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이거 안 늘리면 유권자들 난리납니다"
[노광준 기자]
▲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해 9월 18일 오후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열린 경기-제주 상생협력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경기도 |
"(제주에서) 제가 도지사직 유지하려면 재생에너지 늘리고 그린수소 확대해야해요. 그거 안하면 유권자들 난리납니다."
24일 <오늘의 기후>(OBS라디오)에 출연한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말이다. 기후방송 출연을 위해 제주에서 직접 수원으로 온 그에게 김희숙 진행자는 그동안 궁금했던 기후질문들을 1시간 동안 던졌다. 그 귀한 재생전기를 만들고도 남아돌아 출력제한으로 버려지는 현실부터 한국형 RE100의 미래까지...그런데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답변들이 돌아왔다. 이런 꿈같은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인터뷰 주요장면 정리한다.
1. 제주에선 '바람'도 공유자산... 바람을 팔아 주민복지에 쓴다
제주도하면 바람이다. 그런데 제주의 바람이 삼다수처럼 돈을 받고 거래되며 주민복지로 연결된다는 신기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풍력발전 3차년도 계획을 통해서 '풍력공유화기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즉 바람을 돈을 받고 판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예전에 (봉이 김선달이) 물을 돈 받고 팔았듯이 이제는 바람을 돈 받고 판다라는 개념이 풍력공유화기금인데요." (오영훈 제주지사, 2024.4.24)
제주는 2022년 현재 전국에서 가장 높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기록하고 있다. 설비비중만 따지면 48.7%이고 실제 전력에서 발전비중은 19.2%. 현재까지는 태양광과 풍력의 비율이 6:4이지만 대규모 풍력발전시설이 완공되어 갈수록 풍력발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질 전망이다(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 2,345메가와트 풍력설비보급계획). 여기서 풍력발전사업자가 얻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주민복지나 지역사회를 쓰도록 하는 제도가 바로 '풍력공유화기금'이다. 대장동같은 개발이익환수제도라고나 할까. 차이가 있다면 유한한 땅이 아니라 자연이 무한제공하는 바람과 햇빛을 공유자원으로 계속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풍력발전 사업자가 일정한 이득을 취해 나가면서 그 이익금 중 일부를 풍력공유화기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저희 도만 갖고 있는 제도인데요. 그렇게 풍력발전 사업을 확대해 나가게 되면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기금을 받게 되고 그 기금은 지역사회 제주도 사회에 환원이 되게 되는 거고 도민의 삶의 질이 증진되게 되는 이런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죠." (오영훈 제주지사)
2. "최근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찾아왔어요, RE100 전기 공급계약 맺자고"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생산이 가장 활발하다보니 재생에너지를 찾는 기업들도 제주를 활발하게 찾아온다. 최근에는 굴지의 화장품 기업이 제주를 찾았는데, 이유는 RE100이었다. 유럽에 화장품 수출하면 100%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운영해야하는데 그런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곳을 찾아온 거다.
"지난해 10월 즈음에 무슨 계약이 있었냐 하면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화장품 회사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북촌마을에 북촌 마을 풍력회사하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RE100 계약을.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는 유럽으로 화장품을 수출해야 되는데 RE100 인증을 받아야 수출을 할 수 있는데 (제주 풍력에서 재생전기를 공급받고) 또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체결한 우리는 변동성 없이 일정한 가격을 책정받고 저희 입장에서는 대단히 좋은 거죠. 이런 방식으로 가는 거죠." (오영훈 제주지사)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구하기 위해 낯선 지역을 찾는 장면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재생전기를 생산하는 곳에서 가까울 수록 전기요금이 싸지고 멀어질수록 비싸지는 전기요금 차등제를 도입한 곳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값싼 재생전기를 찾아 농촌이나 산촌으로의 이전을 검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후대응을 지역균형발전 관점에서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3. 머지않아 RE100 한라봉에 RE100 달걀 나올 듯
태양광, 풍력이 전력의 20%를 넘어서고 있는 제주에서는 제주 특산 농산물을 100%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하는 RE100 농산물로 출시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지금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애월 아빠들'이라는 영농조합 법인이 있는데 여기서 달걀을 생산해요. 계란을요. 그럼 계란을 생산하는 양계장 운영 자체를 완전히 재생에너지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는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양계장이 되는 거죠. 그런 RE100 달걀을 생산해서 판매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고요. 그 다음에 시설하우스를 하잖아요. 보통 기름으로 떼든지 전기를 가지고 에너지원을 쓰는데 여기를 재생에너지나 그린수소를 가지고 한라봉 하우스를 만드는 거죠. 그러면 RE100 한라봉...그렇게 준비해 보고 있습니다." (오영훈 제주지사)
▲ 제주 해상풍력시설. |
ⓒ 윤성효 |
제주도의 출력제한 문제를 물어봤다. 다른 지역에서는 없어서 못쓰는 귀한 재생에너지이지만 제주에서는 오히려 남아돌아서 걱정이라는데...
