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여당, 한번은 야당, 마지막으론 국민을 보고 의사봉 친다”
역대 국회의장 중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14대 전반기(1993년 4월~94년 6월)와 16대 전반기 국회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장이 대표적이다. 이 전 의장은 1993년 12월 당시 자신이 속한 민주자유당 총재이자 현직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예산안과 정당법, 안기부법 등의 처리를 요구받았다. 이 전 의장이 즉석에서 거부하자 민자당에서 “배은망덕한 배신자”라는 비난이 나왔다. 이 전 의장은 여야 합의를 도출해 만장일치로 안기부법을 처리했다.
이 전 의장은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2000년 6월 재차 국회의장이 됐다. 이 전 의장은 취임사에서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했다. 한 달 뒤 국회 운영위에서 민주당 주도로 자유민주연합(당시 17석)을 교섭단체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날치기 처리됐지만, 그는 이번에도 본회의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까지 설득에 나섰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대 후반기 새누리당 출신의 정의화 전 의장도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 5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할 수 없다”고 버텼다.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를 찾아 정 전 의장을 설득했고,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 전체의 서명으로 직권상정을 압박했다. 이에 정 전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의 직권상정 요건 조항을 언급하며 “현 경제 상황을 직권상정이 가능한 비상사태로 볼 수 있느냐,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대로 의장이 한쪽 편을 들면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17대 전반기 국회의 사립학교법 개정안 직권상정이나 18대 국회의 노조법,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분리) 완화법안 강행 처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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