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하나보다 나은 둘

2024. 4.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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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영화로 찾아온 영국 2인조
‘힙노시스’, 韓 ‘페퍼톤스’가
증명하는 ‘노래는 아름답다’

둘보다 차라리 하나가 낫다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둘이 있어야 들 수 있는 게 백지장만은 아니다. 사랑, 대화, 싸움, 화해 이외에도 수많은 행위가 오직 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힘들고 지칠 때 가만히 다가와 등을 토닥이고 슬쩍 어깨를 내어주는 것도 둘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트에서 1+1을 발견한 반가움만큼이나 아직은 하나보다 둘이 낫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토박이로 ‘힙노시스(Hipgnosis)’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될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이다. 자유로운 여느 청춘이 그렇듯 몸에 나쁜 것만 죄다 찾아서 하며 젊음을 소진하던 이들에게 어느 날 과제가 하나 떨어진다. 앨범 커버를 만들어 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이었다.

친구들의 이름은 로저 워터스와 데이비드 길모어, 시드 바렛. 70년대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록의 상징이자 대중음악에서 밴드 음악의 위상을 한껏 높여준 전설의 밴드 핑크 플로이드였다.

감각적인 아이디어 뱅크 스톰과 사진에 재능을 보인 파월 두 사람이 처음 만든 건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앨범 ‘소서풀 오브 시크릿츠(A Saucerful of Secrets)’였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수십 장에 달하는 이미지의 물리적 합성을 통해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가진 기묘함을 그대로 재현해 낸 앨범 표지만큼은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후 힙노시스는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AC/DC,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피터 가브리엘 등 대중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핑크 플로이드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무지갯 빛(The Dark Side of the Moon)과 불타오르며 악수하는 남자(Wish You Were Here), 녹아내리거나 손으로 찢기는 피터 가브리엘의 얼굴이 담긴 앨범 표지, 이외에도 이채롭다 싶은 70년대를 전후로 한 앨범 표지 대부분이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여기 또 다른 두 사람이 있다. 신재평과 이장원은 2003년 카이스트 전산학과 동기로 만나 ‘우리 심심한데 음악이나 할까’로 뭉쳤다. 가볍게 시작한 것치고는 반응이 뜨거웠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귀 밝은 사람들 사이 유행하던 전자음악과 일본의 시부야계를 재치 넘치는 멜로디와 경쾌한 가사로 풀어낸 새로운 음악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인기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청춘이 있었다. 음악 스타일로 보나 불어난 팬덤으로 보나 홍대를 중심으로 한 인디에만 머물기엔 아깝다는 말을 자주 듣던 이들은 첫 정규 앨범 ‘컬러풀 익스프레스’와 ‘뉴 스탠다드’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업계 안팎의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이들은 2008년 메이저와 인디의 중간계인 ‘메이전디’의 대표 레이블 안테나 뮤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페퍼톤스는 처음 예상한 대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은 청춘을 꾸준히 노래했다.

가끔 휘청거리면서도 이들의 음악은 끈기 있게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답다’는 걸 사는 날마다 되짚어줬다. 20년 동안, 둘은 그런 음악을 했다.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과 앨범 ‘트웬티 플렌티(Twenty Plenty)’는 시대와 국적이 다른 이 ‘두 사람’을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콘텐츠다. 잔나비, SUMIN, 스텔라장, 나상현씨밴드 등 다양한 음악 동료와 함께 기념 앨범을 만든 페퍼톤스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아쉽게도 힙노시스는 과거의 유산으로 남았다.

1980년대 LP의 시대가 저물며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힙노시스는 그러나 둘이어서 좋았던 시절의 아름다움으로 여전히 지금 세대를 휘둥그레 사로잡는다. 역시 아직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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