"(제주에서는 육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해저 연계선을 통해 공급받고 있거든요. 이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신재생 에너지를 추가해서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이 더 많이 불어서 풍력 발전을 통해 전기가 더 많이 생산되거나 우리가 쓰는 것보다 태양광 설비를 통해 더 많은 전기를 확보하게 되면 이게 과부하가 걸려서 출력 제어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거든요." (오영훈 제주지사)
그런 출력제어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21년에 연간 64회였던 출력제한 횟수가 2022년에는 104회, 2023년에는 117회, 매년 늘고 있는 현실 속에 볼멘 소리도 늘어만 가고 있었다.
"(출력제한이) 1년에 100차례가 넘다보니까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면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을) 스톱시켜야 되거든요. 그러면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다 개인 사업자들이 많잖아요. 이분들이 너무 엄청나게 피해를 보는 거고, 또 풍력 같은 경우는 마을 풍력 발전 사업자들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발전 사업을 참여하시는건데 이분들이 또 바람이 부는데 전기가 생성 안 되고 멈춰 있는 걸 보면 또 화가 나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계속 높일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제주도지사는 반드시 이 출력제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하고 그래야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오영훈 지사의 설명이다.
"풍력 발전기가 안 돌아가면 블레이드가 안 돌면 지사한테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출력 제어를 지금 하잖아요? 그러면 전기 생산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제주도지사한테 항의 전화를 하는 거예요. '도지사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출력 제어 문제 이렇게 방치할 겁니까?' 이렇게 항의하는 거예요. 그럼 저희 입장에서는 도지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린수소 생산이라는 이 대체 수단을 빨리 확보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도지사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여야 되고 그린수소 생산을 확대해야 되는 거예요."
제주도는 현재 일시적으로 남아도는 재생전기를 저장해 쓸 ESS(에너지저장시스템, Energy Storage System)를 확충하는 한편 재생전기로 물을 분해시켜 나오는 그린수소(재생전기로 만든 청정수소)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저장해 수소차와 버스 등을 운영하는 그린수소 상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소버스와 이제 수소 청소차, 그리고 수소 트램 등 다양한 이동 수단까지 확대되겠죠. 그리고 나서 수소 사회로 가기 위한 에너지원 자체를 그린수소와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전략을 펼치게 될 겁니다." (오영훈 제주지사, 2024.4.24)
그런데 그린수소 실증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제주에서 벌어진 정말 중요하고도 신기한 현장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주민 숙의 과정이다.
5. 마을회의 주제가 그린수소였다
그린수소 충전 실증사업을 벌일 해당 지역에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마을회의가 심도깊게 열려왔는데, 주제는 우리 마을에 그린수소 충전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고 한다. 결과는 찬성으로 나왔는데, 오 지사는 결과보다 그 숙의과정을 통해 모든 주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린수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을 성과로 꼽았다.
"저희가 제1회 글로벌 그린수소포럼을 개최했고 40여개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했고 특히 외국에서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도민들의 수용성, 그러니까 이런 수소충전소를 세우고 수소 실증 단지를 결정하고 하는데 '마을총회'를 통해 결정했거든요. 마을 주민들 전체가 직접 투표를 통해서 결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과정 자체가 그린 수소에 대해 에너지 대전환에 대해 주민들이 이해하고 학습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찬성으로 결론이 났잖아요. 그러면 도민 수용성이 완전히 높아지는 거죠. 외국의 전문가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지점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예전의 태양광, 풍력 보급 초기에 빚어졌던 현지 주민들과의 갈등이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를 학습한 뒤 주민 숙의과정에서 그 대안을 찾은 결과였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에너지가 진정 지속가능한 에너지라는.
"관광섬이라서 반드시 지속가능해야하고 그래서 꼭 재생에너지로 가야합니다."
오영훈 지사는 제주의 에너지 전환을 '하면 더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하는 길' 이라고 말했다. 한 해 1,300만 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휴양도시 제주의 미래는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이고 탄소배출을 하나도 하지 않는 무탄소 아일랜드 실현에 있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 방송으로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OBS 라디오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시청,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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