동선언이란 무엇인가>, <6.15 정상회담 이후 민간통일운동의 과제와 전망>, <냉전세력의 정체와 그 극복의 길> 등 4편의 글이 실렸다.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 <역사의 현재성이란 무엇인가>의 한 대목을 함께 읽어 보자.

사실(事實)들 속에서 사실(史實)만을 선택해 내는 것이 역사를 성립하는 1차적인 작업이라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도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이 문제가 된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수많은 사실들 속에서 사실(史實)을 가려내게 되는가 하는 문제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람과 시대에다 기준을 둘 수밖에 없다. 사실(史實)을 뽑아내는 작업은 주로 역사가들의 주관적인 안목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가능한 한 같은 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더 나아가서 미래의 사람들에게까지 옳게 뽑았다는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만 역사발전의 바른 노정에 합치되는 역사가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그가 뽑은 사실(史實)이 객관적 진실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주석 2)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글은 <냉전세력의 정체와 그 극복의 길>이다. 그 자신을 포함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냉전세력'으로부터 숱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지고 보면 분단과 군사독재 등 각종 패악이 그 '냉전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만길은 냉전세력을 극복하고 청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역사적인 속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달가워하지 않고, 민족해방운동세력을 적대시하고, 정치·경제·사회적 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외세와 쉽게 결탁하며, 평화통일 자체를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냉전세력 극복의 길은 첫째 그들이 성립된 요건, 즉 뿌리를 제거하고, 둘째, 그들이 의지했거나 그 세력이 강화되어 온 배경을 청산하며, 셋째, 그들의 생존 근거와 속성을 정확하게 집어내어 없애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냉전세력의 뿌리는 친일세력이었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불과 5년간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에서는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인 약 13만 명을 재판하여 사형집행 약 800명, 종신강제노동형 2,700여 명 등 총 약 5만여 명을 처벌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15년간 받았던 중국 장개석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패전한 1945년부터 1947년까지 2년 사이에 친일 반민족 세력, 즉 한간(漢奸) 3만 8,000여 명을 기소하여 사형을 포함한 1만 500여 명을 처벌했다. (주석 3)

그는 이승만 정부에서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한 일 등을 설명하고,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친일세력에서 냉전세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력들은 당연히 반북세력이기 마련이며, 따라서 북쪽과의 사이에 냉전기류가 계속되어야만 그 서식 공간이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남쪽 중심의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을 염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의 전망이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초조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냉전세력을 극복해 가는 길은 평화통일·협상통일·화해통일의 길을 계속 넓혀 가는 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주석 4)

<통일운동시대 역사인식>에 <출간 배경과 사학사적의 의의>라는 제목으로 '해제'를 쓴 정태헌 교수는 강만길의 주장을 높이 평가한다.

강만길은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수렴되는 당시 역사학계를 비판하고 역사의 현재성과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이는 1972년 5월 박정희 정권이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사 교육을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발족한 국사교육강화위원회(위원장 이선근)에 내로라하는 역사학자들이 '국사 교육, 민족 교육' 강화라는 명분으로 참여한 것과 궤를 달리한다.

관 주도 역사편찬을 강하게 비판한 강만길은 역사 교육이 애국심 배양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역사를 통해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워야 '주체적 민족사관'도 키워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역사 변화에서 민중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민중 중심의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당시로서는 낯선 인식이었다. (주석 5)

주석
1> 신용옥, <해제, 분단시대를 지식인으로 살아온 평화통일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자기기록>, 강만길, <역사가의 시간>, 648쪽.
2> 강만길,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창비, 2018, 344쪽.
3> 위의 책, 554쪽.
4> 위의 책, 558쪽.
5> 위의 책, 56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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