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美 인플레 수출과 中 디플레 수출 사이

고세욱 2024. 4. 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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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공급망 이어 디플레 수출 갈등 미·중 패권 전쟁의 일환이다
미국·중국 다른 수출 전략에 위기인데 리더십은 안 보여
‘韓 경제 기적 끝났나’ 질문에 여야정 어떻게 답할 건가

한국 사회가 총선에 휩쓸릴 때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신경전에 주목했다.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포문을 열었다. “미국은 저가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 공급망 갈등 해법은커녕 중국의 수출 행태까지 문제 삼았다. 중국은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의 수출은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한다”고 반박했으나 백악관의 화답은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3배 부과 방침이었다. 24일 방중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중국 과잉생산의 폐해를 지적했다.

이번엔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수출’ 갈등이다. 중국이 제품을 너무 싸게 팔아 시장 질서를 해친다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부동산 경기·소비 부진으로 내수가 가라앉자 수출을 돌파구로 삼았다. 제조업 생산을 늘려 만든 제품을 저가로 세계에 밀어냈다. 중국의 올 1분기 성장률(5.3%)이 예상을 웃돈 이유다. 값싼 중국제가 물가 안정에 기여한 때도 있었지만 현 디플레 수출은 결이 다르다. 과거 저부가가치의 생활용품 위주에서 기간산업, 하이테크, 유통 등을 망라한다. 품질도 좋은데 말도 안되는 저가의 중국산에 각국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칩(chip) 공급망 봉쇄에 초저가(super-cheap) 수출로 맞받은 격이다.

전기차 시장 1위 테슬라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3’는 3만9000달러(약 5300만원) 수준. 그런데 중국 BYD는 9700달러(약 1300만원)짜리 전기차를 출시했다. 테슬라의 올 1분기 순이익이 55% 급락했고 주가는 25일 현재 연초 대비 35% 떨어졌다. 유럽으로 유입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가격이 목재보다 싸 주택가 정원 펜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인건비가 싼 칠레도 자국산 철강 제품보다 40%가량 저렴한 중국산에 일부 공장이 문을 닫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LG화학 등 석유화학기업 빅4의 영업이익은 3년 전보다 70%가량 급감했다. 플랫폼 알테쉬(알리·테무·쉬인)의 초저가 공세에 유통 시장이 초토화돼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이 매출 감소를 겪거나 감소가 예상된다(중소기업중앙회 조사).

우리로선 중국 디플레 수출 대응도 걱정이나 앞서 닥친 미국의 인플레 수출 후유증도 극복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강달러가 부른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 현상인 ‘미 인플레 수출’은 전 세계가 마주했으나 한국이 유독 취약하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지만 인플레 수출이 시작된 2022년 1~9월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12%로 일본 엔(-17.8%) 다음으로 하락폭이 컸다. 올해도 7%가량 하락하는 등 어느 통화보다 변동성이 크다. 고환율에 따른 자재값 상승이 부동산 시장 불안을 야기한다. 1~2%대의 저성장 추세, 부채와 부실 대출의 급증도 인플레 수출의 그늘이다.

유럽은 강달러에 맞서 에너지 합리화 정책 등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에 유가 상승세에도 스위스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도 동참할 예정이다. 디플레가 더 걱정인 중국과 일본은 수출 경쟁력을 가져올 강달러 인플레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물가에 대한 선제적 대처와 개혁을 외면해 기준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미 금리인하 소식만 기다리는 처지인데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7%로 대폭 올려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피해(인플레 수출)와 산업 경쟁력 약화(디플레 수출)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조짐이다.

하지만 앞장서 혁신이나 위기 대응 을 이끌 리더십은 보이질 않는다. 총선 후 정부는 무기력증에 빠졌고 참패한 여당이나 압승한 야당에도 경제 미래에 대한 고민은 안 보인다. 1초가 아쉬운 기업들이 먼저 대책을 내놨는데 내용이 웃프다. 삼성그룹은 임원들의 주6일 근무를 실시했다. SK그룹은 토요 사장단 회의를 24년 만에 되살렸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주6일 근무를 소환하는 글로벌 기업들. 어이없다가도 얼마나 여건이 안 좋고 다급하면 이럴까 싶다. 상반된 수출 전략을 펼치는 미·중 고래싸움에 기업들만 발버둥친다. 때마침 한 외신에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위기의식이라곤 1도 없는 여야정에 국민이 보내는 질문이기도 하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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