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또 하나의 통상장벽’…노동인권 안 지키면 과징금

김민중 2024. 4. 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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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보호무역 파고


지난해 9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EU의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연합(EU)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자칫하면 대규모 과징금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인권 보호 규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투표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이 찬성 374표, 반대 235표, 기권 19표로 가결됐다. 일종의 가이드라인 격인 CSDDD는 앞으로 최종 법률검토 등을 거쳐 발효되고 2년 이내에 EU 회원국들은 관련 국내법을 제정하게 된다. 해당 법들은 CSDDD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3년 뒤(이르면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CSDDD는 EU 역내 기업과 역외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대상 역외 기업은 EU 내 순매출액이 4억5000만 유로(약 6636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포함될 것으로 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시 자료 등을 분석하며 정확한 관련 국내 기업 리스트를 파악 중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EU에 682억6000만 달러(약 93조8234억원)를 수출했다.

해당 기업들은 ‘최종 모기업’이 매년 소속 사업장뿐만 아니라 자회사, 협력사의 인권·환경 국제협약 위반 여부를 자체 실사해야 한다. 위반 사실을 발견할 경우 위험도가 높은 순서에 따라 예방·완화·제거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 등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고충 처리 시스템을 구축할 의무도 진다. 실사 의무를 진 대기업 외에 해당 대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돼 실사를 받게 되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CSDDD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사 의무를 위반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EU 회원국들이 CSDDD에 따라 각각 국내법을 제정할 때 한 기업당 과징금 상한을 전세계 연 매출액의 5% 이상으로 하도록 돼 있어서다.

독일에선 이미 CSDDD의 취지와 유사한 국내 법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6월 시민단체 유럽헌법인권센터가 “폭스바겐이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 자치구 소수민족 강제노동 의혹에 연루됐다”며 독일 연방경제수출통제국에 제소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과 합작 공장을 운영하는데, 공장 철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지난해 “CSDDD에 대한 국내 기업이 체감하는 중요도는 상승하였으나, 대응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EU는 기업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대를 촉진해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등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더해지면서 이번 CSDDD의 시행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임소영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실장은 분석한다. 이런 점에서 CSDDD의 시행으로 한국 기업들이 EU 시장에서 수혜를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U에서 매출을 올리는 전 세계 기업들이 협력업체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찾다가 한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ESG 경영에 충실하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들도 CSDDD에 대한 준비를 충실히 한다면 EU 시장에서 중국 대기업 등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여지가 크다고 임 실장은 내다봤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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