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로 한국 축구 잡은 신태용 감독 "행복하지만 처참하다"
아시아 축구의 거함 대한민국을 주저앉히며 파리올림픽 본선행에 한 발 다가선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이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참한 기분”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26일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의 파리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8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을 합쳐 120분 승부를 2-2로 마친뒤 승부차기에서 팀 당 12번째 키커까지 가는 혈투 끝에 11-10으로 승리했다.
인도네시아는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에 도전 중이던 한국을 주저앉히고 4강에 올랐다. 지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이후 68년 만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대회를 1~3위로 마치면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한다. 4위로 마치더라도 아프리카 기니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면 파리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승부 중 1승만 거두면 자력으로 파리올림픽 무대에 나선다.
신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발굴·육성한 ‘자이언트 킬러’다.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도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1위 독일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둬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경험이 있다.
FIFA랭킹 132위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이끌고 23위 한국을 잡아 또 한 번 이변의 주인공이 됐지만, 신 감독은 경기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조국인 대한민국을 딛고 인도네시아 축구의 새 역사를 쓴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신 감독은 “기쁘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처참하고 힘들다”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처지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해 준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경기력의 격차를 극복하고 한국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는 “지난 4년 간 동고동락하면서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기부여만 제대로 된다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서 “내 선수들에게 믿고 따라오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은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우즈베키스탄전 승자와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4강에서 맞붙는 일정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회복”이라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두 나라의 8강전을 직접 관전하며 전력을 파악하겠다. 내일 저녁 정도가 되면 어떤 방식으로 준비할지 정리가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한국전을 하루 앞두고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축구협회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신 감독과 함께 식사하는 사진을 올리며 “신 감독과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할 것”이라 밝혀 사실상 재계약 협상이 완료됐음을 밝혔다. 관련 질문에 신 감독은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정해진 게 없다”며 미소 지은 뒤 “회장님과 좋은 이야기를 나눈 게 맞다. 계약 기간이 연장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인도네시아축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어느 팀과 붙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넘친다”면서 “계속 지켜보면 인도네시아축구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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