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 뿌리심은 근현대 과학자들의 발자취

김남중 2024. 4.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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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김근배 이은경 선유정 편저
세로북스, 752쪽, 4만9000원
한국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20세기 한국이 배출한 가장 저명한 이론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이휘소, 한국 생물학의 개척자 정태현, 57세에 한국인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딴 김삼순, 북한으로 간 ‘새박사’ 원홍구, 해방 후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장을 맡았으나 남과 북 모두에서 잊혀진 정두현이다. 세로북스 제공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국 과학의 뿌리를 드러낸 역작이다. 최초의 화학자 리용규(리봉구·1881∼?)에서 시작해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1936∼2002)까지 근현대 한국 과학자 30명을 출생 순으로 조명했다. 이름을 보면 ‘나비 박사’ 석주명(1908∼1950),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낯설다.

한국 최초의 과학자들은 식민지 시기에 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서양 과학을 접했다. 이들이 한국 화학, 물리학, 생물학, 수학, 천문학, 농학, 지질학 등의 첫 페이지를 썼고 국내 연구시설을 만들고 제자들을 길러내 한국 과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한국 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1882∼1971)은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을 출간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최초의 식물도감이다. 앞서 정태현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편저했다. “민들레, 쑥, 엉겅퀴, 개망초, 고들빼기, 곰취, 머위, 개미취, 여우오줌, 도깨비바늘, 구절초, 국화, 과꽃, 백일홍 등 지금 우리가 부르는 많은 이름이 이때 확정된 것이다.” ‘새 박사’ 원홍구(1888∼1970), ‘한국의 파브르’라고 불린 곤충학자 조복성(1905∼1971), ‘물고기 박사’ 최기철(1910∼2002)도 있었다.

이원철(1896∼1963)은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였다. 1926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조선인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스타 천문학자였다. 화학자 이태규(1902∼1992)는 유타대학에서 헨리 아이링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리·아이링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론과학 분야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공식이다.

김량하(김양하·1901∼?)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다. 1939년 동아일보에는 “노벨상 후보 김량하씨”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는 쌀 배아로부터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타민E의 순수 결정을 얻어 냈고, 비타민E의 분자식을 제시했다. 192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비타민 연구자 6명이 노벨화학상을, 10명이 노벨생리의학상을 탔을 정도로 이 시기는 비타민 연구의 전성기였다.


이 책이 발굴해낸 한국 과학의 뿌리는 앙상하지 않다. 식민지라는 열악한 조건, 분단과 전쟁의 혼란, 열악한 연구조건에서도 과학자들은 분투했다. 하지만 근현대 과학자들은 이념으로 재단돼 역사에서 배제되고 잊혔다. 친일의 얼룩이 묻은 이도 있고, 월북한 이도 있고, 군사정부에 참여한 이도 있다.

정두현(1887∼?)은 남북 모두에서 완전히 잊힌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초 해외에서 농학, 과학, 의학을 모두 공부한 유일한 과학자였다. 숭실전문학교 교수로서 생물학을 가르쳤고, 해방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장을 맡았다. 하지만 1951년 이후 북한에서도 정두현의 행적이 사라졌다. 세계적인 수학자 리림학(이임학·1922∼2005)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망명자로 살다가 캐나다에서 눈을 감았다.

이휘소를 다룬 장에서는 그에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한국의 원자폭탄 개발 비밀 프로젝트 연루설도 다룬다. 이휘소는 1977년 차를 몰고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반대편에서 오던 대형 트럭에 받쳐 세상을 떠났다. 천재 물리학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그가 박정희 정부의 핵폭탄 개발과 관련돼 있었다는 의혹이 퍼졌고, 이를 다룬 소설도 여러 편 나왔다.

책은 “이휘소의 연구 분야는 이론물리학, 더 좁게는 입자물리 이론이고, 원자핵을 이루는 소립자의 특성에 관한 것이다. 그의 연구가 원자핵 연구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핵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그의 연구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며 의혹을 반박한다. 이휘소의 유족들은 출판물로 인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책에서 다룬 30명의 과학자 중 여성은 단 한 명, 김삼순(1909~2001)뿐이다. 그는 제국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 여성 과학자로 느타리버섯의 국내 인공재배를 성공시킨 농학자였다. 전남 담양 출신의 김삼순은 부모의 반대와 싸우며 서울로,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홋카이도제대 이학부 식물과에 입학했을 때는 32세였으며,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다시 일본으로 가서 한국인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땄을 때는 무려 57세였다. 81세에 ‘한국산버섯도감’을 출간했는데 “우리나라 버섯 연구에 있어 원전”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과학자들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 주요 인물과도 만나게 된다. 과학사를 통해 근현대사를 새롭게 보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얻게 된다. 한국의 근대화나 산업화는 누가 가져다준 게 아니며, 역사와 민중에 기여하는 방법은 정치나 운동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은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팀의 15년에 걸친 아카이브 작업을 바탕으로 총 6권으로 기획된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의 첫 책으로 자연과학 분야 과학자들을 묶어낸 것이다. 이 시리즈는 ‘공학기술’ ‘정책문화’ ‘의약학’ ‘농림축수산학’ ‘북한’ 편으로 이어지며 출생연도가 1945년 이전인 과학자 약 200명을 망라할 예정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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